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3 도망, 마지막 몸부림

by 김성현

내가 알던 내가 사라진 자리에는 숨만 붙어있는 껍데기가 남아있었다, 나는 실종되었다.

그렇게 매일 밤 나는 죽었다. 나를 향한 자책과 분노가 나를 집어삼켰고 나를 잠식했다. 높은 빌딩에서 떨어지고,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칼에 찔렸다. 꿈에서도, 깨어있는 생각 속에서도.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나를 끝냈다. 내가 나를 밀었고, 내가 떨어졌고, 내가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 장면들은 점점 익숙해졌고, 떨어지는 감각이 몸에 새겨졌다. 이제는 그것이 꿈인지 예행연습인지 예정된 미래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소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롱도, 설득도, 응원도 아니었다. 목소리는 선언했다.

"신이 너를 버렸어."

"너는 이제 완전히 버림받았어. 거봐, 내가 말했잖아. 네가 아무리 매달려도 소용없다고. 네가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다고. 이제 알겠지?"


이 말이 완전히 나를 무너뜨렸다. 가장 고통스러운 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연약한 존재이다. 고통의 끝자락에서 인간은 자신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찾는다. 나 또한 마찬가지도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내 삶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뿌리. 세상이 무너져도 끝까지 나를 붙들어줄 닻. 이 깊고 어두운 바다를 헤매는 동안에 나는 신에게 매달렸다. 매일 기도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이 어둠에서 건져달라고. 제발 응답해 달라고. 하지만 신은 침묵했다. 그 무응답이 반복되고 진행될수록 어둠은 깊어졌고 더 빠르게 다가왔다, 매달릴수록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래도 나는 그 줄 하나만은 놓지 않았다. 아무리 가늘어도, 아무리 끊어질 것 같아도. 그것이 내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으니까. 수면 위로 연결된 그 마지막 줄 하나가 나를 이 세상에 묶어두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목소리가 그 줄마저 끊으려 했다.

"이제 끝을 내야지."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오랜 친구처럼.


"내가 도와줄게. 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잖아. 매일 밤 연습했잖아. 영원한 휴식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 이 고통을 끝내는 방법. 너는 이미 알고 있어."

알고 있었다. 매일 밤 꿈속에서, 생각 속에서, 그 방법을 반복했으니까. 빌딩 위에서 떨어지는 감각. 다리 난간을 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이미 내 몸에 새겨져 있었다.


"이제 얼른 진행해야지. 날짜를 정해. 그날이 오면 모든 고통이 끝나. 더 이상 버림받은 채로 살지 않아도 돼. 아무도 널 실망시키지 않아. 아무것도 널 아프게 하지 않아."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날을 정하기로 했다.

인간은 죽으면 비석에 두 개의 날짜가 새겨진다. 태어난 날과 떠난 날. 나는 그중 하나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이날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이날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된다. 스스로 내린 사형선고였다. 집행일이 정해졌다. 남은 것은 카운트다운뿐이었다.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버틸 필요도 없었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 확실함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형수가 마지막 날들을 담담하게 보내듯, 나는 그날을 향해 하루하루를 소진해 갔다.


그날 아침이 왔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알았다. 오늘은 다른 날들과 달랐다. 고통이 극에 달해 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무거웠다. 이 과정에서 겪었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짓누르고 있었다. 가장 힘든 날이었다. 가장 어두운 아침이었다.

그때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신이 너를 버렸어, 너는 버림받은 존재야."


이 말이 내 방안에, 내 침대라는 관속에서 죽은 사람처럼 있던 내가 끝 내고자 행동하게 만드는 마지막 어둠의 힘을 주었다. 그 말은 충격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최종 선고였다.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그 가느다란 줄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에게 버림받았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희망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이제 숨을 쉴 이유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폭발했다. 더 버틸 수 없었다. 더 견딜 수 없었다. 스스로 정한 마지막 날. 비석에 새길 떠난 날. 이제 정말 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그 이후 어떻게 움직였는지 기억이 없다. 무엇을 챙겼는지, 어떻게 집을 나섰는지, 어떻게 공항에 갔는지. 내 뇌가 그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기억하는 것조차 거부한 것처럼. 문득문득 장면들이 조각처럼 떠오르지만, 그것마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환각처럼 흐릿하고, 파편처럼 흩어져 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해진 끝을 향해 가던 나는, 어느 순간 길을 틀어버렸다. 목숨을 담보로 한 나의 마지막 순간의 극단적 선택을 실행하는 대신, 어느 순간 나는 해외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또 다른 형태의 죽음이었다. 숨은 붙어있겠지만 삶은 아니었다. 심장은 뛰겠지만 존재는 끝나는 것이었다. 가족을 끝냈다. 친구를 끝냈다. 나의 방과 물건과 기억을 끝냈다. 아들이라는 이름, 친구라는 이름, 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라는 존재. 모든 것을 끝냈다.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죽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목숨만은 부지시키려는 신의 마지막 개입이라고 해야 할까.


도착했을 때 머릿속이 하얬다. 내가 왜 거기에 있는지 조차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휴대폰에는 전화와 문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난리가 나 있었다. 나는 그 휴대폰을 꺼버렸다. 모든 연결 고리를 끊어버렸다. 내 안에는 나에 대한 분노, 신에 대한 분노, 깊은 실망이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미 스스로에게 사망선고를 내렸고, 그들에게도 죽은 사람이길 바랐다.


이제 난 끝이다. 난 이미 죽은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곳에서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겠다. 기대도 희망도 품지 않겠다. 죽은 사람처럼 숨만 쉬다가 언젠가 진짜 죽음을 맞이하겠다. 그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렇게 살아있는 시체로 존재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모든 것들. 기대와 부담과 책임. 아들이어야 한다는 무게, 친구여야 한다는 의무,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 나, 그 자체로 있고 싶었다. 아니, 있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채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만 쉬고 싶었다.


심해의 가장 깊은 바닥. 빛도 소리도 닿지 않는 그곳. 나는 더 이상 가라앉지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바다에 녹아든 채로. 물인지 나인지 구분되지 않는 채로.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내가 선택한 도망이란, 죽지 않고 죽는 것이다. 숨은 붙어있지만 존재는 지워지는 것. 신에게조차 버림받은 자가 선택하는 살아있는 죽음. 그것이 죽음 앞에서 간신히 나 스스로가 선택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이전 13화Ep.12 실종,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