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없는 동물원

by 글그림



나는 나를 숨기고 싶어서 투명한 우산을 쓴다

비가 오지 않아도 머리 위에서 똑똑

물방울 소리가 난다


너는 내 우산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묻는다

코끼리가 없는 동물원에서도

사람들이 여전히 사진을 찍을 려나?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바나나를 우물거리면서

껍질을 벤치에 올려둔다

누군가 미끄러지면, 그때 웃자고

너는 슬그머니 내 신발 끈을 풀어놓는다


비현실적인 건 동물이 아니라 우리가 아닐까?

사육사도 없는 울타리 안에서

하루 종일 눈을 깜박이며

땅바닥에 누워 있는 것 같이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나는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어쩐지 대책 없이


너는 솜사탕을 들고 있었고

오후가 되면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렸다

개미들이 줄을 지어 관람로를 차지했고

다 마신 탄산수 빨대를 이빨로 자근자근 씹으면

하루가 끝나버린다


저녁이 되면 조명이 켜지고

코끼리 없는 철창 안에서

바람이 큰 귀처럼 펄럭이는 걸 봤어

우리는 귀엽고도 비정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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