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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똥망고아빠 Aug 04. 2019

랄릿 씨의 하루

건축마감 현장 엔지니어의 하루

 5시 30분 휴대폰의 알람이 울립니다. 5분 후에 재 알람이 울립니다. 그제야 눈을 힘겹게 뜨고 화장실로 몸을 옮겨 세수를 하고 대충 옷을 꺼내 입은 뒤 나갈 준비를 합니다. 아내가 물어보네요 ‘허리는 괜찮아?’ ‘응 스트레칭할 동안 간단하게 요기할 거 좀 챙겨줘’ 아내와 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눕니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이지만 가족의 얼굴을 한 번 보고 힘을 내어 하루를 시작합니다.


인도  현장에 근무하는 공사팀 건축마감 엔지니어 랄릿 샤르마 씨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뭄바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ㅁㅁㅁ 현장에서 랄릿 씨의 집은 약 2시간 떨어져 있습니다. 뭄바이 도심에서 북측에 위치한 카시미라(Kashimira)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데요, 집에서 바얀다르(Bhayandar) 전철역까지 약 20분, 현장 인근 반드라(Bandra) 역까지 전철시간만 1시간 20분 그리고 반드라 역에서 현장까지의 시간을 포함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현장에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랄릿 씨처럼 적게는 한 시간 반에서 많게는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여 출근을 합니다. 왕복 3시간에서 5시간을 길에 투자하는 모습이 흡사 한국의 서울 인근 도시에서 서울의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그것과 매우 흡사하네요.

바얀다르 역 입구


바얀다르 역 플랫폼에서 바라본 슬럼


반드라역



아침 일찍 도착한 랄릿 씨는 그날 시작할 일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20분 뒤 도착할 공구장이 확인할게 뻔하거든요. 몇 번은 구내식당에 피신해 보기도 했지만, 집요하게 찾아 캐묻는 공구장을 겪은 후 이제 업무 정리가 업무 시작의 중요한 일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아침 8시. 직원의 안전조회가 시작됩니다. 안전조회 후 직영 인력의 분배에 참여하고, 담당 지역의 인원을 배치하는 일은 업체 간의 코디네이션 또는 유휴지역을 관리하는데 빠져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배정받은 인원도 평소보다 부족하지만 공도구가 부족하네요. 타 지역의 급한일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소식을 현장 로지스틱 담당 아진키야(Ajinkya Deosakar)와 마힌다르(Mahendar Singh)로부터 전달받았습니다. 실랑이를 벌입니다.

 '왜 어제 요청했던 인원 그리고 공도구를 받지 못하는 거요?'

 '어쩔 수 없어 발주처가 긴급히 요청해서 동측 타워 지역에 급하게 비계를 매야하거든'

 '제 지역의 일도 급한데 상의도 없이 그러면 어쩝니까? 공구장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소. 공구장에게 연락해 보던지'

현재 상황을 보고합니다. 공구장이 타 지역 공구장에게 상의한 후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랄릿, 추가 인원 받아가시오. 그리고 필요한 트랙터는 나중에 보내주리다’ 마힌다르가 소리칩니다.


 아침 8시 반 협력업체의 안전조회가 시작됩니다. 아침에 정리한 업무내용과 상이한 내용이 있는지 협력업체 관리자 그리고 반장과 간단하게 협의하고 작업장소로 이동하며 작업허가서를 확인하다 보면 발주처와의 패트롤 시간이 됩니다.


 오늘도 발주처 유비(Ujjaljyoti Battacharya)씨는 까칠합니다. 어제 반입되기로 했던 리테일 공구의 철물 자재가 반입되지 않았거든요. 모두 숨죽이며 업체별 그리고 공종별 브리핑을 진행하며 작업장소를 하나씩 돌아봅니다. 갑자기 유비씨는 랄릿 씨를 부릅니다.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는 슬래브 단부 보강작업 현황과 기둥 마감 작업을 위한 비계 설치 진행 현황을 묻습니다. 다행히도 어제까지 완료하기로 했던 부분을 완료하였고, 오늘 인원 배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비계 설치 작업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대답을 들은 유비씨는 아무 말 없이 다른 공종에 대한 보고를 받습니다. 이로써 한 숨 돌리는 랄릿 씨였습니다.


 전쟁같이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벌써 11시가 되었네요. 구내매점에서 차를 한잔 주문하고 담배를 한대 태웁니다. 하루에 두 번 정도밖에 피우지 않는 담배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간이 정말이지 달콤합니다. 옆에 있는 직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잠깐이나마 압박과 근심을 털어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안전 관련 업무를 공유하는 SNS 채팅방에 안전팀 직원 라주 파틸(Rajvardan Patil)씨로부터 메시지가 옵니다. 당사 직영 인력이 작업하고 있는 곳에 안전 관련 문제가 발생했다는군요.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랄릿, 상부에서 콘크리트를 치핑 하는데 하부 통제가 잘 안되고 있는 것 같아. 밑에 통제를 담당하는 워치맨이 잠시 자리를 비운 거 같은데?’

 ‘라주, 잠깐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온 거 같아’

 ‘그렇다면 잠깐 작업을 중단하던지 아니면 대체자를 두고 작업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은데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같이 교육을 좀 진행하자고. 신규 작업자도 일부 있어 추가 교육이 필요할 거 같아’

 ‘좋은 생각이야 당장 현장교육을 실시하고 점심시간 후 전체 교육을 실시하도록 연락을 돌리도록 하지’

 숨 가쁘게 오전이 지나갑니다.


 즐거운 점심시간입니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올해 서른다섯 살인 랄릿 씨는 아직도 점심시간이 기대가 됩니다.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도 즐겁지만 꿀같이 달콤한 낮잠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운 지 1분도 채 안된 거 같은데 사무실에 불이 켜집니다. 그리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김진언 책임이 오전 작업 진행 현황과 오후 작업내용을 확인합니다.

 ‘아직 잠도 안 깼는데 너무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뻔한 랄릿 씨였습니다.


오후를 시작합니다. 그나마 조금이나마 차분하게 다른 공종을 확인하며 시야를 넓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빠르게 현장을 다니며 작업의 시작 여부와 특이사항을 확인하고 협력업체 사무실로 이동합니다. 랄릿 씨가 담당하고 있는 공종과 다른 설계사의 최종 마감 목업에 대한 내용을 보기 위해서인데요. 최근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리테일 지역의 건축마감 관련 진행사항과 도면을 확인하기에는 협력업체 사무실이 가장 좋은 장소입니다.

 ‘싯다르트, 목업 자재는 다 도착했다며? 근데 왜 설치를 안 하고 있지?’

 ‘시간이 좀 걸리는 작업이야. 핸드레일 설치 전 바닥 프레임 설치는 오차범위가 3밀리미터 이내여서 정밀함을 요하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정말 죽겠네’

 ‘그렇겠군. 내가 도와줄 일은 없어?’

 ‘마침 잘되었어. 안 그래도 고소작업차량 한 대가 더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혹시 가능하겠어?’

 ‘확인해볼게, 어저께 타 지역에 있던 차량 한 대가 당사에 반납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장비 담당 하리샤(Harisha)씨에게 전화를 걸고 차량 한 대를 추가로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랄릿 씨였습니다.


 4시 반입니다. 공정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공구장 주도하에 금일 진행된 내용 그리고 잔여 작업에 대한 예상 완료 일정 등을 공유합니다. 유독 랄릿 씨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집요하게 캐묻는 김진언 책임입니다.

 ‘랄릿, 오늘 안전 관련 이슈는 앞으로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어. 그리고 현장 정리정돈 상태가 왜 그 모양이지?’

 ‘인원이 부족한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추가 인원이 배정된다면 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 추가 인원을 요청하는 상황이라 그게 녹록지 않다는 거 잘 알잖아.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계획을 존 별로 세워서 차근차근 정리하는 방법으로 진행하도록 해. 내일 아침에 계획을 알려줘’

 전체 60,000제곱미터의 리테일 지역은 대부분이 공용구간이며 당사 직영 인력을 통해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안전시설물 점검 및 보수 작업을 시작해서 인원이 부족한 데다 업체 간 코디네이션이 필요해 부득이 당사 직영 인력이 직접 작업하는 구간들이 늘어나고 있어 일손이 많이 모자란 게 사실이거든요. 오늘 저녁에도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 생긴 랄릿 씨였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다시 현장으로 나서는 랄릿 씨입니다. 시간은 6시. 작업자가 가장 피로해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입니다. 일부 작업자는 작업 종료 후 귀가한 뒤이지만 대부분의 협력업체는 9시에서 11시까지 작업을 하기 때문에 야간작업 내용을 재확인하고 작업허가서에 따른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시작된 몬순에 의한 피해 여부도 확인해서 야간작업팀에 인계하는 일까지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9시입니다. 부리나케 릭샤를 잡아타고 반드라 역으로 향합니다. 9시 14분 기차를 놓치면 최소 30분은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다시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콩나물시루같은 열차로 출퇴근하는 랄릿씨


퇴근시간 열차를 이용하기 위해 줄 서있는 사람들


역전 과일/야채 판매장


퇴근 후 가족과의 저녁식사


랄릿씨와 가족들


랄릿씨의 동생 라젠드라씨의 가족들 - 인도는 아직도 대가족이 많다


잠들기 전 가족들


 11시 가까이 되어서야 가족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는 랄릿 씨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점점 커가는 큰딸과 아들을 보며 웃고는 있지만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요.

 ‘우리 아빠는 집에 잠만 자러 와’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음을 잘 설명하며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채근하는 랄릿 씨와 가족은 12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듭니다. 더 나은 미래와 내일을 생각하며.


 *다를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그리 다르지 않은 인도 뭄바이에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도인의 이야기를 실화를 바탕으로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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