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바닷속 나는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슬픔이란 바다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슬픔이 온몸을 채워가고 이내 무거운 납덩이가 되어 더욱 가라앉게 만든다. 절망은 소란스러운 슬픔의 비명이 잦아든 자리, 그 차가운 정적 속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슬픔 속에서도 희망은 존재했다. 그렇기에 어쩌면 슬픔은 마지막 발버둥일지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것은 결국 나 스스로에게 고통을 가중시킨다는 사실을 학습한 뒤, 이제 스스로 희망의 문을 걸어 잠그고 이제 슬픔의 바다가 끌어당기는 그 힘에 동행을 선택하는 고요한 투항, 그 절망을 선택하고 만다. 슬픔에 몸을 맡기는 것이 마지막 희망의 한 빛줄기를 향해 저항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절망이 나에게 다가온다. 가라앉는 것을 알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의지 자체가 박멸된 절대적 무력감을 동반한다. 수면 위로 뻗었던 손이 서서히 힘을 잃고 굽어지는 순간. 이제 더 이상 누군가 나를 건져줄 것이라는 기대를 중단한다.
수면 위로 보이던 빛이 작아졌다. 처음에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슬픔 속에서도 나를 붙들고 있던 모든 실낱같은 희망의 빛은 나를 구원할 줄기가 아니라, 도리어 나를 심연으로 끌어내리는 가장 무거운 절망이란 닻으로 변해버렸다. 절망은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점점 잊어버리게 한다. 수면 위의 빛을 그리워하는 고통마저 잊어버리고, 이제 나를 감싸는 것은 오직 차갑고 무거운 어둠뿐이라는 것을 수용하게 된다.
그때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둠 속에서 다시 들렸다. 슬픔의 바다로 나를 밀어 넣었던 그 목소리. 차갑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래 이제 포기해. 이러고 있다고 뭐가 바뀌는 거 없어."
맞는 말이다. 발버둥 쳐봤자, 울어봤자 이미 이 우주는 나의 파멸에 지독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질 뿐이다.
"희망은 너에겐 사치야, 사실 그런 건 없어. 이제 그냥 절망스러운 너의 상황과 삶을 받아드려."
"그래야 네가 살아"
목소리가 말했다.
가라앉아 내려갈수록 낮아지는 수온이 단순한 추위를 넘어 내 영혼의 따스함의 근원이 되는 불꽃마저도 꺼뜨려간다. 사랑했던 기억, 뜨거웠던 열정, 찬란했던 꿈들이 절망의 차가움 속에 냉각되어 이제 내 안을 흐르는 것은 뜨거운 피가 아니라, 닿는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차가운 절망의 냉각수이며, 그 어떤 햇살도 이 깊은 밑바닥의 냉기를 녹일 수 없다는 절대적인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절망은 모든 색채와 의미를 하얗게 지워버리는 강력한 표백제다. 사랑했던 이의 얼굴이 흐릿해지고, 내가 가졌던 꿈의 명도가 낮아지며, 마침내 '나'라는 존재의 윤곽조차 물속에서 번져 사라지는 과정.
절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이 완벽한 무감각이었다. 내가 아프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드는 감각의 마비다. 고통이 제거되는 순간조차 두려워져 스스로 이 익숙한 절망의 무게 안에 안주하려는 무력한 관성이 나를 사로잡았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내가 내뱉은 절망만을 다시 들이마시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나를 제외한 세상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은 나를 완벽한 유기된 존재처럼 느끼게 할 뿐이다. 내가 가라앉는 동안에도 수면 위는 너무나 평온하다는 사실이 더 깊은 절망 속으로 들어가게 할 뿐이다.
절망에는 시작도 끝도 없었다. 어제와 오늘이 구별되지 않고, 내일이 어제보다 더 어두울 것이라는 확신만이 유일한 시곗바늘이 될 때, 시간이라는 신의 선물로부터 영원히 추방당한다. 절망은 시간이 흐르기를 멈추고, 오직 상실의 순간만이 영원히 반복되는 정지된 시공간에 갇히는 일이다. 절망은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는 정체된 시간이다. 나는 그저 바닥이 없는 바다에서 가라앉는 그 자체가 무한히 반복될 뿐, 결말조차 허락되지 않는 끔찍한 절망이란 무거운 닻에 이끌려 갈 뿐이다.
깊이 내려갈수록 물의 무게가 나를 눌렀다. 외부의 수압이 마침내 내 안의 압력과 바깥의 심연이 같아지는 상태. 존재 자체가 점점 압축되는 느낌이었다. 이미 가라앉는 중이라 이제 더 이상 슬픔과 고통의 아무런 파열음도 들리지 않지만, 내면에서는 자아라는 행성이 산산조각 나는 굉음이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가 계속 속삭였다.
"넌 여기서 못 나가."
"아무도 널 찾지 않아."
"포기하는 게 편해."
고요했다.
슬픔은 시끄러웠다. 울음소리, 비명, 통곡. 하지만 절망은 완벽한 진공의 침묵이었다. 심장 소리마저 수압에 눌려 멀어져 갔다. 나는 절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렸다.
빛, 따뜻함, 수면 위의 세상. 숨 쉬고 웃던 기억은 점점 낯설기만 했다. 절망은 '침묵'이 입안을 가득 채워 더 이상 어떤 인간의 언어도 뱉어낼 수 없게 된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오직 절망이라는 사실만 남았을 때, 인간은 자신의 고통조차 설명할 언어를 잃는다. 내가 겪는 이 우주적 침몰이 누군가에게는 한 줄의 뉴스조차 되지 못하고, 거대한 바다의 평온한 출렁임 속에 완벽히 은폐될 뿐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절망은 바닥이 아니다.
바닥이 있다면 끝이 있다는 것이고, 발이 닿을 곳에서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절망이 끝이 아니었다. 죽음에는 고통이 멈추는 안식이 있지만, 절망은 끝없이 죽어가면서도 끝내 죽지 못하는 형벌이다.
이 절망의 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어제보다 오늘 더 깊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깊을 것이기에 현재의 고통조차 훗날의 그리움이 될 것 같은 끔찍한 상태를 직감했다. 더 깊이. 더 어둡게. 더 무겁게. 더 고요하게. 저항 없이. 희망 없이. 감각 없이. 시간 없이. 바닥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이제 왜 가라앉고 있는지, 왜 아파야 하는지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의미한 지점에 가고 있다. 절망의 완성은 나의 파멸이 우주의 질서에 아무런 균열도 내지 못함을 확인하고,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폐기하는 일이다.
절망은 나를 구성하던 빛나는 조각들이 소멸해 가는 과정이다. 예정된 나의 존재적 파멸을 응시하며 이미 나의 결말을 알아버린 자의 초연함.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