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를 걸쳐 희망의 빛을 잃어버린 나는 이제 어둡고 깊은 그 바닷속 바닥을 향해 고요하고 조용히 다가가고 있었다. 더 이상 그 어떤 소리도 바다의 물결도 빛의 온기도 물의 차가움도 느껴지지 않는 그곳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체념, 나의 이성과 감성 모두가 마비되고 작동하지 않는 그곳에.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신념과 자신감 그리고 나 스스로 만든 빽빽한 기준들로 나를 칭칭 감고 무장한 사람이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 늦더라도 결국은 이루겠다는 확신, 그리고 나를 지탱해 온 견고한 신앙. 이것들로 나는 2중, 3중의 방벽을 쌓았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또 현실은 매번 너무나 쉽게 나를 무너뜨리고 넘어지고 또 포기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거센 파도와 시련이 다가와서 버티기 위한 믿음이 필요했고, 또 믿어야만 했다. 큰 꿈을 품은 나에게는 그 무게를 견딜 두꺼운 보호막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이 고통의 시간을 온몸으로 겪으며 이제 그 보호막을 유지할 '에너지' 자체를 소멸시켰다. 더 이상 뜨거움도 차가움도 흐르지 않는, 모든 동력을 상실한 완전한 정지 상태. 나를 지켜온 보호막들은 이제 작동할 이유를 잃고 멈춰 섰다. 나를 보호하던 시스템은 이제 "더 이상 지킬 것이 없다"라고 결론 내리고, 스스로 메인 전원을 내렸다. 신념이라는 방주는 파도를 견디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항해할 바다가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닻을 내린 채 썩어가는 고철 덩어리가 되었다.
이것은 평온함이 아니라, 존재의 파동이 멈춰버린 상태다. 고통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파도가 쳐도 더 이상 흔들릴 배조차 남아있지 않은 영혼의 완전한 침묵이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악화시키려는 시도도 없다. 더 이상 선택할 것이 없기에 고민도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문이 열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향한 문을 영구히 걸어 잠그고 안에서부터 썩어가는 자발적 유배이다. 기도가 더 이상 하늘에 닿지 않는다는 분노를 넘어, '기도할 필요조차 없다'는 무감각이 찾아온다.
인간의 이성은 위험을 감지하고 회피하게 만든다. 잘못된 길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게 하고, 타인을 고려하게 하며, 최악의 결과를 예측하게 한다. 평생 나의 이성은 나를 지키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체념의 단계에서 이성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나를 배신했다. 침묵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의 파멸을 돕는 '냉혹한 설계자'로 변모한 것이다.
평소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일들이 머릿속에서 정교한 설계도로 그려졌다.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군더더기 없는 마침표의 위치. 이 생각들은 공포가 아니라, 마치 내일 입을 옷을 고르는 것처럼 무미건조하게 다가왔다. 나의 이성은 "멈춰"라고 소리치는 대신, 오히려 그 계획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효율적인 종말을 계산하고 있었다. 진정한 체념은 불행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행에 대해 더 이상 어떠한 주석도 달지 않는 셀프유기이다.
감성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인간의 감성은 두려움으로 위험에서 도망치게 하고, 사랑으로 삶의 끈을 붙들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심장이 저려야 마땅했다. 기대와 희망의 마음을 품게 한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과 반응을 고려하게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신경계는 이미 차갑게 마비되어 있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자, 사랑하는 이들은 내 삶을 붙드는 '닻'이 아니라 나와 아무 상관없는 '정지된 사진'이 되었다.
감성은 원래 입체적이다.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 온기와 목소리, 미안함이 함께 몰려와야 한다. 하지만 체념은 이 입체감을 지워버렸다. 감각 기관이 마비되었기에, 그들이 어떤 고통을 감수할지 전혀 느껴지지도 고려되지도 생각나지도 않고 오히려 나의 안식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가장 소중했던 기억들을 응시하면서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죄책감이라는 장치는 닳아 없어졌고, 사랑은 더 이상 나를 움직이는 에너지가 아니었다. 체념은 세상과 나 사이에 두꺼운 납 벽을 세우는 일이며, 어떤 다정함도 그 벽을 뚫지 못하고 차갑게 튕겨 나가는 감각의 불능 상태이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롱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목소리는 오히려 무심하면서도 명료하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오랜 친구의 말투로 속삭였다.
"고통을 끝내는 방법이 있어. 삶의 마침표를 찍는 거야.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소음이 멈출 거야." "순식간이야. 그러면 편히 쉴 수 있어. 이것만이 너에게 남은 유일한 안식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그 논리가 소름 끼칠 정도로 완벽하게 들렸다. 고통을 끝내고 싶다면 고통의 원인인 '나'를 삭제하면 된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해답. 비논리적인 것에 설득당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합리적인 선택지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평생 쌓아온 가치와 논리가 무너진 자리에, 목소리가 제안하는 죽음의 서사가 유일한 진리로 들어찼다. 이성은 반박하지 않았고, 감성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죽음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이것이 체념의 가장 치명적인 순간이다. 인간은 단 1초라도 더 살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설계된 존재다. 죽음 앞에서 본능적으로 물러서게 만드는 그 공포가 우리를 살게 하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나는 이제 탈출구가 열려 있어도 나가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다. 도망칠 의지조차 사라지게 된 것이다.
죽음을 생각해도 공포가 아닌, 평화와 안도감이 찾아왔다. 드디어 이 끔찍한 연극에서 퇴장할 수 있다는 느낌. 삶의 마침표를 찍는 행위는 이제 비장한 결단이 아니라, 밀린 숙제를 끝내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이 되었다. 체념이란 죽음이라는 거대한 포식자를 마주하고도 도망쳐야 할 이유를 잊어버린 본능의 고장이다. 생존 본능이 꺼진 자리에는, 죽음을 달콤한 휴식으로 착각하는 치명적인 인지적 공백만이 남았다.
사전은 체념을 '희망을 버리고 단념하는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틀렸다. 체념은 희망을 버리는 능동적인 포기가 아니다. 희망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 망각의 상태다. 2중, 3중으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신념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증발해 있었다. 나를 지탱하고 나를 견디게 하고 나를 앞으로 나가게 했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했던 것들로 치부되고 느껴질 뿐.
이제 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살리려던 이성과 나를 붙들려던 감성이 모두 완벽한 마비의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그 완전한 체념의 정적 속에서, 나라는 어쩌면 기계 같은 내 육체와 영혼의 마지막 태엽이 멈추는 것을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지켜보고 있는 이 '나'는 대체 누구인가 그 의미마저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체념이란 고통이라는 파도가 쳐도 더 이상 흔들릴 배조차 남아있지 않은 영혼의 완전한 침묵이다.
체념이란, 이성과 감성이 더 이상 나를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체념이란, 평생 쌓아온 신념과 가치와 사랑이 한꺼번에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체념이란, 말도 안 되는 것에 이해가 되어버리고, 두려워야 할 것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완전한 마비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