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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se Feb 19. 2019

알리타 : 배틀 엔젤(2019)

자극적인 맹물.



<알리타>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컸습니다. 원작인 <총몽>의 팬이라서가 아니라, 언젠가 우연히 극장에서 본 알리타 예고편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그래픽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검색을 해보니 제작에 '마스터' 제임스 카메론의 이름이.. 그때부터 이 영화의 개봉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한국에서 2월 5일 먼저 개봉을 한 이유로, 계속 올라오는 리뷰에 눈과 귀와 코를 질끈 감았습니다. 제 감상에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이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극장에서 오프닝 타이틀이 오르기 전 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 영화는 <스타워즈>가 유일합니다. <알리타>는 최초로 <스타워즈> 외의 영화로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소문난 집 잔치에 맛있는 먹거리는 없는 것인가! 소문난 잔치에 가서 자극적인 맹물을 들이켜고 돌아온 느낌입니다.





소름 끼치는 그래픽

모두 아는 바와 같이 그래픽은 정말 끝내줍니다. <알리타>를 통해 영화 제작 속 그래픽을 이용한 캐릭터 묘사 기술은 '모션 캡처'에서 '이모션 캡처'를 지나 '퍼포먼스 캡처'에 이르렀습니다. 이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이용한 최초의 영화인 <알리타>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최전선을 눈으로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어색함도 느껴졌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주인공 알리타의 얼굴과 표정 변화가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신인 배우라고 소개하며 영상을 보여줬다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발전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보는 것은 경이로우면서 한편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알리타>는 영화에 있어서 컴퓨터 그래픽은 내러티브의 도구일 뿐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는 영화의 기본 명제를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과연 무엇이 <알리타>의 문제였을까요.






캐릭터 부재

한번 잘 생각해봅시다. 영화의 주인공을 제외하고 매력적인 인물이 영화에 있었나 하고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든 인물이 맹숭맹숭합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닥터 다이슨 이도와 악당 벡터는 너무 평면적이고 일차원적입니다. 닥터 다이슨이 간직한 과거의 슬픔은 그저 말로써 전달될 뿐입니다. 그는 마음씨 좋고 따뜻한 아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순하고 수동적인 캐릭터입니다. 벡터는 악당 캐릭터에게 가장 중요한 '악행의 동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는 왜 악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배트맨>의 '펭귄맨'이나 '조커'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들의 악행 자체가 아니라 '동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결여된 악당, 그냥 악하기만 한 악당은 예전 8~90년대까지나 존재할 법한 캐릭터입니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는 벡터 캐릭터는 차라리 만화적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닥터 다이슨의 전 부인인 시렌 역시 평면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가끔 다이슨 앞에 나타나고 알리타를 스쳐지나고 벡터 옆에서 존재하는 것 말고 딱히 극 진행에 도움을 주는 일이 없습니다. 휴고가 몸을 잃게 되는 후반부에서 마음을 돌려 착한 사람이 되지만 그 캐릭터 변화가 납득되는 관객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캐릭터 구축이 전무한데 동기까지 결여된 캐릭터 변화를 받아들이는 이는 없기 때문입니다. 시렌은 이 영화에서 빠져도 전혀 지장이 없는 인물입니다.





휴고는?

관심법을 이용해서 로드리게즈 감독의 의도를 한번 들여다보자면 그래도 휴고 캐릭터만큼은 입체적인 인물로 그리려고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 심성은 바르고 착하지만, 공중도시에 오르려는 자신의 꿈 때문에 나쁜 짓을 벌이는 청년. 자신 만을 사랑하는 착하고 순수한 알리타와 나쁜 짓을 벌이고 있는 자신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사이보그 몸을 갖게 되고, 죽음을 맞게 되는 비극적인 인물. 모르긴 몰라도 이게 감독이 원했던 입체적인 휴고 캐릭터였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알리타 보다 더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비극적 최후를 맞기도 하는 인물이기에 관객이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큰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관객은, 적어도 저는 휴고 캐릭터에 이입이 되질 않았습니다. 휴고 캐릭터 역시 제대로 구축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휴고 캐릭터를 한번 봅시다. 

꽃미남이자 바르고 선해 보이는 청년의 등장 --> 알리타와 즐겁게 나누는 시간 --> 하늘 도시로 오르고 싶어 하는 바람 --> 나쁜 짓 --> 키스 --> 후회 --> 비극적 결말


감독은 정말 도식적이고 경제적으로 휴고의 행동을 결과만 보여줍니다. '얘는 이런 애고 이렇게 하다가 저렇게 되고 그래서 이렇게 죽어'라는 의도에 맞게 형식적으로 그를 묘사하는 동안 영화라는 세상 속에서 하나의 살아있는 자아로 존재해야 할 휴고는 생명력이 결핍된 종이 인형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였나. 무엇이 그렇게 '도식적'이었나. 





과정(고뇌와 갈등)의 결핍

알리타라는 존재의 등장. 그로 인해 새로 싹튼 휴고의 존재 이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하지만 반대편에 위치한 또 다른 나의 존재의 이유(하늘 도시로 가는 꿈). 그 둘의 충돌. 휴고라는 인물을 추동시키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알리타에 대한 사랑, 그리고 하늘 도시로 가려는 꿈.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합니다. 왜냐하면 하늘 도시에 가기 위해 자신이 벌이는 악행이 순수하고 착한 알리타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알리타는 너무도 순수하고 착해서 나에게 심장마저 꺼내 존재(충격적인 장면!)인데, 나란 인간은 뒷골목에서 나쁜 짓이나 하다니. 사람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알고리즘에 따라 나오는 결과값에 맞춰서 칼로 무 썰듯 기계적으로 단칼에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감정과 애착, 내 꿈을 버리는 것에 대한 좌절감과 안타까움, 후회에 대한 불안, 새로운 관계의 시작에 대한 설렘 등 행동의 선택에 따른 다양한 감정이 서로 충돌하며 소용돌이칩니다. 그 속에서 사람은 자연스레 고뇌하고 갈등하기 마련입니다. 이 영화는 휴고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줄 가장 중요한 요인, 바로 갈등과 고뇌를 빠뜨렸습니다. 



캐릭터는 '대사'가 아닌 갈등과 선택이라는 '행동'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중간 과정은 생략!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친구 앞에 나타나 "I'm out" 내뱉어버리는 휴고, 더군다나 그 날, 그 시간은 나 때문에 알리타가 시합을 하는 시간 아닙니까? 나에게 심장까지 꺼내 주는 사람이 나를 위해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하필이면 그때 범죄 현장에 가야 한다면, 그게 당신이라면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뇌를 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 현장에 간 이유가 계속 범죄를 이행하기 위함이 아니라 내 꿈과 결별하는 선택을 선언하기 위해서라면,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번뇌가 있었겠습니까. 영화의 정서에서 가장 클라이맥스에 이러는 이 씬이 별 중간 과정 없이 쭉쭉쭉 진행되어 버리니 우리는 휴고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나리오적 선택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휴고를 밋밋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로 전락시켜버립니다. 그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줄 사건을 뻔히 지나침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알리타?

그럼 알리타는 매력적인 캐릭터인가. 글쎄요, 저는 반반인 것 같습니다. 어떤 면은 매력적인 거 같은데, 그 매력이 더 깊어지지 못하고 어느 지점에서 희석되는 느낌. 사실 이 영화는 다른 주요 조연들의 캐릭터를 죽여가면서까지 모든 공력을 주인공에게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만큼 알리타에 대한 집중도가 압도적입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주인공이면서 '퍼포먼스 캡처'라는 신기술이 적용된 캐릭터이니만큼 영화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죠. 그만큼 주인공은 영화를 힘 있게 이끌어갈 책임이 부여됩니다. 그런데 다른 캐릭터들을 이렇게 죽여가면서까지 분량과 집중도를 몰아준 주인공의 매력이 반반이다? 결국 실패가 아닐까요?





저는 처음 알리타 캐릭터가 다른 여타 영화의 사이보그 캐릭터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영화들 속 사이보그들은 대개 자신에게 육신을 준 존재를 부모 혹은 주인으로 생각하고 믿고 따릅니다. 그런데 알리타는 그러지 않았어요. '내게 새 생명을 주긴 했지만 난 당신의 딸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녀에게 독립적이고 확실한 자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을 잃고 아기처럼 순수하게 행동하지만 확실한 주관과 독립성을 갖춘 사이보그. 클리셰를 거부하는 접근. 알리타가 흥미로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다른 영화들과 차별점을 갖는 지점이니까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알리타의 매력은 다이슨과 함께 대립할 때 성립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딸이 아니라는 알리타의 말에 대한 닥터 다이슨의 반응, 서운함을 느끼는 그 순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인 그 순간, 영화는 결정적으로 감정선을 놓치며 다이슨과의 관계 구축에서 삐끗합니다. "어? 뭐지?" 싶었습니다. 그 지점이 이 영화가 애매하다고 느낀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는 딸의 죽음을 심장에 새기고 그 슬픔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하는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딸의 살인자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인물이기도 하죠. 그런 그가 딸에게 주려고 했던 사이보그 몸을 주고, 딸의 이름까지 줬다면, 아마 그는 알리타를 딸의 분신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알리타에게 '아버지'라 불리길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당신 딸이 아니다"라고 상대방이 말한다면? 그 실망감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닥터 다이슨과 알리타 간의 갈등과 긴장은 극을 이끌어가는 메인 플롯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의 메인 플롯을 알리타의 정체성 찾기로 정했다면 알리타의 독립성에서 파생되는 다이슨과의 감정적 긴장은 충분히 훌륭한 서브플롯으로 기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 카메라는 닥터 다이슨을 그냥 아무렇지 않게 훑고 지나가버립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계속 따뜻한 아버지로 존재합니다. 이 영화가 이야기 안에서 갈피를 못 잡았다고 제가 확신한 순간은 알리타가 다이슨에게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부른 씬입니다. 둘 사이의 큰 전환점으로 작용해야 할 그 씬에서 역시 다이슨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지나갑니다. 알리타와 닥터 다이슨 둘 모두의 캐릭터와 관계가 흐지부지 맹탕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감독은 러닝타임의 상당 부분을 부녀 관계에 할애하면서 이런 중요한 전환점은 그냥 지나가버리면 대체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의아하더군요.





만일 저의 말대로, 알리타가 강한 자의식과 독립성을 지닌 이유로 다이슨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다이슨은 서운함을 갖지만 한편 부성애를 느끼며 여전히 딸처럼 보살핀다. 알리타가 다이슨의 말을 안 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건을 일으키면서 둘 사이 긴장과 갈등이 서서히 증폭된다. 이런 감정선이 생겼다면 닥터 다이슨 캐릭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부각됐을 것입니다. 알리타의 캐릭터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이 긴장 관계에서 시렌이 개입할 만한 부분도 있었을 겁니다. 부녀간 갈등, 긴장, 해결이란 플롯은 알리타와 벡터 간 갈등, 긴장, 해결이란 메인 플롯의 하부에 위치한 하면서 영화의 레이어를 더하고 이야기를 탄탄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만약 휴고 캐릭터도 더 살아났다면 거기에 서브플롯이 또 하나 얹어지니 이야기 밀도는 더 높아지겠죠.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떠나서 행동의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들도 참 많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텍사스'에 난입해서 악당을 죽이자며 일장연설을 하는 장면. 관객을 "뭐지 갑자기?" 하게 만드는 씬. 그리고 악당이 강아지를 죽이자 그 피를 눈 밑에 그리는 씬. 알리타가 강아지와 관계를 맺은 건 제 기억으로 알리타가 처음 마을에 나갔을 때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알리타가 그렇게 강아지에게 큰 애착을 가졌는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일련의 알리타의 밑도 끝도 없는 행동이 오히려 그녀의 무모하면서도 사회적 관념이 결여된(!) 캐릭터를 구축해주는 효과를 준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걸쳐 로드리게즈 감독이 무모하고 순수한 알리타 캐릭터 구축을 위해 그런 씬들을 넣었는지 아닌지 끝까지 미궁으로 남습니다. 워낙 많은 지점이 애매모호하고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결국 알리타의 매력이 반반인 이유, 이 영화가 맹숭맹숭, 뜨끈 미지근한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캐릭터와 관계 구축에 있어서 뭔가 될 여지는 보이는데 그게 안 되는 많은 지점들.





만약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했다면?

저는 상당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메인 캐릭터와 주조연들의 여러 문제도 있지만 컷과 컷 사이 배우들의 연기 감정선이 들뜨는 지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또 그저 소비되어 버리는 많은 조연들과 그들의 연기 디렉션 문제도 상당히 큽니다. 카메론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 감독입니다. <터미네이터 2>, <에일리언 2>, <타이타닉>, <아바타>까지, 카메론은 진부한 스토리를 오직 최신 기술로 커버하는 감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지만, 제가 생각하는 카메론의 진가는 기술이 아니라 완벽한 연출력, 내러티브 전달입니다. 그가 차용하는 최첨단 기술이 그의 천재적인 연출력을 가릴 뿐이죠. 스토리가 뻔하고 평이하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재밌습니다. 영화 제작에 사용되는 그래픽 기술의 신기원을 이룩한 <아바타>가 오직 기술만 뛰어났다면 전 세계적인 흥행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타이타닉>이 오직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흥행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는 새롭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재미없게 만드는 감독들로 넘쳐납니다. 평이하고 진부한 스토리를 흥미로운 내러티브로 재밌게 만드는 감독은 정말 드뭅니다. 그 최정점에 제임스 카메론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장 눈을 현혹시키는 최첨단 기술이 대단해 보이지만 카메론 감독의 진가는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에 몰입된 나머지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에 있습니다. 진부한 스토리지만 영화에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그의 연출력은 단순히 그래픽 때문이 아니라 시각 효과부터, 사운드 효과, 음악, 카메라 프레임, 컷의 흐름, 배우들의 연기까지 영화의 모든 총체적 요소들이 훌륭히 결합된 결과물입니다.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밑의 글을 한번 참고해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josetmojito/2



아무튼 <알리타>는 제가 오랫동안 무척이나 기대를 했던 영화입니다. 그만큼 아쉬움이 큽니다. 그리고 그 아쉬운 지점 하나하나가 너무 눈에 잘 보이고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영화가 됐을지 보여서 더 안타까운 영화이기도 합니다. 처음부터 3부작을 염두에 뒀다고 하니, 1편이 성공을 거둬 후속작이 나오기를 바라는데, 예상이 조금 어둡기는 합니다. 어쩌면 제작자의 입김이 너무 작용한 탓도 존재하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룩한 기술적 성취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 영화에 사용된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제작될 영화의 모습이 어떨지 기대를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알리타>는 드디어 내년이면 베일을 벗고 세상으로 나올 <아바타 2>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린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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