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se Dec 26. 2021

<고요의 바다>

고요하게 잠들어버린 나

현재 에피소드 6 중간까지 봤습니다. 중간에 두어 번 멈췄고 한 번은 보다가 중간에 졸았습니다. 


<고요의 바다>는 안타깝지만 잘 만들어진 드라마는 아닙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상은 아마 이런 것일 것입니다. 뭔가 이벤트가 계속 일어나는 것 같기는 한데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저들이 발해 기지에서 뭔가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계속 반복되는 것 같고, 막 총도 쏘고 사람도 죽고 무서운 거 같기도 한데 왜 재미가 없고 지루하지?


어느 영화나 드라마가 재미없다고 느끼는 건 어느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합적인 요소들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관객의 재미와 흥미를 떨어뜨리죠. <고요의 바다>에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이 모든 요란에도 지루하게 느껴지나 한번 간단하게 보도록 하죠. 



1. 대사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참 고민 없이 대사 썼구나 싶은 생각이 한두 번 든 것이 아닙니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이 큰 역할을 하죠. 제가 본 예능 중 눈에 띄게 자막을 못 쓴 예능으로 <정글의 법칙>과 <도시 어부>가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된 특징은 자막이 지금 우리가 뻔히 보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요의 바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시청자가 뻔히 본 상황을 다시 돌아가면서 말합니다. 대사는 상황이 채 전달하지 못한 부분 혹은 전달할 수 없는 부분을 전달함으로써 대사, 상황, 행동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야 하는데, 상황을 또 한 번 반복하면서 오히려 끌어내립니다. 그렇다고 찰지게 입에 짝짝 달라붙는 맛도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극 중 수찬이 물을 뿜으면서 죽는 장면. 이무생 배우가 뱉는 대사라곤 "수찬" "정신 차려". 꽤 긴 시간 동안 밖에서 외치는 대사라는게 저 두 마디 뿐인 걸 보면서 참 대사 일차원적으로 쓴다고 느꼈습니다. <정글의 법칙>과 <도시 어부>의 자막이 생각났습니다. 차라리 "예전에도 잘 이겨냈잖아" 라던지 "지난 번 임무를 생각해봐" 혹은 전형적인 신파로 가자면 "돌아가서 결혼해야지" 등 나올 수 있는 대사의 형태는 얼마든지 다양합니다. 그랬다면 안 그래도 캐릭터가 부재한 인물이었던 수찬이 전사를 가짐으로써 둘 간의 관계를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수찬의 캐릭터가 조금이나마 레이어를 가질 여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안 그래도 몇 분 동안을 몸에서 물을 뿜어가면서 죽어가는데 다른 쪽에서는 "수찬" "정신 차려"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건 참 고역이었습니다.


2. 캐릭터

앞에서 언급한 무색무취의 수찬처럼 어느 누구 하나 공감 가고 매력적인 이가 딱히 없습니다. 무엇보다 이 극을 이끌고 가야 할 주요 캐릭터인 공유와 배두나 둘 모두에게서 큰 매력을 못 느낍니다. 공유는 능력있는 대장 같으면서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물같고, 차갑고 시크하고 힘없는 배두나는 <킹덤> 속 의녀 '서비'와 자꾸 오버랩됩니다. 그렇다고 감초 역할을 하는 좋은 조연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상컨데 생존에만 관심 있고 투덜거리는 '이성욱' 배우가 그런 역할을 조금 담당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 그 캐릭터의 투덜거림이 귀엽고 재밌게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알게모르게 신경을 거스르게 짜증 나게 만들더군요. 다른 인물들도 좀처럼 캐릭터가 없으니 좀처럼 누가 누군지 죽은 사람이 누구고 산 사람은 누군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극 중 의사는 왜 에피소드 1에서 그런 헤어, 메이크업, 의상이었는지 설명해주실 분..)


3. 배경

<인랑>부터 <승리호>, <고요의 바다>까지,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디테일 문제는 미래극을 그리는 한국 영화/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고요의 바다>는 배경을 근미래로 설정했는데 그 시기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현재 한국의 경제 규모와 남극의 '세종 기지'의 시설 규모를 감안할 때 지구도 아닌 무려 '달'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발해 기지를 지었다는 것은 지금보다 상당히 먼 미래, 한국이 훨씬 더 경제적으로 부강해야 가능할 것이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아파트 한 채를 짓는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인력, 자재, 부품이 들어가나요. 그런데 달에, 그 엄청난 시설을 지으려면? 많은 수의 인력과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 철근, 물 같은 자재와 각종 기계 부품들이 소요될 텐데, 실어 나르고 그들을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투여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언제가 될까요? 2050년? 2100년? <고요의 바다>가 무심히 툭 던진 '근미래'가 무책임하게 들립니다. 게다가 등장하는 몇몇 소품들 예를 들어 홀로그램으로 지도를 보거나 전화를 걸고 받는 등을 보면 상당히 기술이 진보한 미래 시기인 것 같죠. 그런데 막상 우주선의 내외부나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들, 계속 보이는 엠뷸런스, 건물들의 외관과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 병원 내부, 사람들의 행색 등을 보면 영락없이 현재 서울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쉽게 드러나는 디테일의 부재, 거기서 오는 시대와 배경의 충돌은 극의 시작부터 시청자에게 혼란을 줌으로써 은연중에 "이거 어설프다"는 인상을 줍니다. 한번 어설프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 앞으로 펼쳐지는 많은 요소들에 대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용하게 됨으로써 이 드라마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게 됩니다. 이런 혼란과 어설픔은 <인랑>에서도 똑같이 느꼈던 것 같네요.


4. 시나리오

납득이 가지 않거나 불필요한 대사와 사건, 즉 서사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조각으로써가 아니라 얄팍하게 당장의 극의 긴장을 높이거나 '있어 보이려고' 쓰인 사건이 많습니다. 그들이 출발하기 전 이 임무가 생존율 10%도 안 된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 10%라는 예측치는 무엇을 근거로 나온 것인가? 우주선이 굳이 불시착할 필요가 있었나? 발해 기지 건설에 참여했다는 말수 없던 그 캐릭터는 꼭 죽어야만 했나? 그가 없음으로써 이 팀에 발생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공유가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나? 비행 5분 전 부조종사는 왜 바뀐 것인가? 잠깐만 생각해도 시나리오는 구멍 투성이입니다.


예를 하나만 들어볼까요. <고요의 바다>의 첫 주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선의 불시착, 그 원인은 어이없게도 잘못 죄어진 볼트였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부터 헛웃음이 나왔는데요. <고요의 바다>가 더 깊은 고민을 통해 긴밀하게 직조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진 않았을 겁니다. 불시착이라는 사건을 만들기 전 더 궁극적인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반드시 우주선이 불시착을 해야만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하는가? 그 사건으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 결과는 전개될 서사에 어떤 작용을 하는가? '잘못 죄어진 볼트'라는 사건은 이 씬에서만 작용하고 증발하는 우연적인 사건입니다. 만일 우주선을 불시착시킬 수 있는 수많은 이유 중 '잘못 죄어진 볼트'라는 사건이 들어가야만 했다면 다른 이유들 보다 더 설득력있는 근거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부러 그랬다거나,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 항상 이런 식이어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도 연속적으로 이런 불확실성이 등장함으로써 예기치 못하게 긴장을 고조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 '잘못 죄어진 볼트'는 파편적입니다. 어디에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단 한 번 등장하고 증발합니다. 


좋은 시나리오와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의 차이 중 하나는 대사와 행동, 사건의 얄팍한 파편성입니다. 좋은 시나리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사와 행동, 사건은 '세계'를 조성하고 서사를 추동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입니다. 어떤 한 사건(행동)은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거나, 결과로 이어지거나, 또 다른 별개의 사건의 이유 혹은 근거, 암시를 제공하는 등 모든 크고 작은 사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그렇게 한 방향을 향해 일관되게 진행되는 대사, 행동, 사건은 통일된 강력한 힘을 갖고 서사를 앞으로 전진시킵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시나리오는 많은 대사와 행동, 사건이 서로 분절되어 있습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는 파편 같은 말, 행동, 사건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널브러져 집중과 긴장을 떨어뜨리고 통일성과 일관성을 해칩니다. 당연히 극은 힘 있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5. 연출과 플롯

1화부터 6화까지의 전개를 한 발 떨어져서 돌이켜보면 점층적으로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면서 서사가 진행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어렵게 발해 기지에 도착했고, 와봤더니 샘플은 없고, 그래서 샘플을 찾아다니고, 알고 봤더니 이 달의 물은 바이러스 비슷한 거고, 어린아이 생존자가 한 명 있고, 그들을 보낸 정부 기관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연출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전체적으로 복도 씬에서 헤매고 정체 모를 뭔가를 추적하고 주변의 생명체를 감지하는 장치를 이용하는 방식을 보면 감독은 분명 '에일리언 1, 2'에서 영향을 깊이 받은 것 같습니다. 거장 리들리 스콧과 제임스 카메론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그들이 긴장을 조성하는 방식을 학습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거나 정보가 추가될 때의 드라마틱한 연출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보고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비슷한 일이 반복되면서 제자리를 도는 느낌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라곤 중앙통제실에 모였다가 흩어져서 통로들을 돌아다니는 일의 반복인 느낌. <고요의 바다>는 연출이 좋지 않은데 플롯 마저 단조롭습니다. 근본적으로 드라마는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적으로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드라마 곡선을 그리면서 전체적인 한 시즌의 드라마 곡선의 일부로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곡선이 부재합니다. 긴장감과 극이 상승과 하강의 흐름을 지니지 못하고 계속 평행선으로 이어집니다,



간단히 쓰려고 했는데 또 쓰다 보니 길어졌네요. 이 글에서 채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자잘한 단점들이 존재합니다. 몇 번이나 웃음을 터트린 적도 있고요. 한 예는 정부 기간의 수장이 통화할 때 실루엣만 나오는 장면은 <에반겔리온>을 떠오르게 하더군요. 그 국장의 전체적인 스타일링부터 등장하는 연출까지 참 촌스럽다 느껴졌습니다. <고요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점은 발해 기지 내부 세트 디자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제작비의 대부분을 여기에 할애한 느낌을 받았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더군요. 안타깝지만 그것뿐입니다. 다음 에피소드가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 보는 동안 잠들게 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크고 작은 단점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매번 느끼지만 많은 자본이 투여된 기대작의 좋지 못한 결과물을 보는 건 안타깝고 좋지 않은 경험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그것이 Made in Korea 일 때는 더더욱 말이죠.





매거진의 이전글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