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에 글자수 제한이 있는 줄도 몰랐고 상대 수락이 필요한 줄도 몰랐다.
[1]
아마 지난주 토요일, 그렇다면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 그 DM은 내 생애 최초의 DM이었다. 아파트 청약도 아니고 ‘생애 최초 DM’이라니. 게다가 생애 최초 특별공급이나 생애 최초 대출은 ‘생에 첫 시도’에 있어서 나름의 혜택을 주는 것인데, DM은 생애 최초로 보내든지 생애 마지막으로 보내든지(마지막이 꼭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혜택이랄 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큰돈이 오가는 청약에 있어서도 생애 최초에 대해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고작 메시지 하나일 뿐이지만 생애 최초 DM도 나름의 혜택을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령, 생애 최초로 DM을 보내는 경우 받는 사람은 24시간 이내에 답장을 하지 않으면 보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인증샷을 찍어 메타에 보내야 이용 정지를 당하지 않는다든지 말이다. 혹시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해봤어?’ -정주영-
‘아니, 그렇잖아. 지금 내가 꼭 답장을 못 받아서(심지어 읽지도 않아서) 이러는 게 아니라…’
……
‘아니… 나도 아는데…’
……
‘아 그래… 바쁜 거 알지… 이 사람아 나도 평일에는 바빠… 잘 알지 아는데…’
……
[2]
기억을 더듬어보니, 오후 4시쯤이었을 시간. 익숙한 카페의 창가자리, 높이가 족히 4미터는 넘을 유리창을 통해 이리저리 밖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유독 하늘이 어둡다. 며칠 동안 어둑했던 하늘이지만 오늘은 다르다. 마치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 같은 어린애 얼굴이다. 그것도 무척 억울한 듯한 얼굴.
“음, 비 올 것 같은데 이제 갈까?”
나는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다.
“응? 아, 그래. 가자.”
우리는 천천히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고, 카페를 나선 지 5분도 되지 않아 거짓말처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비 몇 방울을 맞더니 두 손을 머리에 올리면서 내게 말했다.
“오, 비 온다. 오빠 촉 좋다.”
아내는 신기하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나는 씩 웃으며, “어, 별거 아니야.”라고 했다. 나 역시 속으로 신기했지만, 어김없이 그렇게 거들먹거리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자 아내가 킥킥 웃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많아지자 나 역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아내에게 말했다.
“우리 뛰자! 헛둘헛둘! 왼발, 왼발, 왼발!”
아내는 평소에 내 말을 잘 따라 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욍발! 욍발! 욍발!”하며 곧잘 뒤따라왔다. 아내는 1년 전에 교정을 시작했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아내의 발음을 가지고 놀린 것도 벌써 1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갈수록 시간은 쏜살 같이 빠르게 흐른다.
비를 피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잠시 아내의 발걸음이 눈에 들어왔다. 아내는 입으로 ‘욍발’인지 ‘왼발’인지 모를 구호를 외치고 있었지만 계속 오른발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그걸 언급할까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아내와 같이 낄낄 웃으며 그저 마저 남은 뜀박질을 하기로 했다.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위화감이었을까, 한편으로는 11월 끝자락의 비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왠지 그랬다. 잠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빗방울이 달갑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단순히 우산 없이 비를 맞은 것이 찝찝해서였을까, 아니면 불과 3~4일 전에 내렸던 폭설 때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 폭설이 1907년 관측 이래 최고의 적설량을 기록했던 폭설이라는 기사 때문이었을까.
집에 거의 다다르자 아내와 나의 뜀박질 속도도 점점 줄어들었다. 마치 이제는 안전하다는 듯이. 공동출입현관문 입구에 도착해서야 나는 걸음을 멈췄고, 외투와 머리에 묻은 빗방울들을 툭툭 털어냈다. 그리고 뒤돌아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봤다.
며칠 전부터 화단에 자리를 잡고 있던 눈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묘한 위화감. 빗방울을 털어내던 손길에 어색한 망설임이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눈덩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볼 뿐이었다.
[3]
안녕하세요, 박정민 대표님. 저는 서울 모처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첫 소개가 ‘사람’이라니, 당연히 사람일 텐데 말입니다.
사실, 이런 일방적인 말 걸기(DM)로 정말 소통이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에 인스타 같은 SNS는 거의 안 하는 편이고, 동시에 못하는 편입니다. 제가 뭐든지 못한다고 무조건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재능이 없거나 잘 못하는 것이어도 흥미가 있거나(ex. 노래), 돈이 된다면(ex. 공부), 나름의 노력이라도 하면서 살아왔지만, SNS는 흥미도 없고, 돈이 되는 것 같긴 한데(된다고들 하는데)… 이상하게 안 하게 되더라고요. 검색한 적도 없는데(정말로), 자꾸 다 벗은 여자들 사진이 뜨고, 부담스러운 근육맨들이나, 누가 봐도 자랑하는 사진들인데 그렇지 않은 척하는 모습들 속에서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일방적인 말 걸기로 이렇게 글을 써 보는 경험도 처음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도 제 메시지가 대표님께 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닿지 않을 가능성이 높겠죠. 제가 또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라, 이렇게 가능성이 낮은 일에 시간을 들이고 있는 것을 보니 ‘아, 오늘이 주말이 맞긴 한가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제서야(아니면 유독 오늘)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88년생 남자. 직업은 회계사. 장래희망은 하와이에서 신곡 나오면 신곡 듣고, 새로운 영화 나오면 영화 보고, 책 읽고 글 쓰며 사는 것. 삶의 목표는 무언가를 남기는 것. 꿈은 세계 평화입니다. 아, 그리고 기혼입니다. 제가 이렇게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주절거리는 이유는 전부터 한번은 대화해보고 싶었던, (약간은) 오래된 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엄청 열성적이진 않으니 동년배 남자 팬에 대한 부담까지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방금 유튜브에 대표님이 나왔습니다. 이영지의 레인보우에서 노래를 부르시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기대했던 것보다 못 부른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듣다 보니깐 ‘아, 혹시 몽골의 흐미 창법인가? 느낌이 있네. 역시 래퍼 출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한 곡을 잘 듣고 난 후로, 다음 영상으로 편집자k 채널에서 올린 영상이 떠서 열어봤습니다. 진부책방에서 책 이야기 하시는 영상이더라고요. 사실 진부책방이라고 해서 ‘설마 그 진부가 평창군 진부면의 그 진부겠어?’하고 옆에 있던 아내에게 ‘이야 진부 많이 발전했네.’라고 드립을 쳤는데, 알고 보니 그 진부가 그 진부가 맞았던 것. 머쓱. 그리고 제 외가댁이 그 진부였던 것.
아무튼 영상은 끝까지 잘 봤습니다. 좋은 일을 하시려는 것도,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으시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그 특유의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 이런 것도 봐야 하는데…’하는 부분에서는 '저 사람, 아직 마음속에 꿈이 많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 소중한 주말에 여자 아이돌도 아닌 동년배 남자에게 이렇게 팬레터를 쓰는 건지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 이유가 맞는 것 같습니다, 박정민 배우, 작가, 대표님(이하 “배작대”)은 제게 잔잔하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너포위에서 처음 보고 잘되겠다 싶었네, <쓸 만한 인간> 너무 잘 읽었네, 파수꾼 어떻게 봤네, 랩 잘하네, 여장은 좀…., 어쩌고 저쩌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알맞은 표현 같네요.
사실 제가 올해 처음으로 책을 써 봤습니다. 아, 그렇다고 출간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브런치 스토리라는 플랫폼에서 출간을 특전으로 하는 연례 프로젝트에 지원한 게 전부일뿐입니다. 애초에 글을 써보는 행위가 목적이었기에 아무래도 당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글을 쓰려고 시도했던 배경에는 여러가지 개인사가 있었겠지만 <쓸 만한 인간>을 읽었던 시간도 분명히 포함되었다는 점입니다. 어릴 때 읽은 책이라고는 다섯 권도 안되고, 여자친구인 지금 아내에게 편지 반 장 채우는 것도 힘겨워하던 제가 그렇게나 긴 글(어디까지나 제 기준에서)을 쓰고 앞으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꽤 놀라운 일이거든요.
이제까지 인생에 정해진 길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행복의 조건 같은 것들이 정답처럼 있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정해진대로 잘 살고 있다고, 행복의 조건이라고 알고 있던 것들을 차곡차곡 잘 모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행복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멈추고, 내가 도대체 뭘 할 때 행복한지, 뭘 할 때 즐거워하는 사람인지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질문에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밥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가?’라는 식의 아주 사소한 질문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질문은 어느새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삶에 대한 물음으로까지 이끌었고, 그때까지의 생각을 정리한 결과 저는 '무언가 남기고 싶은 사람’이라는 소결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남길 것인가, 고민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일단 나는 사리를 남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빠르게 패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글쎄요. 이름을 남기기에는 동명이인이 다소 많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남길 마음은 얼마든지 있었기에 거침 없이 지갑을 열었지만 하필 지갑 안에는 만오천원(로또 오천원 당첨용지 포함) 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정말 이정도로도 충분한걸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제 결혼도 했겠다 자식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겠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잠깐이나마 남길만한 것들을 대강 생각해봤지만 모두 충분할 정도로 납득되지 않은 것들이라서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그것들은 나를 대변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웠을 겁니다. 저는 나를 둘러싼 부산물이 아니라 그저 나 자체를 남길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글'은 매우 매력적이었죠. 마음만 먹으면 이 순간에도 몇백 년 전에 살아 숨쉬던 작가의 글을 볼 수 있다는 것 말입니다. 글이라면 나를 남길 수 있는 것으로서 훌륭한 매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아직 읽고 계세요? 읽고 계시면 당근을 들어주세요.
아무튼 출판과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을 보다가 이렇게 박정민 배작대님께 팬레터까지 쓰게 되었네요.
비록 아직은 너무나 부족한 글을 쓰고 있지만, 꾸준히 이어간다면 저도 조금은 성장하겠죠? 그렇게 언젠간 만날 수 있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하시려는 일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