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
내가 중국에서 좋아하는 것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삼국지'다. 삼국지를 정말 수십 번은 정주행한 것 같다. 20년 동안 정말 꾸준히 읽고 있기 때문에, 공감대와 느낀 점이 갈수록 달라진다는 것을 느낀다. 정독할 때마다 매 장면이 조금씩 달리 보인다.
그런데 매번 한결같이 '가슴이 웅장해지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동탁 타도'와 '한나라 부흥'을 내걸고 17제후들이 한곳에 집합하는 장면이다. 원소, 원술, 손견, 공손찬, 마등에 (당시엔 제후가 아니었던) 조조와 유비까지, 삼국지의 거의 마지막까지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군웅할거의 주인공들이 한곳에 모이다니. 그것도 모두 한 팀을 이뤄 연합군으로 모이다니.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비슷한 에피소드가 고대 그리스에도 등장한다. 상황과 맥락은 달라도, '구름처럼 이는 영웅들이' 하나의 분명한 목표 아래 출병하던 순간이 있었다. 바로 페르시아 정복을 위해 한데 모인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대'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방 원정 '이후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 역사덕후들 사이에서만 열심히 회자될 뿐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를 다루는 강의나 (특히 국내) 서적은 거의 한결같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망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물론 대왕의 죽음부터 다른 시대(헬레니즘 시대)로 넘어가니 쉬어가기 좋은 분기점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볼 일 보고 휴지로 닦지 않은 느낌은 여전하다.
게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워낙 '넘사벽'의 인물이니(...), 비교적 다른 원정대원의 이야기가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17제후들의 총사령관 원소가 제아무리 날고 기어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비할 바는 아니다.) 현대인들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고대인들도 그렇게 느꼈다. 마지막 헬레니즘 왕국을 정복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신을 직접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관리인이 혹시 다른 왕들의 시신도 보고 싶냐고 묻자, 아우구스투스는 이렇게 말하고 거절했다. "나는 대왕을 보러 왔지, 시체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아우구스투스에게나 우리에게나, 대왕의 후계자들은 참 초라하다.
그렇지만 막상 그들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페리클레스의 아테네보다 덜 화려하긴 하지만, 또 레오니다스 1세의 스파르타보다 덜 극적이긴 하지만, 대왕이 정복한 드넓은 영토를 사분오열하고 군웅할거하며 다툰 이야기는 삼국지 못지않게 흥미롭다. 어쩌면 고대 그리스 역사상 '가장 스펙터클하고, 권모술수가 낭자하고, 대전투와 정복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40년'일 것이다. 삼국지에 관도대전∙적벽대전∙이릉대전이 있다면, 그리스엔 입소스∙헬레스폰트∙코로페디온 전투가 있다. 삼국지에 조조∙유비∙손권이 있다면, 그리스엔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파트로스가 있다. 삼국지에서 서량의 마초가 갑툭튀하는 것처럼, 그리스에선 에페이로스의 피로스 1세가 그러한다. 또 삼국지에서 황제가 허수아비였던 것처럼, 아르게아스 정통 왕조의 왕들은 한없이 유약했다.
일단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 자체도 삼국지와 비슷한 점이 즐비하다. 우선 하나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연합군은 동탁 타도와 한나라의 부흥, 동방 원정대는 페르시아 정복을 외쳤다. 일견 보기에, 동탁의 세력과 페르시아의 위세가 압도적이었던 것도 비슷하다. 또 반동탁 연합군과 동방 원정대의 구성원들은 (손견과 파르메니온 정도를 제외하면) 그들이 결집했을 시점엔 엄밀히 말해 '영웅'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후에 영웅이 되었다. 또 동탁 사후 제후들이 서로 다퉜던 것처럼,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엔 이른바 "후계자 전쟁(War of Alexander's Successors)"가 벌어진다. 후계자들 중 몇몇은 초반부터 요절하고, 몇몇은 중반에 이르러 사라지고, 또 몇몇은 끝까지 살아남아 천하를 처음엔 4개, 나중엔 3개로 나누게 된다. 또 많은 삼국지의 영웅들이 노식 같은 학자들에게 인의(仁義)에 대해 배웠던 것처럼,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 중 대다수는 어려서부터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의 궁정에 머물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여러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동방 원정대엔 어떤 인물들이 있었을까?
일단 황실 친위대장으로 (헤파이스티온 사후) 제2인자였던 '페르디카스'가 있다. 대왕 사망 직후에 드넓은 아시아 영토를 지배하는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정통 왕실의 섭정직을 맡으면서 제국 통합파의 길을 걷지만,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원소처럼) 일찍 패망한다. 그럼에도 (이후에 다룰) 에우메네스의 존경을 받았을 정도로 과감하고 결단력 있는 뛰어난 인물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의 전투를 앞두고 휘하 장수였던 셀레우코스 1세에게 암살을 당한다.
두 번째는 친위대장 출신인 '안티고노스 1세'다. 플루타르코스는 안티고노스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 중 가장 뛰어났다고 썼다. 애꾸눈이라는 별명처럼 일찍이 위대한 무장이었으며, 페르디카스 이후 드넓은 아시아 지역을 장악하고 (단명한) 안티고노스 왕조를 창건하며 아시아의 왕으로 불렸다. 심지어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1세도 별명이 '도시함락자(Poliorcetes)'일 정도로 유명한 무장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처음부터 명망 있는 군인이었다는 점과, 한 왕조의 시조였다는 점, 아들도 뛰어난 무장이었던 점에서 삼국지의 손견이랑 비슷하다.
마찬가지로 친위대장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있다. 역사학자 제임스 롬은 이렇게 평가했다. "아마 그는 페르디카스만큼 과감하지는 못하고, 크라테로스만한 권위도 없고, 그리스인 에우메네스만큼 영리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세 가지 자질을 고르게 갖추고 있었으며, 이것이 어느 한 자질만 특출한 것보다 나았다." 쉽게 말해, 육각형 인물이었다는 것. 그래서인지 얇고 길게 갔고,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대왕 사후 벌어진 내전의 최종 승리자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무려 이집트의 '파라오(!)'로 등극하여,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창건자가 되었다. (참고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사실상 마지막 파라오가 바로 그 클레오파트라다.)
또 드물게 문관형 군주였고, 학문을 좋아했다. 수학자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를 후원했는데, 기하학이 너무 어렵다고 프톨레마이오스가 불평하자, 에우클리데스는 "기하학엔 왕도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어디 어디엔 왕도가 없다'는 말의 유래다. 또 말년에 동방 원정기를 서술하여 (유실되기 전까지, 당시 역사가들에겐) 대단히 중요한 기록을 남겼다. 영화 「알렉산더(Alexander)」에서 화자로 등장한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와 함께 후계자 전쟁의 최종 승리자 중 한 명인 '셀레우코스 1세'도 있다. 기병 사령관 출신이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창건자로 별명은 승리자(Nicator). 후계자 전쟁 중 가장 큰 전투였던 입소스 전투에서 안티고노스 1세를 패사시켜 아시아를 정복했고, 후계자 전쟁 최후의 대전투인 코로페디온 전투에서 리시마코스마저 패사시키며 소아시아를 정복해, 후계자들 중 가장 방대한 영토를 차지했다. 그러나 코로페디온 전투 직후,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아들에게 암살당했다.
'리시마코스'도 대왕의 친위대 출신으로 제국을 분할하여 오늘날 불가리아와 튀르키예 서부를 다스리는 트라키아의 왕으로 등극했다. 셀레우코스와 연합하여 입소스 대전투에서 안티고노스를 전사시키고 승리했을 뿐 아니라, 그 위대한 한니발이 자신보다 위대한 장군으로 꼽았던 그 피로스 1세를 격파하여 내쫓기도 하는 등, 대단한 명장이었다. 그러나 이후 셀레우코스와의 코로페디온 전투에서 패사했다.
더불어 '에우메네스'도 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Parallel Lives)』에 등재된 50명 중 한 명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서기관이었다. 드물게 문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다른 후계자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 하지만 무예도 대단해서, 크라테로스를 상대로 했던 헬레스폰트 전투에서 친위대장 출신(!)의 네오프톨레모스와 일기토를 벌였고, 여기서 승리해 그를 직접 베었다. 단명하기 전까지 카파도키아와 파플라고니아를 다스렸다. 안티고노스 1세와의 대결 중에 부하들의 배신으로 생포된 뒤, 암살당한다. 후계자 전쟁 중반부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 외에도 위대한 인물들이 줄을 잇는다. '크라테로스'는 (에우메네스와의 전투에서 허무하게 전사하긴 했지만) 삼국지의 전위나 허저 같은 인물로 당대 최고의 팔랑크스 지휘관이었다. 덕분에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크라테로스를 상대했던 에우메네스가 자신의 부하들이 크라테로스 쪽으로 전향할까 두려워 상대가 크라테로스라는 것을 부하들에게 알리지 않았을 정도로 말이다. 플루타르코스도 대왕의 후계자들 중 가장 큰 존경을 받던 사람으로 크라테로스를 꼽았다. 알렉산드로스의 죽음 전에 사망하여 후계자 전쟁엔 참여하진 못했지만, 원정대의 일원이었던 백전노장 '파르메니온,' 알렉산드로스의 최측근이자 친위대장인 '헤파이스티온' 도 출중한 인물이었으며, 말고도 이후 마케도니아의 섭정을 맡게 되는 폴리페르콘, 원정 중 해군 제독이었던 '네아르코스,' 프리기아를 통치하고 그리스 내전에 개입했던 야심가 '레온나토스' 등이 있었다. 원정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대왕의 동방 원정 내내 그리스 본토를 지켰던 섭정 '안티파트로스'와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도 후계자 전쟁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카산드로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올림피아), 아내(록산나), 아들(알렉산드로스 4세) 모두 살해하여 대왕의 혈통을 완전히 끝장냈다. 또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누이인 테살로니케와 결혼하여 안티파트로스 왕조를 창건하는데, 테살로니케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도시가 바로 성경에 나오는 '데살로니가(테살로니카, 테살로니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