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인도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T. B. 매콜리의 인도 교육에 관한 의견서

by 조슈아

소개

본 번역문은 동인도회사령 인도의 총독평의회 법률위원 토머스 배빙턴 매콜리(Thomas Babington Macaulay, 재임 1834-1838년)가 1835년 2월 2일, 총독평의회에 제출한 인도 교육 정책에 대한 의견서다. 매콜리는 이른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liberal imperialist)'였다. 다시 말해, 영국보다 덜 발절된 지역들, 이를테면 인도가 영국제국의 통치를 받으며 진보하고 근대화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매콜리는 본 글에서 영어 기반의 서양식 근대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영어 교육이 기존의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 중심의 동양 고전 교육을 대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국의 인도 통치 전략이 피상적이고 단순한 지배가 아님을 보여주는 일종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선언문'이다.


인도 교육에 관한 의견서 본문 [번역문]

공교육 위원회(Committee of Public Instruction)의 일부 위원님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추구해온 방침이 영국 의회가 1813년에 명명백백하게 규정했던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동인도회사 독점 무역권 폐지, 인도 선교 허용, 인도의 교육 투자 등을 명시한 Charter Act of 1813/East India Company Act of 1813을 말함 - 옮긴이). 만약 그 판단이 옳다면, 현 체제를 바꾸기 위해선 별도의 입법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연유로 저는 현재 위원회에 제출된 반대 의견서 작성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고, 대신 총독평의회(Council of India) 위원으로서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될 때까지 제 입장 공개를 보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해당 법령이 어떻게 해석되든 현재 교육 방침을 뜻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법엔 어떤 언어나 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구체적인 지시가 없습니다. 단지 예산이 "인도의 문학을 부흥 및 증진하고, 인도 토착 학자들을 장려하고, 영국 영토의 주민들에게 과학 지식을 소개하고 확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정되어 있다고만 명시되어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여기서 말하는 문학(literature)이라는 것이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문학만을 의미할 뿐이며, 밀턴의 시, 로크의 형이상학, 뉴턴의 물리학을 학습한 사람은 결코 "교양 있는 현지인"이라 부를 수 없고, 힌두교 경전을 통해 쿠사 풀(cusa/kusha grass, 힌두교의 신성한 풀 - 옮긴이)의 각종 쓰임새나 신과의 합일에 얽힌 온갖 신비를 공부한 사람들만 오직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해석이 결코 설득력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유럽의 여러 나라보다 학문적으로 앞섰지만 지금은 훨씬 뒤쳐진 이집트의 파샤(pasha, 오스만제국의 지방 총독 - 옮긴이)가 '문학을 부흥하고 학식 있는 이집트인들을 장려한다'는 명목으로 예산을 배정했다고 합시다. 그 정책이 이집트 청년들에게 상형문자를 수년간 공부하게 하고, 오시리스 신화 속에 숨겨진 온갖 교리를 탐구하게 하고, 고양이와 양파를 어떻게 제사 지냈는지를 정밀하게 조사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오벨리스크 해독이나 하는 대신, 오히려 영어와 프랑스어 및 그 언어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가르치라고 명령하는 것이 비논리적인 처사라고 비난받을 수 있겠습니까?


옛 교육 방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자신들의 해석을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근거 바로 뒤에 이어지는 구절들은 오히려 제가 주장하는 방향에 결정적인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도 문학 부흥"이라는 구절 하나에 자신들의 모든 해석을 의존하고 있지만, 10만 루피의 예산은 단지 그것만을 위해 책정된 것이 아닙니다. 그 예산은 동시에 "영국 영토의 주민들에게 과학 지식을 소개하고 확산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활용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제가 주장하는 교육 개혁은 충분히 정당화됩니다.


만약 총독평의회가 제 해석에 동의한다면, 별도의 입법 조치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제의 원인이 되는 1813년 법의 해당 조항을 철회하는 간략한 법안을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제가 앞서 했던 주장은 절차상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양식 교육 체계(Oriental system of education)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칩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를 정당하다고 받아들인다면, 사실상 어떤 개혁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들은 현 교육 체계에 이미 공적 신뢰가 담보되어 있다고 간주하고, 지금까지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교육을 장려하는 데 쓰인 예산을 다른 일을 위해 활용하는 것은 명백한 약탈(downright spoliation) 행위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문학을 장려하기 위해 공적 자금에서 지출한 보조금은, 실질적으로든 추정적으로든 다른 공공 목적을 위해 쓰인 보조금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지역이 건강에 좋다고 하여 그곳에 요양소를 세우곤 합니다. 그렇다면 그 장소가 기대만큼 적합하지 않다는 것으로 판명났을 때도, 그곳에 요양소를 계속 두기로 약속한 것처럼 행동해야 합니까? 방파제가 쓸모없다고 드러난 곳에서 계속해서 방파제 공사를 이어가는 것이 공적 신뢰를 저버리는 일입니까? 물론 재산권은 신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재산권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상에 적용하는 관행입니다(동양식 교육을 지지하는 학자들과 수혜자들은 예산(보조금)이 비동양식 교육에 책정되는 것을 재산권 침해(약탈)로 간주했음 - 옮긴이). 안타깝게도 현재 이런 관행은 흔해졌습니다. 부당한 관행에 재산권의 신성함을 덧씌우려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재산권 제도 자체에 그 부당함의 불신과 취약성을 덧씌우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만약 정부가 어떤 사람에게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에 일정한 소득을 보장했다면, 혹은 합리적으로 그런 기대를 품게 했다면, 저는 그 사람의 금전적 권익을 존중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공적 신뢰가 의심받는 상황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해당 언어나 학문이 더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정부가 앞으로도 특정 언어와 특정 학문 교육을 약속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제게 터무니없게 들립니다. 공식 문서 어디를 봐도, 인도 정부(총독부 - 옮긴이)가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약속을 하려고 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이 예산의 용도가 절대적으로 고정된 것이라고 간주했다는 표현 역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설령 그런 약속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저는 선대인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우리 후대인들에게까지 구속력을 갖는 약속을 할 권한이 없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지난 세기에 어떤 정부가 "국민 모두는 영원히 천연두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라고 엄숙하게 법제화했다면, 제너(Edward Jenner)의 백신이 개발된 이후에도 그 조치를 계속해서 고수해야만 합니까? 아무도 지키라고 하지 않고, 아무도 철회하지 않으며, 실제로 누구의 것도 아닌 이른바 '기득권'이나 '약속,' 그리고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 '도둑질'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저보다 훨씬 현란한 두뇌를 가진 자들일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런 주장은 영국에서나 인도에서나 언제나 반복되어온 표현에 불과합니다. 결국, 달리 변호할 길이 없는 부조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마지막에 꺼내드는 상투적인 수사일 뿐입니다.


저는 이 10만 루피가 인도에서 학문을 증진시키기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총독평의회가 전적으로 재량을 갖고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라고 간주합니다. 이 자금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판단하는 권한도 전적으로 평의회에 있습니다. 총독께서 이 예산을 더 이상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 교육을 장려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하고 결정할 재량권은, 마이소르의 호랑이 포상금을 줄이거나, 대성당 성가대에 공적 자금을 쓰지 않도록 지시하는 재량권과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이제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리에겐 인도인들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쓰일 수 있는 예산이 있고, 예산의 사용 방식은 정부의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이 예산을 가장 효과적이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모두가 한 가지 점에서는 대체로 의견이 같은 듯합니다. 바로 인도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방언들은 문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지식이 담겨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언어 자체가 매우 빈약하고 조악해서, 다른 언어로부터 내용을 보충받지 않고서는 가치 있는 저작물을 해당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계층의 지적 향상은, 현재로서는 그들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점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육에 쓰일 언어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공교육 위원회의 절반은 영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그러나 제게 이 문제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즉, 어떤 언어가 가장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가 입니다.


저는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을 직접 구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가치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다 해보았습니다. 저는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로 된 가장 유명한 저작들의 번역본을 읽었고, 이곳 인도와 영국에서 동양 언어에 정통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저는 동양 고전 교육의 가치에 대해 그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동양학자들의 평가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럽의 양질의 도서관 책장 하나 분량이 인도와 아라비아가 보유한 모든 토착 문헌보다 더 낫다는 말에 반대하는 자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서양 문학의 본질적 우수성은, 위원회 내에서 동양식 교육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동양 작가들이 가장 높은 평가를 하는 문학 분야가 시(詩)라는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 아랍어나 산스크리트어의 시가 유럽의 위대한 국가들이 남긴 시와 견줄 수 있다고 감히 주장하는 동양학자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상상력의 산물을 넘어 사실을 기록하고 일반 원리를 탐구하는 저작들의 경우, 유럽 문학의 우월성은 더 이상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백해집니다.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해도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모든 책에서 수집된 역사 지식보다, 영국 예비학교에서 쓰이는 가장 하찮은 역사 축약본에 담긴 지식이 더 가치있습니다. 자연철학이든 도덕철학이든, 어떤 분야를 보더라도 두 지역 간의 격차는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현재 자국어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에게 어떤 외국어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언어, 즉 영어가 지닌 장점에 대해서는 굳이 반복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영어는 서구 언어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입니다. 영어는 고대 그리스가 남긴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에 비견될 만한 상상력의 산물들, 모든 종류의 수사학의 전범들, 단순한 이야기로 보아도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운 역사 서술들, 윤리적·정치적 가르침을 담은 수단으로서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저작들,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정확하고 생생한 묘사들, 형이상학·도덕·정치·법·무역에 대한 심오한 성찰들, 그리고 인간의 건강을 지키고 삶의 편의를 높이며 지성을 확장하려는 온갖 실험 과학에 대한 정확하고 풍부한 정보까지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를 아는 사람은 지구상 가장 지혜로운 여러 민족이 아흔 세대에 걸쳐 만들어 쌓아올린 방대한 지적 유산에 곧장 접근할 수 있습니다. 영어로 쓰인 문학의 가치는, 300년 전 세계의 모든 언어로 쓰인 문학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크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인도에서 영어는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각 행정 중심지에서는 인도 상류층 사이에서도 영어가 사용됩니다. 또한 영어는 앞으로 동방 지역의 해상 무역 전반에서 공용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영어는 현재 아프리카 남부와 오스트랄라시아에서 성장 중인 두 유럽계 공동체(호주와 뉴질랜드 - 옮긴이)의 언어이기도 하며, 이들은 해마다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고, 우리의 인도제국(Indian Empire)과의 연계 또한 강화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문학의 본질적 가치, 혹은 인도의 특수한 상황을 살펴볼 때, 수많은 외국어들 가운데서도 영어가 인도인들에게 가장 유익한 언어라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충분합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아주 단순합니다. 우리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문학과 비교할 만한 가치 있는 책이 전혀 없다고 만장일치로 인정되는 언어들을 과연 가르쳐야 합니까? 우리가 유럽의 과학을 가르칠 수 있음에도, 유럽의 학문과 다른 모든 부분은 열등하다고 스스로 인정한 학문들을 과연 가르쳐야 합니까? 우리가 건전한 철학과 진정한 역사 교육을 베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예산을 들여 영국의 말발굽 수리공도 부끄러워할 수준의 의학, 영국 여학교 소녀들도 비웃을 법한 천문학, 키가 30피트에 달하는 왕들이 3만 년 동안 통치했다고 가르치는 역사학, 설탕 시럽과 버터로 이루어진 바다가 등장하는 지리학을 과연 세금으로 떠받들어야 합니까?


참고할 만한 전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여럿 있으며, 그 모든 경우가 동일한 교훈을 전해줍니다. 굳이 먼 과거까지 가지 않더라도, 근대 역사만 참고해도 사회 전체의 정신에 거대한 자극이 가해지고, 뿌리 깊은 편견이 무너지고, 지식이 널리 전파되고, 취향이 정제되고, 예술과 과학이 최근까지 무지하고 야만적이었던 나라들에 뿌리내린 뚜렷한 두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15세기 말과 16세기 초에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위대한 고전 부흥 운동입니다. 그 시기에는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저자들의 저술에 담겨 있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우리의 조상들이 지금까지 공교육 위원회가 행동해온 방침을 고수했다면, 만약 그들이 키케로나 타키투스의 언어(그리스어와 라틴어 - 옮긴이)를 무시하고, 우리 섬의 오래된 방언에만 관심을 쏟았다면, 만약 앵글로색슨어로 된 연대기와 노르만계 프랑스어로 된 영웅담 외에는 아무것도 인쇄하거나 가르치지 않았다면, 오늘날 영국이 과연 지금과 같은 나라가 되었겠습니까? 모어(Thomas More, 『유토피아(Utopia)』의 저자 - 옮긴이)나 애섬(Roger Ascham, 엘리자베스 1세의 가정교사 - 옮긴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그러했듯이, 지금 인도인들에게는 영어가 그런 존재입니다. 오늘날 영국의 문학은 고대의 문학보다 더 가치있습니다. 저는 산스크리트어 문학이 과연 우리의 색슨족과 노르만족 조상들이 남긴 문학만큼의 가치라도 있는지 의문입니다. 특히 역사와 관련해선, 산스크리트어 문학이 그보다 훨씬 못하다고 확신합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지난 120년 동안, 한때 십자군 전쟁이 이전 우리 조상들의 수준만큼이나 야만적이었던 상태에 있던 한 민족이 점차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 이젠 문명화된 국가들 사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러시아입니다. 오늘날 러시아에는 높은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춘, 학식 있는 인재들로 구성된 대규모 교양 계층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파리와 런던의 최고 상류층을 빛내는 지식인들에 비해 결코 뒤쳐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 조부모 세대에는 아마도 펀자브 지방보다도 뒤떨어져 있었던 거대한 제국이, 우리 손자 세대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뒤를 바짝 쫓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 기대할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민족적 자긍심을 부추긴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러시아 청년의 정신을, 그의 조상들이 믿었던 미신 섞인 노파의 이야기로 채운 결과도 아니었습니다. 니콜라스 성인에 대한 신화를 주입하거나 세상이 9월 13일에 창조되었는지를 연구하게 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익힌 사람들에게 "교양 있는 현지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덕분도 아니었습니다. 그 변화는 지식이 축적된 외국어를 가르치고, 지식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서유럽의 언어들이 러시아를 문명화했듯이, 힌두인에게도 동일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이론과 경험 모두가 권장하는 일에 반대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흔히 나오는 반론은 우리가 인도 사회에서 협력자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를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코 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지적으로 훨씬 앞선 한 나라가 상대적으로 무지한 다른 나라의 교육을 감독할 때, 가르침을 받는 쪽이 교육의 방식을 일방적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굳이 더 말을 길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실제로 인도 사회의 협력을 얻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명백한 증거들로 이미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의 지적 취향을 존중하느라 그들의 사고력과 지식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못된 일일 텐데, 지금 우리는 인도인들의 취향조차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학문은 외면하고, 그들이 혐오하는 가짜 학문만을 억지로 떠넘기고 있습니다.


이 점은 하나의 명백한 사실을 통해 입증됩니다. 우리는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배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미사여구를 동원해 인도인들이 그들의 성스러운 언어를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지를 외쳐본들, 모든 사실을 공정하게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단 하나의 사실, 즉 우리의 거대한 제국 전체를 통틀어 보더라도, 우리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그 언어들을 배우려는 학생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능가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제 앞에는 1833년 12월 한 달 분량의 아랍어 학교 회계 기록이 있습니다. 그 달에 아랍어를 배운 학생의 수는 77명이었는데, 전원이 공적 자금에서 지급되는 보조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지급된 총액은 한 달에 500루피가 넘습니다. 반면, 같은 회계 장부의 다른 쪽에는 이런 항목이 있습니다. 지난 5·6·7월 동안 외부 영어 수강생들로부터 얻은 수입: 총 103루피.


제가 이런 현상에 놀라는 것은 단지 현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학생들이 자기 돈을 내고 공부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 아니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제 믿음을 더 확고히 해줄 뿐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즐겁고 이익이 된다고 여기는 일을 하는 데에 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세계 어디서나 분명한 사실이고, 인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인도 사람들이 배고플 때 쌀을 먹는다고 해서, 추운 계절에 모직 옷을 입는다고 해서 돈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우리가 논의 중인 안건과 가까운 예를 들자면, 마을 교사에게 글자와 기본적인 산수를 배우는 아이들은 교사에게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수업료를 지불합니다. 그런대 왜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를 배우는 학생들만 돈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이유는 분명합니다.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는, 그것을 배우는 데 드는 수고를 감당할 만큼의 가치를 지닌 언어가 아니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에서 결정적인 판단의 기준은 결국 시장의 현황(state of the market)입니다.


다른 증거 또한 부족하지 않습니다. 지난해 공교육 위원회에 산스크리트어 대학 졸업생 여러 명이 탄원서를 제출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10-12년 동안 해당 대학에서 공부했으며, 힌두 문학과 과학을 익혔고, 학업 성취에 대한 증서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의 결실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한 증서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원회의 도움 없이 처지를 개선할 수 없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우리를 대체로 무관심 속에 대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턴 어떤 격려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총독 각하에게 자신들을 정부 산하 자리에 추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높은 지위나 많은 수입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한 직책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호소합니다. "우리는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고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릴 적부터 우리를 교육하고 부양해온 정부의 도움 없이는 그것을 얻을 길이 없습니다." 그들은 끝으로, 교육 과정 내내 정부가 그렇게 관대하게 대해놓고는 결국 자신들을 궁핍과 방치 속에 내버려 두는 것이 정부의 본래 의도였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매우 적절하게 덧붙이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부당하게 느껴지는 탄원서들마저 최소한 어떤 손해가 발생했거나 어떤 피해를 입었다는 전제 위에 쓰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전혀 색다른 종류의 청원자들입니다. 이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공적 자금으로 부양받았고, 문학과 과학의 소양을 갖춘 채 세상에 나왔다는 이유로, 정부에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수강한 교육 자체를 일종의 피해로 여기며, 이에 대한 구제를 정부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 피해가 너무 컸기에 교육 중에 받은 장학금조차 충분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주장에 공감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를, 자신들에게 먹고 살 능력도, 사회적 존중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학문을 배우는 데 허비한 것입니다. 애초에 이들을 이렇게 무력하고 비참한 존재로 만드는 데 쓰인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입니다. 원주민들에게 짐이 되고 이웃에게 멸시받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국가 예산을 들인다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입니까? 하지만 바로 그것이 우리의 현재 정책입니다. 우리는 진리와 허위의 싸움에서 중립조차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인도인들이 스스로 물려받은 편견 속에 내버려 두는 것조차 마다합니다. 오히려 동방에서 건전한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자연스러운 장애물에, 우리가 만들어낸 새로운 장애물까지 더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전파하는 데에도 마땅히 주어져서는 안 될 장려금과 포상을, 그릇된 취향과 허황된 철학을 위해 아낌없이 퍼붓고 있습니다.


이렇게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해악을 스스로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즉 존재하지 않던 저항을 우리가 만들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대학에 쓰는 돈은 진리의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낭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류의 편에 설 전사들을 키우는 데 쓰일 장려금입니다. 그 돈은 단지 한직만 좇는 사람들만을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과 이해관계 속에 유용한 모든 교육 방안에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편협한 근본주의자들의 온상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제안하는 개혁에 대해 인도인들 사이에서 어떤 저항이 발생한다면, 그 저항은 전적으로 우리의 기존 제도가 낳은 것입니다. 그 저항의 선두에는 우리가 장학금을 지급하고, 우리 대학에서 훈련시킨 이들이 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방식을 오래 고수할수록, 그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우리 비용을 지급하며 길러낸 새로운 저항자들을 계속 양성하게 될 것입니다. 인도 사회 자체로부턴 우리가 걱정할 만한 수준의 저항은 거의 없습니다. 모든 불평과 반발은, 우리가 인위적인 수단으로 키워낸 이른바 동양적 이해집단(oriental interest)에서 나올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도 대중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교육을 지지하고 있다는 기존 교육 정책 지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 위원회는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서적을 인쇄하는 일에 10만 루피가 넘는 돈을 투입했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아무도 구매하지 않습니다. 한 권이 팔리는 일조차 드뭅니다. 현재 위원회의 도서관, 아니 창고에는 대개 대형 판형이나 중간 판형으로 인쇄된 책 2만 3천 권이 쌓여 있습니다. 위원회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책을 무료로 나누어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인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나눠주는 것만으론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매년 약 2만 루피를 들여, 이미 넘치도록 쌓여 있는 이 인쇄물 무더기에 새로운 폐지를 더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이 방식으로 약 6만 루피가 지출되었는데, 그 사이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서적 판매로 거둔 수익은 고작 1천 루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한편, 학교 교과서 협회는 매년 7-8천 권에 이르는 영어 서적을 판매하며, 인쇄 비용을 충당할 뿐만 아니라 투자액의 20퍼센트에 달하는 수익까지 거두고 있습니다.


힌두교의 법은 주로 산스크리트어 서적에서, 이슬람교 법은 아랍어 서적에서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지금 우리가 논의하는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영국 의회는 우리에게 인도 법률을 명확히 정리하고 체계화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를 위해 법률위원회(Law Commission)의 지원도 제공된 상태입니다. 일단 법전이 공포되면 치안판사(Moonsiff)나 지방판사(Sudder Ameen) 같은 하급 판사들에게는 『샤스트라(Shaster/Shastra)』나 『헤다야(Hedaya/Al-Hidayah)』 같은 전통 법률서는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대학에 입학하는 소녀들이 학업을 마칠 무렵에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완료되어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기대합니다. 교육 체계를 개편할 예정이면서, 장차 바뀌게 될 기존 교육 체계를 기준으로 미래 세대를 교육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백히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더 설득력이 없는 또 다른 주장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와 아랍어는 수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읽는 신성한 텍스트의 언어이므로, 특별히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도에서의 영국 정부는 모든 종교 문제에 있어 관용을 넘어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본래의 가치가 거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한 문학을, 그 문학이 가장 중대한 주제들에 대해 심각한 오류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장려하는 것은(즉, 그것이 오류임에도 종교 텍스트라는 이유 때문에 장려하는 일은 - 옮긴이), 이성에도, 도덕에도, 우리가 모두 신성하게 지켜야 한다고 합의한 바로 그 중립성에도 부합하지 않는 처사입니다. 그 언어가 지식적으로 빈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황당한 미신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까? 거짓된 역사, 거짓된 천문학, 거짓된 의학을, 그것이 거짓된 종교와 함께 나타난다는 이유로 교육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 선교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공적인 지원을 제공하지 않아 왔고, 또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런 입장을 취하면서도, 국가 재정으로 사람들이 젊은 시절을 낭비하도록 부추기고, 예컨대 당나귀를 만졌을 때 어떻게 정결 의식을 치러야 하는지, 혹은 염소를 죽인 죄를 씻기 위해 어떤 베다 경전을 암송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이고 품위 있는 일입니까?


동양 고전 교육의 지지자들은 이 나라의 어떤 원주민도 영어를 피상적으로나마 조금 아는 수준 이상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가정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주장을 증명하려 들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암시합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반대되는 견해에서 제안하는 교육을 단순한 철자 교육(spelling book education)이라고 폄하합니다. 또한 마치 논점이 힌두 및 아랍 문학과 과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영어 기초 지식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 사이에 놓여 있는 것처럼 몰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전제가 아니라, 이성과 경험에 모두 어긋나는 전제입니다. 우리는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이 영어를 배워, 그 안에 담긴 가장 난해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심지어는 가장 정교한 영어 저자들의 섬세한 표현까지 감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도시(캘커타 - 옮긴이)만 해도, 영어로 유창하고 정확하게 정치나 과학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현지인들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현지 신사들이 너무나도 자유롭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토론하는 것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견해는 공교육 위원회 어느 구성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유럽 대륙의 문학계에서도 영어를 그렇게 능숙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힌두인이 영어를 배우는 것이 영국인이 고대 그리스어를 학습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주장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총명한 영국의 청년들은, 산스크리트어 대학의 학생들이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잛은 기간 안에, 헤로도토스나 소포클레스의 글을 읽고 즐기고 심지어는 그들의 글을 능숙하게 모방할 수 있을 수준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힌두인이 흄이나 밀턴의 글을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는, 영국 청년이 그리스 고전을 배우는 데 드는 시간의 절반도 채 걸리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지금까지 말한 바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의회가 1813년에 제정한 법에 얽매여 있지 않습니다.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어떠한 약속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원을 원하는 방식으로 사용할 자유가 있으며, 교육 예산은 가장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가르치는 데 써야 합니다. 영어는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보다 훨씬 배울 가치가 있는 언어입니다. 인도인들은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지,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 교육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법률 언어나 종교 언어로서도 산스크리트어나 아랍어만 특별한 지원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인도 원주민들도 훌륭하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합니다.


반대 견해를 가진 신사들과 저는 전반적으로 한 가지 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제한된 재원으로 인도인 전체를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다스리는 수많은 인도인들과 우리 사이를 이어줄 하나의 계층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지만, 취향과 사상, 도덕, 지성에 있어서는 영국인인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계층이 자국의 토착어들을 정제하고, 서구 학문의 용어들을 도입해 언어를 풍부하게 하며, 장차 그것들을 대중에게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기존의 모든 이해관계를 철저히 존중하고자 합니다. 정당한 기대를 가졌던 개인들에 대해서는 경제적 보장 면에서 관대하게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조장해온 그릇된 체계의 뿌리는 단호하게 절단해야 합니다. 저는 즉시 아랍어와 산스크리트어 서적의 인쇄를 중단할 것이고, 캘커타(현 콜카타 - 옮긴이)의 아랍어 및 산스크리트어 대학 또한 폐지할 것입니다. 베나레스(현 바라나시 - 옭긴이)는 브라만 학문의 중심지고, 델리는 아랍어 학문의 중심지입니다. 베나레스의 산스크리트어 산스크리트어 대학과 델리의 이슬람 대학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보기에 동양 언어에 대해서는 충분히, 아니 지나치게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만약 두 대학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저는 적어도 앞으로 그곳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우리는 인도인들이 진정으로 배우고자 하는 교육 분야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아무런 열의도 없는 학문을 억지로 배우게 하기 위해 뇌물을 주어선 안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길 것이고, 캘커타의 힌두 대학에 더 큰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포트윌리엄(캘커타 - 옮긴이)과 아그라 행정구 주요 도시들에 영어 교육을 철저히 실시할 수 있는 학교들을 설립하는 데도 충분한 자원이 확보될 것입니다.


만약 총독 각하께서 제가 바라는 결정을 내리신다면, 저는 최대한의 열정과 기쁜 마음으로 제 직무를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정부가 현 교육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면, 제가 공교육 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불어, 제가 진심으로 허황되다고 믿는 일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불편합니다. 저는 현재의 교육 체계가 진리의 진보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오류의 자연스러운 종말을 오히려 지연시키고 있다고 믿습니다. 현재 우리는 공교육 위원회(Board of Public Instruction)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적 자금을 낭비하고, 백지 상태의 종이보다도 가치 없는 책을 인쇄하고, 터무니없는 역사학·형이상학·자연과학·신학에 인위적인 생명을 불어넣고, 학식이 오히려 짐이자 흠이 되는 일군의 학자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받는 동안 국가의 보조로 생계를 유지하고, 아무런 쓸모 없는 지식을 배웠으므로 교육을 마친 뒤에도 굶주리거나 평생 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에 놓입니다. 이런 견해를 지닌 이상, 저는 현재의 운영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위원회가 단지 쓸모없는 수준을 넘어서 오히려 유해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그 책임을 함께 짊어지는 일을 정중히 사양하고자 합니다.


해제

고(故) 이영석 교수가 『제국의 기억, 제국의 유산』의 서문에 썼듯, 한국인들은 근대 제국주의와 식민지배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다. 다른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고찰할 때, 언제나 일본제국과 조선의 관계를 투영해서 인식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영국제국을 일본제국과, 인도를 조선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누구나 낯선 것을 처음 이해하려 할 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익숙한 방식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온전한 이해의 실패다. 한국인들은 왜 민족주의자였던 간디와 틸락이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영국을 지지했고, 왜 인도의 청년들에게 영국을 위해 싸우라고 주문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왜 알리가르의 인도인들이 식민지 총독을 어깨에 태우고 열렬하게 환영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에게 '일본으로 인식된' 영국과 '조선으로 인식된' 인도는 국민 감정 속에 도덕적으로 이분법적일 수밖에 없으며, 너무나도 손쉽게 영국을 '악의 세력'과 인도를 '선의 세력'과 동일시한다. 대중교육이나 대중미디어의 반쪽짜리 역사 교육은 그런 선입견을 주기적으로 강화한다. 그 강력하고도 반(半)영구적인, 그리고 대단히 감정적인 이분법 속에, 한국인들은 제국주의·식민지배·민족주의,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본성마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영국의 제국주의는 단일하고 일관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존 로버트 실리가 영국은 제국을 '방심한 사이에 얻었다'라고 표현했듯, 영국의 그 어떤 수뇌부도 제국을 기획하지 않았다. 심지어 19세기 후반 전엔 바라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영국의 식민통치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철학이 존재했는데, '아주 넓게' 잡으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보수주의적 제국주의'로, 제국의 확장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현지 사회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고, 기존 통치 질서의 지도자들과 협력하고,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리고 저렴하게) 지배하려는 철학이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 인도의 총독이었던 리턴과 커즌, 그리고 (특히 식민성 장관 시절의) 윈스턴 처칠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로, 제국적 정복과 지배 자체는 부정적으로 보되, 식민통치를 근대화/문명화라는 의무감이나 사명감으로 간주했다.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들은 현지 정부·법·산업·문화·종교 등을 개혁 및 서구화하려 했으며, 동양 및 아프리카의 기존 질서를 미개하고 퇴보적이라 판단하여 가능하다면 영국이 직접통치를 구사해 각종 개혁을 추진하길 바랐다. 「인도 교육에 대한 의견서(Minutes on Education In India)」의 저자인 토머스 매콜리, 존 스튜어트 밀, 조지프 채임벌린이 대표적인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였다. 그 외에도 매콜리가 작성한 의견서의 수신자였던 윌리엄 캐번디시 벤팅크 총독과 강성한 개혁주의자였던 댈하우지 총독이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데이비드 캐너다인은 식민지 개혁 정책을 '벤팅크·매콜리·댈하우지식 정책'이라고 종종 불렀다.


보수주의적 제국주의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사이에 무엇이 나은지 우열을 가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자는 상당 부분 식민지를 '방임'한다.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기존 체제를 유지하고 기존 질서를 존중한다. 기성 관습과 문화도 대체로 예우하는 편이다. 심지어 산업화와 대중민주주의의 시대에 '아직까지' 살아있는 봉건제와 전통질서를 낭만적으로 흠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나빠지는 것이 별로 없다면, 좋아지는 것도 별로 없다. 반면 후자는 식민지 질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때론 매콜리처럼 현지의 문화·관습·언어를 업신여기고 비웃는다. 하지만 그 '개입'과 '비웃음'을 통해 근대화가 도입된다. 의회민주주의가 안착되고, 자유경제가 구축되고, 미신이 아닌 지식이 전파된다. 적어도 그런 노력이 이루어진다.


우린 모두 근대화된, 어떤 면에선 '서구화된' 시대와 장소에 살고 있다. 한국의 우파들이 지키려 하는 것과 한국의 좌파들이 개혁하려는 것은, 그리고 좌파들마저 지키려는 것은 대체로 '서쪽'에서 온 것들이다. 민주주의·자유시장·정교분리는 한국의 것이 아니다. 기껏해야 (서양의 개입과 동양에 대한 비웃음을 통해 수입된) 보편적인 가치로 인식될 뿐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유럽의 식민통치를 받진 않았지만, 우리 모두 일정 부분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적어도 자유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할까 싶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선택하는 것에 망설일 것이다.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가장 거리끼는 것은 그들의 '건방짐'이다. 아랍어를 조롱하는 매콜리를 보자. 아랍어를 한국어나 한글로 바꾼다면 매콜리의 개입주의가 훨씬 건방지게 느껴질 것이다.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이 타국에 비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우월감은 아닐지라도, 머리로는 서구식 교육·문화·법·정치가 식민지의 그것과 비교할 때 훨씬 진보했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모든 개혁 논의를 시작한다. 문화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나 타문화를 조롱하는 것은 '위계'와 '차별'에 민감한 현대인들의 귀에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누가 우월감에 젖은 차별주의자의 말을 곱게 경청할까?


하지만 그런 분노감에 젖어 이 모든 논의, 혹은 매콜리의 「인도 교육에 대한 의견서」에 대한 논의를 끝낸다면, 아주 초보적이고 반쪽짜리 교훈만 얻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교훈이 아닌 '오해'이자 '착각'에 불과하다. 매콜리의 글은 현대인들에게 대단히 건방지고 차별적으로 보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시대를 감안한다면) 대단히 '비차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글인데, 매콜리가 영국인과 인도인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매콜리가 정말 인도 사람을 본래 열등하고 미개한 존재로 생각했다면, 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영국이 '챙겨줘야' 하는 저열한 존재로 간주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콜리는 계속해서 인도인의 발전 가능성을 말했으며, 적절한 수단이 뒷받침된다면 그들이 영국만큼 충분히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가능성의 만개를 보기도 했다. 다음을 본문을 읽어보자. "저는 지금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현지 신사들이 너무나도 자유롭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토론하는 것을 직접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견해는 공교육 위원회 어느 구성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사실 유럽 대륙의 문학계에서도 영어를 그렇게 능숙하고 정확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유럽인보다 인도인이 나을 수 있다. 매콜리는 엄밀히 말하면 영국이 인도에 비해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지적으로 훨씬 앞선 한 나라(영국)가 상대적으로 무지한 다른 나라(인도)"라고 썼듯, 매콜리의 영국은 인도 '위'에 있지 않았다. 단지 '앞'에 있었을 뿐이다. 위·아래와 달리 앞·뒤의 경우, 뒤쳐진 자는 언제든지 앞선 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 본질적으로 양쪽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로 인해 지금 누군가 앞서고 누군가 뒤쳐져 있을 뿐이다. 매콜리가 말했듯, 영국도 한때 인도나 이집트의 '뒤'에 있었다. 그는 그리스·로마의 문학이 영국의 선조의 문학보다 더 위대했다고 말했으며, 십자군 전쟁 이전의 영국인들을 '야만적'이라고 썼다. 하지만 영국은 모종의 과정을 거쳐 파격적인 진보를 이뤄냈다. 19세기의 매콜리가 보기엔 영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진보한 국가가 되었다. 영국의 법은 동양의 법에 비해 공평했고, 영국의 지식은 동양의 지식에 비해 진실에 가깝고 실용적이었으며, '수많은 사람의 이해를 반영하는' 영국의 대의정부는 '한 사람의 이해를 반영하는' 동양의 전제정에 비해 훨씬 선진적이었다. (그것이 당시 영국의 지식인들이 생각하던 진보의 척도였다.) 매콜리는 앞선 영국이 뒤쳐진 인도를 무책임하게 내팽개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혁을 통해 계명시키길 바랐던 것이다. 매콜리가 정말 서구우월주의자였고 차별주의자였다면, 그런 기대나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콜리가 분노하고 미워했던 대상은 인도 사람이 아니라, 인도를 그토록 미개한 상태로 붙잡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아랍어 및 산스크리트어와 터무니없는 미신으로 가득찬 인도의 학문 체계였다.


「인도 교육에 대한 의견서」은 물론 근대화 못지않게 '제국의 통치 전략'에 대한 것이었다. 인도인들을 계명시키는 것만큼이나 인도를 질서정연하고 문제없이 통치하는 것도 중요했다. 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이나 토머스 매콜리 같은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들, 특히 그것을 실천하는 행정가들이 아닌 그것의 이론가들이 보기에, 토착민들의 근대화는 더 효과적인 지배를 의미했다. 영국에 의해 근대화된 인재가 배출되면 배출될수록, 영국의 지배에 협조할 수 있는 최적의 협력층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유명한, 매콜리가 남긴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이 나온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다스리는 수많은 인도인들과 우리 사이를 이어줄 하나의 계층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지만, 취향과 사상, 도덕, 지성에 있어서는 영국인인 사람들입니다.


취향과 사상과 도덕과 지성에 있어서 영국인인, 영국화된(Anglicised) 인도인들은 영국 통치의 최대 수혜자들로, 앞으로 진보를 지향하는 영국의 식민지배에 순종적일 것이었다. 밀과 매콜리는 그런 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성장하여 영국 없이도 자국을 바르게 통치할 수 있다면, 영국은 기쁨과 자부심 속에 인도를 떠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영국민의 최대 기쁨이 되리라.


물론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영국의 지나친 개입주의(근대화)에 대한 인도 보수층의 분노가 세포이 항쟁(1857년)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개입의 열기가 급격하게 사위는 동시에 전통적인 질서 위에 군림하는 보수주의적 제국주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는 후퇴하고 있었고, 자유주의적 총독들마저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사회개혁에 착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매콜리의 아이들'은 보수주의에 아랑곳하지않고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그들은 관료·법조인·교사·지식인이 되어, 보수화된 영국의 지배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를 근대화시킨 영국은 이제 와서 퇴보적으로 시대착오적인 지도층, 이를테면 인도의 봉건군주나 귀족들과 협력하는 것인가? 왜 인도 식자층의 의견을 무시하는가? 왜 교육받은 자들의 정부 진출을 가로막는가? 왜 인도인들의 의사는 무시된 채 정부가 운영되는가? 왜 영국은 영국답지 못한가? 인도의 초대 총리가 되는 네루는 그토록 진보적이고 근대적인 영국이 시대를 거슬러 인도의 보수층과 협력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한 네루는 이미 매콜리의 아이, 다시 말해 취향·사상·도덕·지성에 있어서 영국인이었던 것이다. 매콜리의 아이들은 민족주의의 기수에 섰고, 보수화된 영국의 식민지배에 항의했다. 그리고 그들이 영국 없이 홀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자, 영국은 정말로 인도를 떠났다. 물론 매콜리의 꿈대로 그다지 기쁜 이별은 아니었겠지만.


이 모든 변화는 매콜리의 「인도 교육에 대한 의견서」로부터 시작되었다. 봉건군주나 귀족이 아닌, 인도의 새로운 지도층을 양산한 것은 매콜리의 교육 개혁 덕분이었다. 적어도 그 효시가 되었다. 매콜리의 「인도 교육에 대한 의견서」은 또다른 유명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로, 당시 인도의 총독이었던 윌리엄 캐번디시 벤팅크에게 전달되었는데, 벤팅크는 의견서를 읽은 뒤 "나는 이 회의록에 담긴 견해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I give my entire concurrence to the sentiments expressed in this Minute)."라는 코멘트를 달았다. 그후, 매콜리가 구상하고 벤팅크가 추진한 영어 교육을 통한 근대 교육의 도입은 인도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벤팅크의 평전을 집필한 존 로셀리는, 매콜리와 벤팅크의 교육 개혁이야말로 인도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었다고 지적했다(John Rosselli, "Lord William Bentinck: The Making of a Liberal Imperialist, 1774-1839."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4), pp 21; 21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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