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엄격한 나는 나에게도 엄격한가

감상평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중 네 번째 산책

by 조쉬코쉬

장자크 루소의 마지막 저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네번째 산책에 대한 감상평을 써보고자 한다.


네번째 산책은 거짓말에 관한 루소의 견해와 그 견해에 따른 성찰이 주를 이루는 편이다.


루소는 플루타르코스의 저서(그의 저서는 루소의 애독서이자 생애 마지막 애독서일 거라고도 말함) 중 도덕에 관해 쓴 책 <적들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읽고 있던 중이었다(내용에 대한 추가 언급은 없었고, 단지 그 책을 읽고 있던 상황만을 언급).


그러다 로지에 신부의 정기간행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는데, 그 정기간행물의 제목은 ‘진리에 일생을 바치는 이에게, 로지에’였다. ‘진리에 일생을 바치는 이에게(Vitam vero impendenti)’는 로마의 풍자시인 유베날리스의 글귀를 인용한 것인데, 그것은 루소가 좌우명으로 썼던 문구였다. 즉 그것은 루소를 저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었다. 그런데 '신부가 루소를 왜?'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 배경은 1764년 볼테르가 풍자문 <시민들의 견해>를 써서 루소가 자식들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사실을 폭로했던 데에 있다. 그 이후 루소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에 매우 민감해져 있었는데, 그때 마침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것으로 보이는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정이었다. 대놓고 자신을 비난한다고 보기는 애매했기 때문에 루소는 ‘거기에 속아 넘어가기에는 이런 분들의 말투를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가 이런 예의 바른 표현 뒤에 내게 가혹한 역설을 던지려는 생각이었음을 알아챘다.’고 말하며, 왜 저자가 그런 빈정거리는 제목을 지었던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그래서 루소는 그가 애독하던 훌륭한 플루타르코스의 저서로부터 얻었던 교훈을 활용해 볼 겸 다음날 산책을 하며 거짓말과 관련하여 그 자신을 검토해 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것이 네번째 산책에 대한 배경이었다.


거짓말과 관련된 루소의 첫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에피소드는 1728년 16세였던 루소가 토리노의 베르첼리스 부인 집에서 하인으로 일하던 때였다. 당시 루소는 여주인의 리본을 훔쳤으나 진실을 털어놓지 못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하녀였던 마리옹에게 누명까지 씌웠다. 추정컨대 그 사건으로 마리옹은 죽임을 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루소는 이 일로 평생 동안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 그리고 그 죄책감이 씨앗이 되어 루소는 거짓말에 관해서는 굉장히 보수적인 견해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루소는 거짓말로 인한 이득과 손해를 따져가며, 해로운 거짓말과 선의의 거짓말을 구분하려는 시도 자체를 거부한다. 루소는 그와 같은 보수적인 결론이 ‘가엾은 마리옹을 희생시킨 그 죄 많은 거짓말은 내게 지울 수 없는 후회를 남겨, 그 후의 여생 동안 이런 유의 온갖 거짓말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남의 이해관계나 평판과 관련될 수 있는 모든 거짓말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다.’고 했다. 이렇듯 루소는 어떤 목적의 거짓말이든 모두 유죄로 간주해 스스로 금했던 것이다.


루소는 자신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상당히 높았던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의무를 그토록 세심하게 가늠하는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의무도 충분히 검토해 보았던가? 남에게 정당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에게는 진실해야 하며, 이는 성실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에 마땅히 표해야 할 경의다.’ 라는 식의 강도 높은 자기 성찰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 되었고, 그의 나이가 66세임에도 여전했다는 점은 같은 인간으로서 놀라울 따름이다. 참고로 루소는 66세에 사망했다.


아집과 자기 합리화로 더이상의 자신에 대한 성찰이 멈춘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점만으로도 루소의 마음가짐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책으로나마 몇 백 년 전의 그와 의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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