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은 거북목으로 온다

by 글그림

주머니엔 늘 잔돈이나 영수증이 있었다

뒷 주머니엔 라텍스 장갑 한 짝

빨래에서는 영암 마트 쿠폰

종이 부적이 깨끗이 세탁되어

구겨져 나왔다


그건 마른 오렌지 껍질 같기도 했는데

현관 비밀번호를 잘못 누를 때마다

오렌지를 한 조각씩 먹으며

“하늘색이 행운의 색”이라 되뇌었다


그래서 수채화물감 38색을 샀다

하늘색은 두 개 있었다

파란 하늘색, 우울한 하늘색


주로 우울한 쪽을 골랐다

면접 떨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창문에 비친 얼굴과

지하철 손잡이가 우울한 색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 목이 복스럽다고 했다

점쟁이는 말했지, 네 사주는

배에 복이 고여 있다고 했고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복부 팽만: 장 기능 저하’


사슴 눈을 가졌다던 친구는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서 일하고

토끼 셋이 뛰고 있다던 점쟁이는

작년 봄, 전단지를 돌렸다


그 말이 기억나

토끼 사료 2kg짜리를 사서 나눔 했다

리뷰엔 다섯 개의 별과

‘덕분에 토끼가 복부 팽만이 되었네요’

라고 쓰였다

‘자 이제 배에 복이 고인 생명체는 누구지?’


지난겨울 무급 해고당했다

냉찜질 주머니에 수돗물을 채워

짜릿한 소름이 목에 돋고 나서야

울음이 멈췄다


책상 서랍에는 반쯤 남은 복권이 있고

뒷면에는 이런 글씨가 적혀 있었다

“끝내주는 인생엔 꼭 하나쯤 폭탄이 있어.”


하루에 하나씩 사소한 폭탄 터뜨리기로 했다

늦잠, 저녁 약속, 짜장 라면, 벗어놓은 장갑


이제는 거북목으로 행운이 온단다

그래서 오늘도 어깨를 늘어 뜨리고

목을 쭉 빼고 걷는다

하늘색 양말을 신고

행운은 발목 아래서도 피어날 수 있으니까


이 시를 읽고

조금이라도 피식했다면

그게 바로 부적이다

직접 만든, 세상 하나뿐인

하늘색 웃음 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