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by 글그림



벽을 뚫고 들어온 햇빛에

찹쌀 도나스처럼 몸속이 텅 비어버렸어


얼굴을 누르는 공기를 애써 접어

주머니에 겹쳐 넣어 두면

가벼워진 만큼 더 낯선 곳에 도착하지


진부하지만 어김없이

썩은 사과와 옅은 꿀 냄새가 나는

당신 그림자를 쳐다봤지


투명한 바니쉬로 날 칠하면 더 선명해질까?

더 선명해진 나는 언제쯤 서로를 모른 척

스쳐가게 될까?


이런 뻔한 달디 단 생각은

팥고물처럼 쓰게 삼켜야지


나는 쪼그리고 앉아

투명해진 내 안을 들여다본다


무색의 연기 같고

뭉툭해진 바늘 끝 같고

메모리가 고장 난 카메라 같아서


두 손에 매달린 채

쓸데없이 흘러내리는 시간처럼

툭툭 털어내면 될 것 같은 쓸데없는 기분


투명한 나를 쓸어 담는 대신

언젠간 그냥

내가 나를 헐어버려도 될 것 같다


밤이 나를 온전히 집어삼키지 못할 때

어둠이 벽으로 치닫거나

나아가지 못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투명해진다


햇빛이 몸을 관통하고

그림자가 깊이 가라앉는 동안

나를 들어 올려

빈 공간을 프리즘으로 가득

채워버리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매일 보던 당신이 왠지 수상하게 보인다


나는 빛으로 분광된

무지개가 되어야겠다


오늘은 그냥

달고 달디 단 당신의 그림자를

하루쯤 혀로 녹여 먹어도 괜찮겠다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