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피

by 글그림



가방 속 귤 하나는

터진 곳 없이 매끈한데

내가 오늘 좀 기운이 없다


귤을 꺼내려다가

둥글고 매끈한 모양이 맘에 들지 않아

괜히 조물조물 만져본다


귤껍질에 손톱이 박히면

톡, 하는 소리보다

표면이 일렁이는 것 같았다

귤 알갱이마다 네가 남긴 말들이 박혀 있어

입 안에서 터질 때마다 신맛이 돌았다


“너 아직도 내 생각해?”

나는 대답 대신

귤껍질을 돌돌 말며

‘그냥, 귤이 고맙대’라고 대답한다


식탁 한쪽에 쌓인 껍질들을

옮기며 글자를 만든다

사진을 찍을까 말까 망설이다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기억은 새콤하고

귤껍질은 마르고

사랑은 접힌 손마디 주름처럼

한 곳에 머문다


밤이 깊어갈수록

귤향기가 코끝에 맴돌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 같다


냉장고 구석에

귤 한 조각 남겨둔다

다음에 네가

“왜 남겨둔 거야?” 묻겠지


“아직 다 못 먹었거든”

작게 대답할 것 같다


귤껍질을 깔 때마다

코끝에서 오래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