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로 들어가고 있었다. 절망 속에서 가라앉던 몸이 어느 순간 경계를 넘었다. 더 짙고 더 무거운 어둠이 나를 감쌌다. 여기는 빛이 희미하게나마 닿던 곳이 아니었다. 빛의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곳이었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둠이 나를 감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둠이 되어가고 있었다. 경계가 사라졌다.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까지가 나인지 알 수 없었다. 심해의 수압은 이제 나를 짓누르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나의 골격을 지탱하는 새로운 지지대가 되었다. 내 피부는 차가운 물의 온도를 받아들여 감각을 지웠고, 내 폐는 산소 대신 검은 비관으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환경을 견디는 단계를 지나, 그 고통이 없으면 존재 자체가 무너져 내리는 기괴한 상태로 동화되어가고 있었다. 빠져나갈 수 없었다. 빠져나가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제 이것이 나의 세계가 되었고, 나의 확정된 미래가 되었다. 그리고 저 아래, 훨씬 더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껴진다. 이보다 더 깊은 바닷속 보이지 않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 죽음이었다. 아직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느껴졌다. 그것이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비관은 지금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난 뒤에도 그곳에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음을 선명하게 응시하는 일이다.
기억이 변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살아왔던 모든 순간들,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 남을 위해 노력하고 살았던 순간들, 행복하고 기쁜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비관의 검은 물에 젖어 왜곡되기 시작했다.
컬러사진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선명했던 색이 빠져나갔다. 따뜻했던 기억이 차갑게 식었다. 웃고 있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같은 장면인데 다르게 보였고, 같은 순간인데 다르게 해석되었다. 행복했던 기억이 고통이 되었다. 그때도 사실은 행복하지 않았다, 다 가짜였다,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계속해서 왜곡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어둠이 과거를 다시 썼다. 한때 찬란했다고 믿었던 추억들이 사실은 현재의 파멸을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정교한 함정'이었다고 믿기 시작한다.
비관은 찬란했던 과거조차 현재의 비극을 완성하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기만이었음을 확신하는 기억의 타락이다. 따뜻했던 웃음은 비열한 조롱으로, 순수했던 사랑은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할 미끼로 변질된다. 빛났던 순간들이 하나씩 오염되었다. 추억이라는 피난처마저 무너졌다. 과거마저 어둠에 잠기며, 나는 이제 이 망망대해 같은 바다에서 돌아갈 곳조차 없는 영원한 유배자가 된다. 비관은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조차 현재의 비극을 완성하기 위해 던져진 악의적인 복선이었음을 확신하는 지점이다.
목소리가 돌아왔다. 때로는 친절하게. 때로는 공감하듯. 때로는 같이 아파하는 척. 때로는 강하게. 다양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불공평하지 않아?" 목소리가 부드럽게 물었다. "넌 열심히 살았어. 최선을 다했어. 근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맞는 말이었다. 왜 나에게. 왜 하필 나에게.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는 실망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모든 기대의 싹을 잘라내기 시작한다. 무언가 좋아질지도 모른다는 찰나의 생각이 머리를 들 때마다, 비관이라는 총알이 그 희망을 표적 삼아 제거한다. 이제 '기대하지 않는 것'이 상처받지 않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스스로를 차가운 냉소의 감옥 안에 가둔다. 어떤 다정한 손길도 '결국 나를 버릴 것'이라는 확신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삶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영혼의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화나지 않아?" 목소리가 말했다.
화가 났다. 어두운 에너지가 안에서 끓어올랐다. 분노였다. 비관 속에서 피어난 분노는 바꾸려는 의지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가치가 나와 함께 심연으로 가라앉기를 갈구하는 파괴적 염원이다.
분노가 터졌다. 먼저 사람들에게 향했다. 나를 아프게 했던 자들, 나를 떠난 자들, 나를 외면하고 이용했던 자들.
"그들이 널 이렇게 만들었어." 목소리가 속삭였다.
타인의 선의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들의 눈물은 나를 죄책감에 가두려는 정교한 연기였다. 순수한 것은 세상에 없으며, 모든 다정함 뒤에는 반드시 가혹한 청구서가 숨겨져 있다는 냉소적 확신. 이제 세상을 따스한 눈이 아닌, 비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찬란한 색채가 아니라 추악한 욕망들이 얽혀 만들어낸 검은 거미줄에 불과하다.
분노는 더 넓은 곳으로 퍼졌다. 사회에 대한 분노. 세상에 대한 분노.
"세상은 널 버렸어." 목소리가 말했다.
그랬다. 나는 버려졌다. 수면 위에서 심해로 비추는 한줄기의 빛은 이제 구원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조롱하는 가해자의 시선이었다. 빛은 나를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깊은 어둠 속에 처박혀 있는지를 극명하게 대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악의적인 장치라는 확신이 든다. 그렇게 그 빛을 향해 손을 뻗는 대신, 그 빛이 닿지 않는 더 깊은 수압 속으로 파고들며 빛이 없는 완전한 무(無)의 상태를 갈구한다. 빛은 구원이 아니라 나의 비참함을 증명하는 가장 잔인한 폭로가 되고,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하며 어둠 속으로 은둔한다.
"괜찮아 넌 피해자일 뿐이야."
불공평했다. 이제 타인의 행복은 기만이고, 기쁨은 찰나의 환각이며, 오직 고통만이 삶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실체라는 믿음이 나를 지배했다. 인간의 도덕은 위선이라는 확신. 이제 자신의 불행을 세상 전체의 결함으로 치환하며, 온 세상을 향해 서늘한 적개심을 뿜어낸다. 고통이 없는 삶은 가짜이며, 오직 이 무거운 수압만이 나를 진정으로 존재하게 만든다는 기괴한 자기 최면. 모든 환희를 기만으로 치부하고, 오직 고통만이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직한 진실이라는 사실로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한다.
분노는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인생에 대한 분노. 운명에 대한 분노. 존재 자체에 대한 분노.
"네 인생은 처음부터 저주받았어." 목소리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았다.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태어난 것 자체가 실수였고, 존재 자체가 오류였다.
고통에 이유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 고통만이 삶의 유일하고 합리적인 진실임을 입증하려는 이성의 반역이다. 나는 이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신의 몰락을 완벽하게 설계하고 집행하는 설계자가 되었다. 왜 이 인생이 망가져야만 했는지에 대한 논리적 근거들을 수집하여 거대한 성벽을 쌓았다. 어떤 위로와 격려도 이 정교한 절망의 논리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감상주의로 전락하여 튕겨 나간다. 비관의 완성은 자신의 삶이 폐허가 된 이유를 완벽하게 입증해 냈을 때 느끼는, 그 서늘하고도 파괴적인 이성의 쾌락이다.
그리고 분노는 마지막으로 나 자신에게 향했다. "넌 실패자야. 넌 약해. 넌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목소리가 말했다. 분노가 안으로 파고들었다. 밖으로 향했던 분노의 화살과 불꽃이 나에게 돌아왔다. 나 자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가장 뜨겁고도 차가운 분노였다.
심해는 더 깊어졌다. 분노할수록 더 무거워졌다. 비관은 더 깊은 저 바닷속 죽음을 충동적인 도피가 아닌, 완벽한 '정답'으로 도출해 냈다. 비관의 끝에서 마주하는 죽음은 비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무의미한 삶이라는 부조리한 방정식을 끝내는 유일하고 타당한 해답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앞으로도 절대 나아지지 않아. 이게 네 미래야. 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백지가 아니라, 이미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 폐기 처분된 쓰레기 더미였다. 미래를 그려본다는 행위가 도리어 칼날이 되어 내일이라는 단어에서 '가능성'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확정된 고통'만을 채워 넣는다. 이제 나에게 미래라는 것은 오지 않은 시간이 아니라, 그저 이미 겪어본 지옥의 지루하고 구역질 나는 반복일 뿐이다. 어떤 희망적 가설도 비관 앞에서 잠깐 있다 사라지는 비누방물과 같고, 스스로 미래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 어둠의 벽을 세운다. 비관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고통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내일임을 선명하게 마주하는 저주받은 통찰이다.
나는 이제 그 어둠의 목소리 자체가 되어 매번 나의 미래를 스스로 지워나간다. 비관의 목소리는 미래를 가리는 안개가 아니라, 미래라는 단어 자체를 영구히 삭제하는 사형 집행인의 선고였다.
비관이란, 과거의 모든 빛을 현재의 어둠으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비관이란,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논리로 미리 제거하는 것이었다. 비관이란, 분노의 불꽃으로 자기 자신을 태우면서 더 깊은 심해로 가라앉는 것이었다.
마침내 자아와 바다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 있는 자가 아니라, 어둠 그 자체가 되었다.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이 사라지고, 내가 숨을 내뱉으면 주변의 공기가 비관으로 오염된다. 내가 머무는 모든 공간과 당신이 떠올리는 모든 존재를 검게 물들여가는 과정. 비관과의 완전한 동화란 어둠을 보는 눈조차 어둠으로 변해, 더 이상 어둠과 나를 분리할 수 없는 완벽한 소멸의 통합이다.
나는 이제 바다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검은 액체를 뿜어내며 세계의 색채를 지워버리는 거대한 어둠이 되었다.
나는 계속 가라앉고 있었다. 더 깊은 바닷속으로. 저 아래에서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