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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Sep 17. 2023

EP4:택시기사님이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한 가지

은퇴 후 소소하지만 매일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다는 선생님을 만나다

날씨가 무덥던 어느 날,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여러 어플들을 통해 잡아보다가 간신히 택시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표정이 온화해 보이시는 기사님이 밝은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기사님은 나이는 지긋이 들어 보이셨고 누가 봐도 다림질한 깔끔한 와이셔츠 복장과 안정된 목소리톤 그리고 직접 내리셔서 가지고 있던 짐을 넣도록 트렁크 정리에 도움을 주셨다. 서비스가 되게 좋으시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 손님, 출발하겠습니다. 안전히 목적지까지 모시겠습니다. 길은 네비대로 가면 되겠죠?

그렇게 탑승한 택시, 난 오늘의 선생님과 대화의 물꼬를 열어보고자 질문을 시작했다.

나 : 선생님 보통 와이셔츠를 이렇게 입고 하루종일 택시 운행하시는 게 불편하실 것 같은데, 평소에도 계속 이렇게 와이셔츠를 입고 택시 운행을 하시나요? 뭔가 서비스 정신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선생님 : 하하하 택시를 운행하는 사람이 와이셔츠 입고 있는 모습이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사실 택시 운전은 시작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원래는 자영업을 하다가 택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 : 그러셨군요. 은퇴 너무 축하드리고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은퇴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셨군요? 은퇴하고 좀 쉬셨나요?

선생님 : 당연히 은퇴하고 쉼을 잠깐 가졌는데, 평생 일하면서 살았다 보니 오히려 쉬는 게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집에만 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집에만 있으면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다시 일할 것을 찾아봤고 이 나이 들어서 다시 할만한 게 택시가 최선이어서 시작하게 되었죠.


나 : 그러셨군요. 아마 평생을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시다 쉬시려니까 어색하고 힘도 드셨을 것 같아요. 보통 쉬게 되면 그동안 못한 취미생활을 실컷 하거나 여행을 다니시거나 하시던데 그런 건 안 하셨나요?

선생님 : 뭐 주위에 보면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만 저는 자영업을 하다 보니 매일 먹고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삶의 기둥이어서 그간 남들 하는 골프나 해외여행 같은 것을 취미로 두고 있지 못했네요. 사실 취미생활도 여행도 젊을 적부터 자꾸 해보고 경험해야 하는 건데 저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보면 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손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취미나 여행은 젊을 적부터 잘 쌓아가시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기회가 닿는 대로 많이 경험해 보세요.


나 : 네, 명심하고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경험해 보겠습니다. 아까 잠깐 언급해 주셨는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사업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선생님은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질문이 많은지, 본인에 대해서 왜 이렇게까지 관심이 많은지 싶은 눈빛으로 나를 잠깐 쳐다보시는 것을 백미러로 통해 살짝 느껴졌다.


선생님 : 아 네 괜찮습니다. 근데, 혹시 왜 이런 걸 물어보시고 궁금해하시는지 제가 먼저 물어봐도 될까요? 궁금합니다.


나 : 아… 좀 당황스러우셨죠? 사실 제가 택시를 타면 질문을 좀 많이 하는 편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으로서 인생의 경험이 많이 있으신 어르신들을 만나 뵙기가 많이 어렵잖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기술과 과학을 빠르게 성장하고 세상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지혜들은 꾸준히 이어진다고 생각이 들어서 많이 여쭤보고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신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선생님 : 그러시군요. 아닙니다. 뭔가 부담스럽거나 거부감이 들어서 여쭤본 것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질문하고 하는 분을 손님으로 만나 뵙기 참 어려워서 말이죠. 요즘 젊은 분들에게 한마디 한마디 하는 게 많이 조심스러운데 이렇게 물어봐주니 저도 감사합니다. 허허, 참 신기한 젊은 청년이네요. 질문에 대답을 드리자면 저는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었습니다. 제 와이프와 함께 오랜 시간 동네에서 운영을 했었죠.



나 : 그러셨군요. 역시나 서비스업 쪽에 계셔서 그런지 제가 괜히 그렇게 느낀 게 아니네요. 그래서 택시를 탔을 때 느껴졌던 서비스 태도의 차별성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 : 하하 그러셨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워낙 서비스업을 오래 해서 말투나 태도 같은 게 몸에 배어있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희처럼 자영업을 시작한다는 것이 한다는 게 쉽지도 않고 더더욱 젊을 때 작은 가게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요즘이죠. 저희가 젊은 때만 해도 작은 가게, 저희처럼 이렇게 미용실 하나라도 열어서 열심히 하면 그래도 먹고살고 돈도 좀 모으고 그럴 수 있었던 때였어요. 그래서 저랑 와이프도 일찍이 저희만의 사업장을 열어서 운영하게 되었죠.


사람이 태어나서 큰 일 해야 한다고 어릴 적부터 주위에서 그런 말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 저는 그저 매일이 행복하고 매일 최선을 다하는 삶을 꿈꿨고 그런 삶을 살고 싶었어요. 그런 측면에서 와이프도 남들이 부러워하고 도달하고 싶어 하는 수준의 재력에 대한 욕심도 없고 그저 맡겨진 것을 성실하게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서로 그저 매일 행복하게 살아가는 걸 좋아해서 별 욕심 없이 성실히 일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서로 맞았던 게 저는 참 좋았고 소소한 저의 꿈을 이뤄준 아내에게 늘 고마운 마음이죠.


나 : 그러셨군요, 부부끼리 하루종일 마주치며 일을 같이 한다는 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으셨나요?

선생님 : 저는 사실 너무 좋았어요. 보통 직장 생활하다 보면 와이프, 자식들보다 직장 사람들을 더 오랜 시간 보기도 하고 집보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길잖아요. 그래도 저는 와이프랑 매일 같이 공간에 있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무언가를 이뤄갈 수 있는 것이 참 재밌었죠. 아마 와이프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 중 한 명이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와이프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허허. 오늘 가면 한번 물어봐야겠네요. 오히려 이렇게 택시 운전을 시작하면서 서로 얼굴 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네요.


자영업을 하며 선생님이 지켜온 3가지

나 : 그러게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선생님처럼 부부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드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영업이지만 사업장을 이렇게 긴 기간 문 닫지 않고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 그 비결이 있나요?

선생님 : 비결이라… 사실 작은 미용실 하나 운영하면서 따로 비결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것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네요. 그래도 한번 생각해 보자면, 


우선 첫 번째는 정말 성실하게 일했어요. 공휴일이나 정말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절대 미용실 문을 닫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성실함이 저희뿐 아니라 손님이나 동네 사람들에게도 참 성실하게 일하는 부부로 많이 인식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가게도 한 번씩 닫고 여행도 좀 다녀오고 그랬으면 은퇴 후에도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좀 하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근데 당시에는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빡빡한 삶이었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할만한 여유가 머릿속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암튼 성실함이 저희 미용실만 이용하시는 단골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두 번째는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작은 미용실이었지만 저희 부부는 헤어 트렌드도 열심히 공부하고 관련 장비들도 적극적으로 도입했죠. 동네 미용실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타일이 잘 안 맞아서 안 오잖아요? 그 한계를 조금 벗어나서 젊은 사람도 만족할 헤어 스타일을 해줄 수 있도록 공부도 하고 교육도 열심히 찾아 듣고 했었어요. 이 부분이 고객 층을 넓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었죠. 


세 번째는 역시 서비스 정신이죠. 사실 서비스 정신이라고 해서 남다른 것이 있는 게 아니라 미용실에 들어올 때 눈을 마주치고 밝은 미소와 목소리로 반기는 것. 고객들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할 때 잘 경청하고 그에 맞는 리액션을 하는 것. 사용하는 수건 관리와 깔끔한 복장을 늘 입는 것. 좋은 냄새가 나도록 하는 것. 늘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 좋은 원료를 기반으로 한 헤어 제품을 사용하는 것. 머리 감겨줄 때 최선을 다하고 다른 곳들보다 더 오랜 시간 두피 마사지를 해주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었어요. 그럼에도 정말 처음 시작부터 문을 받을 때까지 꾸준하게 지켜왔죠.


크게 이 세 가지 정도가 롱런하게 해 준 방법들 이였어요. 하하 뭐 별거 없죠?

저는 사람 간 대화, 말투, 분위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재밌는 것은 사람들은 미세한 에너지를 민감하게 느낀다는 것이에요. 이 미세함이 차이를 만들고요, 이 미세함이 고객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더라고요. 저희 고객들도 미용실에 오면 참 기분이 좋다, 에너지가 채워진다, 서비스가 다르다는 등 피드백을 통해 저희도 체감을 하게 되었죠.


인생을 살며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단 한 가지

나 : 좋은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들어보면 제가 다 알 수 없지만 정말 열심히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젊은 시절 속 후회되거나 아쉬운 점은 없으셨나요?

선생님 : 후회와 아쉬운 점이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있죠. 바로 저희 어머니. 저희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더 못 해드린 것이 가장 후회스럽고 아쉽죠. 젊은 시절부터 열심히 살면서 나름 자가도 마련하고 먹고살만해서 이제 어머니가 눈에 들어와 챙기려고 하니까 이미 어머니가 너무 노쇠하셨고 건강 상태도 많이 안 좋아지셔서 같이 어딜 가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더라고요. 이게 지금도 가슴 사무치게 아쉽습니다. 좀 더 자주 전화 드리고 찾아뵐걸, 한번 더 맛있는 거 같이 먹을걸, 한번 더 좋은 곳에 여행 가볼걸,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듭니다. 지금 돌아보면 분명할 수 있었음에도 뭐가 그리 바쁘고 중요했는지 집만 좀 마련하고 애들 고등학교만 좀 졸업하고 사업이 조금만 안정되고, 이러면서 제 삶의 우선수위에서 계속 미루다 이제 해야지 하니까 저도 늙고 어머니도 이미 너무 나이가 많이 드셔 버렸죠. 이런 마음을 어머니께 표현하니,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랑 우리 며느리, 내가 해준 것도 없고 도움도 못 주었는데 내가 봐도 너희 참 열심히 살았다. 너희가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 해도 참 마음이 좋다.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 원래 부모 자식은 다 그런 것이야." 이런 말을 해주시더군요. 집 와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젊을 때 열심히 해서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는데 항상 뭔가 크고 대단한 걸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 결국 제대로 해드린 게 없더군요. 어머니께는 전화 한 통, 밥 한 끼 이런 것도 효도였는데 말이죠.


우리 젊은 손님,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아마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절대 주위에 가장 중요한 것들, 중요한 사람들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에 언급한 것처럼 젊기에 할 수 있는 경험들 젊기에 챙길 수 있는 사람들 젊기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들 인생에 중요한 우선순위에 두고 살길 바라요. 세상을 살면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의 시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들, 사람들을 돌아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아요.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시되 가치 있는 사람, 가치 있는 일, 가치 있는 것들에 자신을 사용하시면 좋겠네요. 아유 제가 또 꼰대 할아버지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버렸네요.


나 : 아고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들과 조언들을 또 어디서 듣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 그래도 저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고 이렇게 부담 없이 택시 운전하며 버는 것으로 아내와 맛있는 거 먹고 재밌는 거 보러 다니고 그러면서 살고 있으니 말이죠. 손님도 너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어깨에 가득 매고 버겁게 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의 뉴스들이 젊은 분들에게 희망보다는 부담과 어려운 마음들을 계속 심어주는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매일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시고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그것들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남들의 인생과 나를 비교하고 있지 않은지 물어보시면서 주어진 것들을 누리시고 즐기시길 바라요. 요즘 젊은 분들은 정말 똑똑하고 재능도 많고 틀에 박히지 않는 다양함도 있어서 잘해나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어서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선생님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서 뭔가 모르게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조언들을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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