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 소멸, 희망이라는 빛

by 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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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천천히 가라앉던 나는 마침내 완전한 심해에 갇혔다. 이곳은 이제 빛이 닿지 않는 깊이를 넘어, ‘빛’이라는 물리 법칙 자체가 미칠 수 없는 곳이었다. 수면 위에서 내려오던 빛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비관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보였던 빛의 잔상마저 이제는 수압에 의해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런 완전한 어둠이어야 할 이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보였다. 그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빛, 즉 나의 자아가 마지막으로 연소하며 내뿜는 최후의 섬광이었다. 희미하게 깜빡이며 꺼져가고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것은 나의 육체와 영혼 버티는 최후의 저항이다.


슬픔과 절망 그리고 비관의 압력이 한계를 넘어서면, 이제 나의 육체와 영혼은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미세한 입자로 분해되어 간다. '나'라는 존재가 마침내 이 바닷속에 온전히 녹아들어 흔적도 없이 흩어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죽음보다 더 지독한 '존재의 부재이자 소멸'의 과정이다.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무엇을 아파했는지에 대한 것조차 이 거대한 바다의 거대한 염도 속에 용해되어, 우주에서 나라는 존재의 좌표가 영구히 삭제되는 전면적 소멸이 진행된다. 단순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마지막 비명조차 없어지는 완전한 소멸이다.



빛은 희망이고 희망은 곧 빛이다. 나에게 희망은 곧 내일에 대한 기대였다. 오늘을 어떻게든 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아무리 힘들어도 묵묵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이유였다. 내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일들이 쌓여 더 단단하고 멋진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


그 기대와 희망의 빛은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왔다. 그들을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래. 그들의 삶에 내가 줄 수 있는 멋진 영향들. 그들을 향한 사랑. 그게 나에게 희망의 빛이었다.


빛은 생명의 시작이자 만물의 창조다.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듯, 사람의 영혼도 빛 없이는 시들어간다. 하지만 가라앉고 가라앉다 마침내 도달한 이 존재의 절벽 끝에서 전구가 나가기 직전 가장 밝게 타오르듯, 행성이 마지막을 향할수록 그 빛을 강하게 뿜어내어 폭발하며 소멸하듯 나의 존재가 영원히 지워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내뿜는 최후의 빛을 뿜어낸다. 나는 그 마지막 소멸의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스스로의 종말을 완성하려 한다. 그렇게 나의 존재는 영원히 지워지기 직전의 마지막 빛을 내뿜는다.


그래서 분명 목소리는 이것을 알았다. 나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면 이 빛을 꺼야 한다는 것을. 사랑의 빛을 꺼야 한다는 것을. 내일의 희망의 빛을 꺼야 한다는 것을.


목소리가 돌아왔다.

"넌 이제 사랑받을 수 없어. 넌 이제 그런 자격이 없어. 더 이상 발버둥 않아도 괜찮아. 이대로 점점 사라져 가면 되는 거야." 목소리가 물었다. "네가 이 모양인데, 그 누가 널 원할까? 넌 그들에게 짐이야. 네가 사라지면 그들이 더 행복할 거야. 그들이 아프거나 힘들 필요가 없어져."


맞다. 내 존재자체가 문제이다. 내가 없었다면 나도 그들도 애초에 이런 문제가 없었을 테니.


"희망은 거짓말이야." 목소리가 말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그저 만들어낸 거야. 너도 경험하고 있잖아. 희망은 가장 고통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바꿀 수 없다고."


그렇다. 희망은 고문이다. 헛된 희망만큼 인간에게 잔인한 도구는 없다. 사람일은 모른다는 말, 또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말. 더 나은 미래와 더 나은 인연이 있을 것이라는 말. 내일은 괜찮아질 거라는 말. 시간이 다 해결할 거라는 말. 모두 희망 고문일 뿐이다. 그러한 희망 고문의 말들은 너무나 잔인하다. 어쩌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한 고문일지 모른다. 이제 나에게 희망은 구원의 손길이 아니라, 소멸해 가는 자아의 고통을 끝까지 목격하게 만드는 가장 눈부시고 가혹한 고문 기구였다. 이제 희망의 빛이,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짓누르는 짐이자 고문일 뿐이다.


희망이라는 빛은 소멸하기 직전 가장 눈부신 환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곧 닥칠 영원한 암흑을 더욱 극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한 잔인한 연출이다. 그 찰나의 빛에 속아 다시 한번 희망을 갈구하지만, 그 희망의 끝에 기다리는 것은 차가운 진공뿐이다. 빛이 강렬할수록, 그것이 꺼진 뒤의 상실감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영혼을 베어낸다. 이렇게 소멸은 완전히 어두워지기 직전, 단 한 번의 거짓된 빛을 보여주어 내가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각인시켰다.


빛이 꺼져가기 시작했다. 서서히, 확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사라졌다. 선명했던 기억이 희미해졌다. 그들의 목소리가 멀어지고 온기가 식어갔다. 빛이 촛불처럼 흔들렸다. 마지막 저항이었고,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어둠은 침묵으로 답했다. 진정한 소멸은 타인이 나를 잊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기억해야 할 이유조차 심해의 어둠 속에 수장시키는 일이다.


빛은 확산하기를 멈추고 제자리에서 타버리며, 그 자리에는 타버린 빛의 찌꺼기인 '재'조차 남지 않는다. 빛은 어둠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이 스스로의 구조를 포기하며 붕괴하는 파멸 한다.


빛이 꺼졌다. 밖의 어둠과 안의 어둠이 하나가 되는 순간, 자아와 세계를 구분하던 마지막 경계선이 지워져, 내가 어둠인지 어둠이 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완벽한 대칭의 지옥에 갇혔다. 소멸은 단순히 내 안에 빛이 꺼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희망이라는 빛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만큼 영혼의 모든 장치가 어둠에 타버리는 것이다.



빛은 곧 온기다. 희망이라는 빛이 꺼진다는 것은 영혼의 온기가 식어가는 것이고 그것은 곧 영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제 나의 내면에는 빛을 담고 반사할 그 어떤 것도 남아있지 않으며, 스스로 빛을 거부하는 차가운 심해 속 암석이 된다.


심장은 뛰고 있었으나 안에서는 이미 무언가가 소멸했다. 겉은 아직 푸르지만 뿌리는 이미 말라버린 식물처럼, 나는 안에서부터 썩어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가라앉지 않았다. 가라앉을 ‘나’라는 질량 자체가 증발했기 때문이다. 추락이 멈추고, 존재는 수평으로 번져나가며 무(無)와 하나가 되었다. 소멸의 정점은 고통이 멈추는 지점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나’라는 주체조차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의 증발이다. 상실을 슬퍼할 기억조차 소멸하여,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조차 묻지 못하게 되는 영원한 인지적 암전이 찾아왔다.


단순히 잊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 이제 빛이 있었다는 것, 희망이 있었다는 것, 심지어 자신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한다. 기억의 부재를 인지할 '인지 주체'의 소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지만, 그 '비어있음'조차 느끼지 못하는 완벽한 소멸의 도달.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소멸이란 밖의 빛이 아니라 안의 빛이 꺼지는 것이며, 희망이 사라지기 전에 던진 질문에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미세한 입자가 되어 흩어지는 고요한 파멸이다.


희망은 내가 완전히 소멸할 때까지 그 눈부신 광기 속에서 나를 태운다. 이제 희망이라는 빛은 구원이 아니라, 남은 자아의 찌꺼기까지 하얗게 휘발시켜 완벽한 '소멸'을 완성하는 최후의 폭력이다. 영혼이 사라지기 직전 내지르는 마지막 비명이 수압에 눌려 공기방울 하나 만들지 못한 채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그 완전한 어둠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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