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

by 글그림



그때는 말이지

하얀 셔츠에 땀 얼룩 져도 괜찮다고

건넨 말은 진심이었어


신호등 앞에서 꼬리를 흔들면서

사람들 따라 멍하니 서 있던 모습처럼


아스팔트에 노을이 쏟아지는데

건물 외벽은 오렌지색 박스 테이프처럼

찢기지도 않고 붙어 있었고


계단 오르는 사람들 발소리가

하나 둘 빛을 밟고 사라지더라


옥상에서 지르는 소리에

바람은 놀란 나머지

내 이마에 손바닥을 짚었다가

금방 미안하다며 사과했어


안 해도 되는 말들이 있잖아

안 하는 쪽이 차라리 낫다고 믿으면서

결국은 하지 못해 더 크게 남는 거


우린 그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여름은 작달비처럼 발목까지 젖게 한 채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있는 듯 서성였어


‘마지막’ 같은 단어는

등 뒤에 숨어 있었고

나는 팔꿈치를 잡아당겨

바닷속에 던져버렸지


남은 건

뜨겁게 식어가는 벽돌

그리고 혀끝에서 미련하게 굴던

여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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