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우울, 그 깊고 어두운 바다

by 김성현

도망친 곳에서 나는 숨만 쉬고 있었다. 밥도 먹지 않았다. 거의 잠만 잤다.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 겨우 눈을 감았고, 눈을 떠도 일어나지 않았다. 살아있는 시체. 그것이 내가 선택한 존재 방식이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렇게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양해말씀 드립니다> 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경험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당시 제가 느꼈던 감정과 고통들이 담긴 이야기라 다소 표현과 감정들이 격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말씀드립니다. 최대한 그런 표현들을 지양하고자 했으나 이 시리즈의 취지에 맞게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작성하게 되었으니, 혹시 읽으실 때 불편하시더라도 이런 마음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공기에서 벗어나니 숨이 조금씩 쉬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를 가두고 있던 공간은 마치 관과 같았다. 숨을 쉴 수 없는 밀폐된 공간. 꼼짝도 할 수 없는 좁은 틀. 그 관 안에서 나는 서서히 질식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관을 벗어나니, 비로소 공기가 들어왔다. 여전히 괴로웠다.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완전히 막혀있던 숨통에 아주 작은 틈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적막의 시간을 깬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통화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를 했지만 그 사람이 말했다. "정신 차려." 이 말이 나의 영혼을 깨웠다. 내가 그 사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내가 그런 짓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흔들었다. 나의 괴로움에만 빠져 있던 내가, 다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아프게 했다. 전화가 끝나고 그 무거운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무게 속에서 스스로 다짐했다. 정신 차려야겠다고.


휴대폰에는 수많은 연락이 쌓여 있었다. 나는 애써 무시했던 모든 연락에 답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생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동생과 나는 가족이기에 서로 마음은 애틋하지만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거나 서로 앞에서 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혼자가 아닌 누군가에게 나의 아픔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너무너무 힘이 든다고.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잊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지금은 견디기가 너무나 어렵고 버겁다고.


동생은 말했다. "살아있기만 하자. 잘 지내기만 하자."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살아있기만 하자. 그것이 동생이 나에게 바라는 전부였다. 성공도, 돈도, 꿈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있기만 하자. 그 단순한 말이, 그동안 나를 짓눌렀던 모든 기대와 부담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때부터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절망의 끝에서 추락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내가 다시 그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잃어버린 나를 찾는 것. 사라져 버린 나를 회복하는 것. 그것은 죽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었다. 쌓아온 시간들은 길었지만, 무너짐은 한순간이었다. 다시 쌓아 올리는 것은 무너지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나는 내가 스스로 만들어온 껍질을 깨뜨려야 했다. 그 과정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목소리는 서서히 사라졌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면서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꿈에서 나를 괴롭혔다. 말로 괴롭히는 것이 아니었다. 행동으로 괴롭혔다. 예전처럼 나를 빌딩에서 밀어버리고, 다리에서 떨어뜨리고, 칼로 찔렀다. 깨어있을 때는 사라졌지만, 잠들면 그 그림자가 다시 찾아왔다. 그렇지만 그 또한 싸워 이길 힘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우울. 그것은 깊고 어두운 바다에 갇힌 것 같았다. 고요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고요가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 빛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 우주에 홀로 떠있는 듯한 무중력의 상태. 위도 아래도 없고, 앞도 뒤도 없는 공간. 어쩌면 무덤 속 같기도 했다. 그 어떤 존재도 나를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아무도 나를 꺼내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공간.


그것은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었다. 바깥에서 문을 잠근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열쇠를 삼켜버렸다. 세상이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가두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갈 수 없었다. 아무리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았다. 그 감옥의 간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터널로 들어갔다. 상실을 겪었다. 부정하고, 자책하고, 후회했다. 목소리가 찾아왔다. 슬픔에 빠지고, 절망하고, 비관했다. 희망이 소멸했다. 이성과 감성이 마비되어 체념했다. 나를 구성하던 모든 것이 사라져 실종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아있는 죽음을 선택해 도망쳤다. 그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서 가라앉고 또 가라앉았던 여정.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가 본다는 것. 그것은 처음에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왜 하필 나에게. 그 질문들이 나를 더 깊이 가라앉게 했다.


하지만 밑바닥에 닿았을 때, 더 이상 가라앉을 곳이 없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괴로워하고 절망하던 나의 모습.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여온 나의 모습들. 과거의 상처, 아픈 기억들. 이 과정 속에서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던 나. 나를 잃어가던 순간들. 극단적 생각과 선택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나.


그리고 내 속 안에 숨어있던 것들이 드러났다. 두려움. 피하고 싶은 것들. 나를 보호하기 위해 둘러쌓아온 것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어두운 면. 평생 외면해 왔던 것들이 밑바닥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힘든 것을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강해야 한다고, 버텨야 한다고, 무너지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 억눌린 것들이 점점 커져갔고, 마침내 나를 삼켜버렸다.


밑바닥에서 나는 그 모든 것과 마주했다.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민낯. 약하고, 두렵고, 상처투성이인 진짜 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싸움이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생은 아픔을 동반한다. 인간은 이상하게도 아픔 속에서 배운다. 밑바닥을 찍을 때 비로소 깨닫는다. 모든 것을 빼앗겨봐야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무너져봐야 다시 세울 힘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된다. 아픔은 의미를 찾는 순간 나를 삼키지 못한다.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이 결국 나를 규정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희생하고, 아파야 비로소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깊은 바닷속에서 나를 다시 떠오르게 만든 것도 사랑이었다. 내가 아프게 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나를 잊지 않고 연락해 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살아있기만 하자"라고 말해준 동생의 목소리. 아직 저버리지 않은 나에 대한 나의 사랑.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는 신의 사랑. 그 사랑이 나를 붙들었다.


사람은 왜 아파야만 깨닫기 시작하는 걸까.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 나는 내 안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추운 겨울 한가운데서,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온기를 발견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아픔을 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였다. 삼켜지느냐, 삼키느냐. 무너지느냐, 딛고 일어서느냐. 저주하느냐, 삶의 에너지로 바꾸느냐. 그 선택이 밑바닥에서 다시 떠오를 수 있느냐를 결정했다.


나는 아직 그 싸움 중에 있다.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다. 완전히 떠오른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 바다 안에서 헤엄치고 있다. 가끔 다시 가라앉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가끔 그 목소리가 꿈에서 다시 찾아온다. 하지만 이제는 방향을 안다. 수면이 어디인지 안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 안다. 가라앉기만 하던 내가, 이제는 천천히 떠오르고 있다.


우울, 그 깊고 어두운 바다.

나는 그 바다에서 아직 숨이 붙어있다. 아직 헤엄치고 있다.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이 바다가 무엇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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