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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Nov 21. 2021

틱, 틱... 붐!

애쓰는 모든 청춘을 위한 헌사 혹은 희망고문



https://youtu.be/DfnQarJXVak



<틱, 틱... 붐!>은 제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작품입니다.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정서를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었죠. 극 중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 즈음 이 뮤지컬을 봤고, 주인공과 같은 창작자는 아니었지만 저의 작은 사업을 막 시작했더랬죠. 당시의 저는 늘 긴장해있었고, 절박해있었고, 노력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날카로워있었고 성마른 상태였습니다. 



예술의 탁월함은 이것이 아닐까요. 제가 느끼던 그 모든 절박함과 시간에 쫓기는 기분을 주절주절 떠들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틱, 틱... 붐!', 이 짧은 단어의 조합으로 응축해서 전달한다는 것. 이 뮤지컬이 저와 너무 공명했던 탓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저의 절박함은 이내 틱, 틱 거리는 시한폭탄의 소리로 치환되었습니다. 어쩌면 <틱, 틱... 붐!>이 준 가상의 청각적 묘사가 당시의 저에게 더 불안을 가중시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이런 불안감은 저만의 것이 아닐 겁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청춘, 아니 훨씬 이전 시대부터 존재했을 모든 청춘들이 공유했을 실존적인 불안이 아닐까 합니다. 극 중 주인공이 말합니다. 


"스티븐 손드하임은 27살에 데뷔했는데 나는 내일모레면 30살이야,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역사적으로 위대한 이들이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이르면 20대 초중반에서 늦어도 20대 후반. 우리가 10대 청소년기일 때는 이름을 떨친 누군가와 비교할 시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20대를 넘기면서 정해 놓은 꿈이 있거나, 비록 꿈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우러러보는 우상이나 유명인이 자신과 비슷한 나이 임을 인지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나보다 어린 나이에 벌써 이런 일을 했는데, 이런 업적을 이뤘는데,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자의식이 생기는 순간, 클릭! 시한폭탄이 작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시계 소리는 점점 커져갑니다. 내 안의 시한폭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부터 그 소리는 거부할 수 없는 불안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젊음만이 지닌 특권이라고 말한다면 그 고통을 너무 몰라주는 걸까요. 꼰대가 되는 걸까요. 여기 젊음의 불안이 주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이 있습니다. '무감'입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왔다는, 무언가 노력해서 얻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는 체념, 불안에 조차 익숙해져 더 이상 시계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무감각, 혹은 이제는 작동을 멈춰버린 시한폭탄을 보는 허망함과 쓸쓸함. 그 무언의 고통은 젊음의 불안이 주는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은 아닙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무감과 별개로 삶의 고통이 심연 깊은 곳에 괴물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걸. 그것은 문득, 가만히 수면 위로 떠올라 내 인생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둔중하고 무거운, 견디기 힘든 고통을 안겨주곤 다시 깊은 곳으로 침잠해 들어갑니다. 청춘을 지나 무감의 시기로 접어든 나의 모습이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닐 때, 그 간극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삶은 잠시 지나가는 찰나의 고통이 아닌 죽을 때까지 내 안에서 존재하는 영원한 비극이 됩니다. 그 영원의 비극은 청춘을 관통하는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절망입니다.



청춘이란 무엇일까요. 청춘과 시한폭탄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요. 째깍째깍 흐르는 내 안의 시한폭탄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그만큼 원하고 있고, 그것을 성취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믿는 방증일 테니까요. 가능성, 그 가능성이 주는 불안, 그래서 젊음은 아플 수밖에 없고, 그 아픔은 '아름다운 아픔'으로 무감한 이들에게 예찬의 대상이 됩니다.



조나단 라슨은 힘든 창작자의 삶을 살았고 비극적이게도 역사적인 <렌트>의 첫 공연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비록 죽음 이후이기는 하지만 그는 유작인 <렌트>를 통해 뮤지컬에 영원히 기억되는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조나단 라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대부분은 어느 시점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라슨의 친구 마이클이 되어서 타인의 삶을 동경하게 된다는 것을. 그런 면에서 <틱, 틱... 붐!>은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노력하는 모든 청춘을 위한 헌사이자 동시에 슬픈 희망고문과도 같습니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도 주인공 조나단 라슨이 틱, 틱 거리는 불안의 시계 소리에도 불구하고 창작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 스티븐 손드하임 같은 존재가 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손드하임 같은 거인이 아니어도 그 누구라도, 청춘의 어두운 터널의 끝이 어디인지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을 때 나는 성취해낼 능력이 있는 특별한 존재임을, 비록 터널의 끝이 내가 원한 모습이 아니라도 그 모든 노력과 시간이 의미 있는 것이라는 것임을, 그래서 모든 한명한명의 삶은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지해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꿈과 노력, 삶을 지탱하는데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요.



PS. 

이 영화를 연출한 린-마누엘 미란다는 뮤지컬 <인 더 하이츠>와 <해밀턴>을 창작한 불세출의 천재. 그가 뮤지컬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달리 그의 영화 데뷔작인 <틱, 틱... 붐!>은 평면적이고 평이합니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뮤지컬의 박스에 갇혀 뮤지컬 요소들을 조합해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느낌. 뮤지컬과 영화 연출의 근본적인 차이를 아직 깊이 이해하지 못한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가 데뷔작인 만큼 그가 어떤 차기작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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