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역사

왜 기억은 충분하지 않은가

by 조슈아

어떤 사람들은 역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해당 역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위기가 발생한 시대에 살았거나 전쟁에 직접 참전한 사람들의 진술만이 가장 정확한 역사적 정보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뭐, 일단 그런 주장은 대단히 상식적으로 들린다.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 1970년대를 가장 잘 설명하지 않겠는가. 격렬하고 치열했던 공습 작전에 참가한 병사 개개인의 진술이, 반세기 후에 조용하고 아늑한 문서고에서 같은 전쟁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한 역사학자의 글보다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당사자의 직접 경험으로 이루어진 "기억(1차 문헌)"이, 역사가의 간접 경험으로 이루어진 "지식(2차 문헌)"보다 역사적 사건을 더 잘 묘사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기억이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직관적이고 뿌리 깊은 생각이지만, 결과적으로 틀렸다. 1970년대 사람의 기억이 1970년대를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볼 수 없다. 공습 작전에 대한 참전용사들의 기억이 보다 훌륭한 통찰력을 보여 준다고도 볼 수 없다. 실은 반대가 더 정확하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1970년대의 위기는 비로소 1980년대 이후에 제대로 이해될 수 있었다고 썼듯, 몇 십 년, 혹은 수 세기 후의 역사학자들이 동시대 사람 혹은 사건 당사자보다 해당 시대와 사건을 더 정확히 재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곧 '정보의 제한,' '기억의 왜곡,' '현재의 반영' 때문이다.


캐나다의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은 자신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절을 직접 살았고, 그 위기의 순간들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썼다. 하지만 쿠바 위기에 대한 맥밀런의 이해는 대중매체에서 전하는 보도에 국한되어 있었을 뿐이다. 그녀는 (다른 수백만 명의 사람들처럼) 미국과 소련의 격렬한 논쟁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비밀리에 소련과 접촉했다는 사실도, 쿠바에 '이미' 소련의 핵탄두가 있었다는 사실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소련의 승리를 위해 자국의 파멸까지 각오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다 한참 후에, 양측의 기밀문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했고, 학자들이 그것을 정리하고 연구해 '지식'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사람들은 1962년에 실제 벌어지고 있던 일들의 진상을 더욱 종합적으로 알게 되었다.


영국의 드레스덴 공습 작전을 수행한 참전용사들의 기억과 실제 역사 사이에도 그런 간극이 있다. 참전용사들은 독일 상공을 어느 고도로 비행하고 어떤 폭탄을 떨어뜨려야 하는지 잘 알았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드레스덴 공습을 기획한 과정, 즉 자신들이 비행하고 폭탄을 떨어뜨리게 된 배경은 알 수 없었다. 참전용사들은 공습 날의 날씨, 분위기, 공습에 임하는 동료들의 자세는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공습 작전이 야기한 정치적 파장이나 피탄자의 심정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은 그 사건의 직접 경험자였기 "때문에" 사건을 전체적이고 다각적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들이 사후에 집대성한 지식은, 즉 후대의 지식은 참전용사들의 직접 기억보다 결코 덜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더 종합적이고 더 입체적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은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결함이 크다. 우리는 흔히 기억이 돌에 새겨진 것과 같이 굳건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새겨지기만 하면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기억은 선별적일 뿐만 아니라 가변적이다. 기억은 과거의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심리학자들, 인류학자들, 신경병리학자들은 20세기 말부터 기억에 대한 우리의 신뢰성을 꾸준히, 정말 꾸준히 허물어왔다. 기억은 신경 자극 전달부가 타오르고 단백질이 생성되는 흥분된 신경 활동의 환경 속에 머릿속에 기록되거나 통제되는데, 관련 학자들은 기억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기록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정신분석 연구와 뇌파 기록이 감각에 입력되는 정보가 결코 수동적으로 수용되지 않음을, 그러니까 모든 기억은 단순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재창조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기억이나 정신적 심상도 감흥과 연관된 신경계의 충동의 배열을 정확하게 복제하지 못한다. 기억은 언제나 입력된 정보를 '수정'한다.


한 심리학 저서에 따르면, 기억력은 사실을 포착하기 위한 함정일 뿐만 아니라, 거북한 사실을 회피하기 위한 속임 장치를 닮았다. 기억은 사건을 미화하거나 극화한다. 사람들은 참 편리하게도 '선별적으로' 망각한다. 무용담은 흔히 과장되고, 타인의 경험은 자신의 기억으로 손쉽게 흡수된다. 어려운 시절은 낭만화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글이 없는 문화권에선 선대의 기억(역사)이 구전으로 이어지는데, 이 때 기억은 매번 구술될 때마다 상당 부분 재창조되고 재해석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직접 경험자들의 '기억'을 신성시하고, 그것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면, 의도치 않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시간여행을 위한 고속도로도, 직선도로도 아니다.


사건 당사자의 기억은 제한적이고 쉽게 왜곡될 뿐만 아니라, 시대와 사고방식의 변화에 상응하여 바뀌기도 한다. 즉, 현재의 믿음이 과거에 반영되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전사자들을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순국한 영웅들로 추양 했다. 하지만 전쟁에 대한 사회의 환멸감이 커지자 "같은 사람"들은 전사자들을 쓸데없는 싸움박질의 희생양으로 기억하는 경향을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전사자들의 순국은 처음엔 애국적이고 숭고하게, 후엔 낭비적이고 부질없는 것으로, 거의 '정반대'로 기억되었다.


기억은 제한적이고, 기억은 왜곡되며, 기억은 송두리째 바뀐다. 영국의 역사학자 페르난데즈 아메스토는 역사학자들에게 기억의 원리는, 물리학자들에게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같은 것이라고 썼다. 기억이 재생되고 이용되는 '환경 자체'가 (원자가 관측되는 환경처럼) 더 많은 수준의 불확정성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활용되면 활용될 수록 더 왜곡된 과거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기억'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역사학자들은 기억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역사학자들은 따라서 '기억 이상의 자료'에 의존해야 한다. 기억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 1차 사료는 역사가들의 기본 사료로서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외에 참고할 수많은 정보와 자료들이 많다. 육하원칙에 따라 기술된 정부 문서들, 규모와 수치가 비교적 정확히 수록되어 있는 보고서들이 중요한 이유다. '탈기억적인' 고고학적 성과나 사회학적 통계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해,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기억이 아닌 여러 집단의 기억으로 재구성된 '큰 기억,' 또는 (기억이 어떻게 왜곡되고 바뀌었는지를 추적하는) 역사 기억 자체에 대한 연구가 더해지면, 기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Fernandez-Armesto, Felipe. "Epilogue: What Is History Now?" 조한욱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를 재조명하며」. 문화사학회 편집. 『굿바이 E. H. 카(What Is History Now?)』. (서울: 푸른역사, 2005), 259-283쪽.

Hobsbawm, Eric. "The Age of Extremes." 이용우 옮김. 『극단의 시대』. (서울: 까치, 1997), 555쪽.

MacMillan, Margaret. "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 권민 옮김. 『역사 사용설명서』. (서울: 공존, 2009), 68-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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