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현 Josh Kim Feb 07. 2024

EP8:월남전 참전용사이신 택시기사님이 이야기하는 한국

참전용사 택시기사님이 들려주시는 대한민국 그리고 삶의 이야기 Part.1


참전용사이신 택시기사님이 들려주시는 대한민국이 여기 오기까지의 이야기.

바쁜 출근시간에 탑승한 택시,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비몽사몽 하며 가만히 앉아 하늘을 한동안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정신을 차리자 적막함을 뚫고 오늘 아침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건네며 기사님께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기사님은 그러냐고 하시며 스마트폰의 보이스인식을 통해 뉴스 정보 듣는 기능을 사용하셔서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한 뉴스를 들으셨다. 나이가 꽤 있으셨는데 이렇게 최신 기술을 쓰시는 것이 참 놀라웠다. 같이 뉴스를 들으면서 북한의 이런 도발적 행위에 대해서 서로 분한 마음을 표하며 나는 기사님께 말했다.


나 : 우리나라 그래도 행운이네요 북한에 비해서 잘 살고 있어서요.


그랬더니 기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하심과 동시에 그렇지 않다고 하셨다. 본인은 다른 생각이라고 하시면서 본인의 경험하신 부분에 대해서 공유를 해주시기 시작하셨다.


이렇게 택시에서의 인생수업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 저는 손님이랑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손님도 역사 공부하면서 이미지나 관련 자료들을 봐서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옛 대한민국이 진짜 정말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려웠는지 몰라요. 그 당시에 우리보다 북한이 더 잘 살았다는 사실 아세요? 


나라가 전쟁으로 정말 폐허 그 자체가 되어 너무나 가난한데 그 폐허를 수습하고 또 나라를 다시 재건해야 하니 돈이 필요하잖아요. 근데 사람은 있으니 나라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외국에 간호사 파견, 탄광 노동, 월남전 참전 등 역사책에서 봤을 일이 정말 현실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분들이 벌어드리는 외화를 통해서 가족 그리고 나라의 재건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경제 발전을 일으키기 위한 기초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주위에 아직 그 기억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나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 그래서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절대 행운으로 이렇게 되지 않았어요. 그 시절 사람들의 정말 처절하고 서럽고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왔고 저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전혀 행운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손님 많이 어려 보이셔서 잘 아실지 모르겠는데, 혹시 월남전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전쟁인데, 우리나라가 파병되어 참전했었죠. 저도 그중에서 월남전 참전했던 사람이고요.


나: 정말요? 선생님 참전용사셨군요. 정말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 그때 기억들이 쉽게 사라지진 않으시겠어요.


선생님 : 그럼요. 벌써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파병 떠날 때 마지막 고향 땅의 모습과 어머님이 펑펑 울면서 손 흔들어 주시던 모습 모두 생생하게 기억이 나요. 이제 떠나면 다시 볼 수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이런 생각은 저뿐 아니라 함께 파병 가는 사람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가면 죽겠구나 이런 생각이 당연히 들 수밖에 없잖아요. 625에서는 운 좋게 살았지만 또 한 번의 전쟁통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제는 피할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죠.


도착했는데, 얼마나 처참한 현장이었는지 몰라요. 곳곳에 시체가 굴러다니고 폭탄과 총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 비명소리 또한 끝이 없었죠.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눈물이 또 날 것 같아요.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요.

그 당시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고 그 시간을 견뎌야 내 조국과 나의 가족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죽고 싶은 순간, 더 이상 걸을 수도 없던 그 순간마다 품에 있는 가족사진을 보며 다시 이를 꽉 깨물고 총 들고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많이 떨렸고 백미러로 통해서 보인 선생님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가방 속에 있던 휴지를 꺼내 건네드렸고 눈물을 닦으신 선생님은 심호흡을 조금 하시더니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 아유 죄송해요. 이게 워낙 제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이렇게 아이처럼 막 눈물이 나네요. 이게 나이 먹는다고 덤덤해지고 그러지 않더라고요.


제가 참전한 월남전뿐 아니라 그 당시 외국에 곳곳에서 정말 열악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일들을 도맡아 하면서 살았던 그분들… 그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지금까지 이 사회와 나라를 지탱하는 힘이 된 것이죠. 때문에 대한민국이 기적이나 운이 좋았다, 물론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으로서는 단순 행운으로 생각만 할 수 없다는 것이죠.


뭐든 거저 주어지는 것이 없어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없어요.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는 꼭 그 값을 지불하는 게 이 세상에 이치잖아요.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 매일의 먹을 것, 안전함, 한국인으로 세계를 나가면 느껴지는 것들 모두 누리기까지 혜택을 얻기까지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열심 등이 모이고 모여서 값을 지불된 거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간사회는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과 서로 배려하는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힘이 되어 지탱하고 돌아가도록 하는 거라 생각해요.


대한민국 또한 지금까지 오는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모든 것들이 다 그 값을 치러오면서 여기까지 왔고 또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더 잘되고 발전함에 있어 그 값을 치르며 살아갈 거예요.


나: 선생님 말씀 들으면서 반성하게 되는 게 많습니다.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헬조선이라는 말을 많이 쓰거든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여기까지 만들어주셨는데, 너무 쉽게 그렇게 이야기한 것 같아 정말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선생님 : 저도 이렇게 택시 운행을 하다 보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하는 젊은 분들을 많이 만나곤 합니다. 참 마음이 아파요. 마음이 아프다는 건 제가 살았던 시절과 비교해서 너무 좋은 환경인데 왜 불만이 많나 라는 관점보다는 지금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삶이 답답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 제 젊을 적 시절보다 훨씬 뛰어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이제는 세계가 무대인 친구들인데, 점점 꿈의 크기가 줄어가고 목표가 사라지고 삶의 열정이 식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습니다. 저희 세대는 이 나라가 나라답게 만들도록 해야 하는 숙제를 풀어야 하는 숙명이었지만 그 시절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다음 세대들이 더 이상 이런 비극적인 일들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길 바랐기 때문에 그런 사명 의식을 가지고 견딜 수 있었어요.


그 시절에는 우리 세대가 나라를 번창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에 젊은 날을 다 쏟아부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젊은 친구들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더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저희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지금의 우리 젊은 분들이라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더 큰 꿈을 꾸고 뜻을 펼치고 성공하는 세대가 될 거라고 믿고 싶고 또 그래주시길 부탁하고 싶네요.


다만 요즘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 즐거움과 재미를 위한 소비 등 이런 게 어떤 삶의 낙과 목표가 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물론 저런 것들이 필요하지만 인생의 어떤 목표와 추구하는 가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은 또 아마 어른으로서도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 :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 살아오셨을 경험 하셨을 그 삶을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기까지 열심해해 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다시금 상기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 감사합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전 사람들의 희생이 당연시되거나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것은 나 같은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고 그 기억들이 생생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이 나라에서 잊혀 간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플 때가 있습니다. 절대 참전했다고 보상을 통해 부유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후회하지도 않습니다. 제 세대가 마땅히 견디고 해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나라에서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한 인생을 바치고 희생에 대한 감사가 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가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이 기억하지 않고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그 누가 나서서 국가를 위해 또 주위 사람들을 위해 나오겠어요. 이런 문화나 인식개선은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다음화에 이어서…

이전 08화 EP7:3대째 한의사를 못 이어간 기사님의 뒤늦은 후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