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모든 문제의 원흉인가
나는 역사학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계정답게, 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엔 이른바 "역사 밈(history meme)"이 정신없이 등장한다.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된 역사를 보며 웃기도 하고, 때론 감탄도 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밈들을 뚫고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비슷한 레퍼토리의 밈이 있다. 많게는 하루에 한 번, 적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내 시선을 강탈한다. 바로 '영국 탓하기(blaming Britain)'다. '영국이 영국했다'는 식의 밈, '모든 역사적 문제의 원흉으로 영국을 지목하면 반은 맞더라'라는, 이젠 뻔하고 지겨운 텍스트들. 역사편향과 역사왜곡까지 첨가된 저열한 밈들. 그런 식의 텍스트를 볼 때마다, 그리고 눌린 공감 수치를 볼 때마다, 우리나라 특유의 피해의식까지 보이는 것 같아 내가 다 부끄럽다.
생각난 김에, 또 비도 오는 꿀꿀한 날인 김에, 영국을 간략하게 변호해 보려고 한다. 자칭 친영파(anglophile) 변호사가 맡는 변호보다 더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 없겠지만, 연쇄살인마도 변호사가 붙는 시대정신에 힘입어, 짧고 얕은 영국 변호를 '자유'라는 관점에서 해보련다. 물론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몫이다.
♬ 자유인들의 어머니이신 희망과 영광의 땅,
당신에게서 태어난 우리,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찬양하리오?
더욱 넓고 더욱 드넓게 당신의 영역 세워지니,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
- 에드워드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 영국은 절대로 절대로 노예가 되지 않으리 ♬
- Thomas Arne, 「브리타니아여 지배하라」
나는 거룩한 신앙을 싫어하는 사람은 봤어도, '자유'를 싫어하는 사람은 내 생에 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에게든 사춘기 청소년에게든, '자유'는 가장 소중하고 자명한 가치다. 현대인들의 입과 귀는 자유를 말하고 듣는 것에 정말 익숙하다. 수많은 동서양의 고대인들도 자유와 해방이라는 가치를 신성시했다. 물론, 고대인들이 말하던 자유와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공통된 뉘앙스, 즉 '원치 않는 것으로부터의 자유함'이라는 가치는 마치 인간 본성에 내재돼 있는 것처럼 소중히 여겨져 왔다.
이젠 공기처럼 당연하고 자명한 권리가 된 '자유'에게, 특히 '개인의 자유'에게 고향이란 것이 있다면, 그 주소지는 매우 안타깝게도 '영국'이다. 영국은 "자유의 나라"다. 그리고 자유를 전도한 나라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미제스는 『자유주의(Liberalismus)』라는 책에서, "영국은 자유주의의 조국"이라고 썼다. 자유주의의 화신이었던 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에서 개인의 자유는 17세기 영국에서 시작한다고 썼다. 프랑스의 자유주의자였던 몽테스키외, 토크빌, 볼테르, 콩스탕 등은 사실 영국식 자유주의자이자 영국예찬론자(anglophile)였다. 당신이 "남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누리는 모든 자유" 다시 말해, 당신이 주일에 예배당에 가지 않을 자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 터무니없는 주장을 읊조릴 수 있는 자유, 국가의 허락 없이 거주지를 이전할 수 있는 자유를 정립하고 체계화하고 발전시키고 만국에 전도한 국가는 영국제국이다. 애석하게도 태조 왕건이나 세종대왕은 우리에게 그런 자유를 주신 바 없다. 쉽게 말해, 선진국들 사이에서 국가의 강제와 압력이 (디폴트가 아닌) 예외가 된 것은 영국제국 출범 이후의 일이다.
영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가치의 전도자요 고향이다. 따라서 나는 영국이 '제국주의'를 했다는 이유로, 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을 볼 때마다 한심해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역사적 근시에 비웃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멍청할 자유도 지구 반대편에서 온 것일 텐데.
영국제국사를 공부하면서 느낀 것, 그러니까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쓴 공문서, 의견서, 지침서, 공적 및 사적 서신, 일기를 읽고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그들이 '강한 만큼 선하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디즈레일리나 애스퀴스 총리 같은 노골적이고 이해 추구적인 제국주의자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특히 제국 전역에서 근무하던 '수출형' 제국주의자들 대다수는 정말 공의롭게 통치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영국의 자유가 수출되었다.
잘 알려져 있듯, 영국은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으로 막대한 수입을 거두었다. (영국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타국은) 비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영국이 수많은 노예들을 매매하던 18세기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21세기의 도덕적 취향에 따라, 18세기 영국인들을 너무나 편리하게 비판하지만, 당시 노예무역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은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이 여전히 짭짤하고 보편적이었을 때, 신앙과 자유의 이름으로 그것을 폐지했다. 각각 1807년과 1833년이었다.
내가 지금 영국사를 너무 낭만적으로 해석해 주는 것일까? 에릭 윌리엄스는 1944년에 『자본주의와 노예제도(Capitalism and Slavery)』라는 책에서 영국이 노예무역을 폐지할 수 있었던 것은 노예무역이 더 이상 경제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돼서 포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후대 연구에 따르면, 노예무역이 폐지되던 시점에도 여전히 노예매매와 (노예노동으로 돌아가는) 제당업으로 얻는 수익은 짭짤했다. 그리고 빈 협상(1815년)에서 다른 유럽 강대국들에게도 (수많은 외교적 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노예무역 폐지를 강요한 것도 영국이었고, 악명 높은 브라질의 노예무역을 단속하여 결과적으로 폐지하게 만든 것도 영국 해군이었다.
유대인들이 20세기 중반까지 전 세계에서 온갖 박해와 차별을 받을 때, 그보다 백 년 전에 유대인 총리(벤저민 디즈레일리)를 배출한 것도 영국이었다. 내각의 주요 정치인들 중에도 유대인들이 많았다. 영국만큼 자유를 소중히 한다고 자랑하던 프랑스가 저 악명 높은 드레퓌스 사건에 휘말렸을 때, 유대계 영국인이었던 에드윈 몬터규는 인도성 장관으로 취임해 영국령 인도제국을 통치하고 있었다. 영국은 유대인들이 가장 큰 관용과 자유를 누리던 곳이었다.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인도-파키스탄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늘 영국이 소환되어 '영국 탓'을 당한다. 영국에게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절대로 전부는 아니다. 영국이 인도에서 분할통치를 시도한 것은 맞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인도는 원래 분할된 곳이었다. 인도는 원래 지명에 불과했다. 영국이 인도에서 세력을 늘리던 시점엔 이미 종교와 언어와 인종이 다른 수백 개의 토후국들이 난립하던 상태였다. 영국은 또 하나의 (그리고 조금 멀리서 온) 세력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영국은 역사상 최초로 인도를 통일했다. 영국은 (일본처럼 패전국이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음에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인도에게 독립을 허락했다. 당시에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영국이 1830년대부터 시작한 영국식 교육의 수혜자들로, 1870년대부터 영국이 허락한 점진적인 정치적 자유 속에 통치를 학습한 '교육받은 중간계급'이었다. 영국에서 유학한 간디와 네루, 틸락 같은 자들이 그랬다. 대학교를 설립하고, 카스트나 종교와 무관하게 입학생을 받은 영국의 자유주의적 개입이 없었다면, 저들은 절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담으로, 간디는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영국에 유학을 다녀올 것을 권했다고 한다. 더욱 영국적일수록 더욱 '자유(독립)'를 염원하게 될 테니까.
역사 밈 메이커들에게, 그리고 영국 탓에 국내에선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는 「벌거벗은 세계사」 제작진들에게 미안하게도, 영국제국이 강한 만큼 선하고자 했다는 것, 또는 영국 제국주의는 단점만큼 장점도 컸다는 사실은, 실제로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사람들도 선뜻 인정한 부분이었다. 알리가르 지방의 인도인들은 인도인들의 사법적 평등을 위해 노력한 인도 총독을 어깨 위에 태우고 열렬하게 환영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였던 네루는 영국이 선한 지배를 펼쳤다는 사실에 "많은 진실이 있다."라며 선뜻 인정했다. 누구보다 (흑인종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썼다.
"여러분들은 제가 영국 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영국은 세계의 모든 선한 것들의 고향이었습니다.
저는 영국과 영국의 문화가 우리에게 준 것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때 영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겼고,
영국을 방문하는 일은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제가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나라를 방문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영국이 의회민주주의의 고향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영국은 온갖 비난을 당한다. 적어도 공과 과를 함께 저울질해야 함에도, 오직 '과'만 부각된다. 하지만 영국이 그토록 수많은 비난을 받는 이유도 사실 위에서 언급한 메커니즘과 비슷하다. 인도의 영국화가 영국에 저항하는 자유를 낳았듯, 영국의 자유주의 문화는 솔직한 토론과 비판을 낳았다. 다시 말해, 영국이 십자포화를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영국이 그만큼 자유롭기 때문이다. 비난을 관용하는 곳에선 비난이 쉬운 법이니까.
나는 영국은 이미 충분히 비난받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과오에 대한 연구는 탄탄하다. 이젠 사골을 아무리 끓여도 투명하기만 하다. 비난을 받아야 하는 자들, 충분히 비난받지 않은 자들은 그런 비난을 수용하는 영국이 아니라, 비난에 민감하고 열린 토론과 적대적인 발언들을 관용하지 않는 반자유주의적인 국가들이다. 케냐인들은 한동안 반영파가 친영파와 그 가족들까지 학살한 사건을 공적으로 말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21세기 들어서야 박물관 전시(Lari Memorial Peace Musuem)를 통해 그런 학살와 참사가 있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가나 정부는 자국민들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깊게 관여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아직까지도. 가나 골드코스트에 있는 노예무역 문화유산 공식 해석안을 보면, 백인들(영국인들)이 자행한 노예매매에 대한 설명뿐이다. 정작 노예들을 내륙에서 끌고 와 팔아치운 아프리카 노예사냥꾼들에 대한 언급은 조금도 없다. 가나는 영국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다. 욕받이가 되어야 할 대상은 (충분히 받은) 영국이 아닌 영국 뒤에 숨은 자들로, 무고한 피해자인 채 하는 가나 같은 나라들이다.
물론 그럼에도 영국은 비난을 받아야 한다. 영국제국이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으니 '영국 탓'을 할 것들이 많긴 하다. 쉽게 말해, 페르시아부터 케이프타운, 거문도부터 아일랜드까지, 정말 끼지 않은 곳이 없다 보니, 잘못도 더럽게 많이 저질렀다. 따라서 영국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사실, 영국은 늘 반성해왔다. 적지 않은 수의 영국인들이, 그것도 적지 않은 수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그래왔다. 노예무역에 대한 반성으로 영국은 역사상 최초의 노예무역 폐지국이 되었다. 영국이 인도에 파견한 첫 번째 총독은 실정으로 파면당했다. 영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자메이카 폭동을 강력하게 진압했던 자메이카 총독을 조사 위원회까지 만들어 고발했다. 세포이 반란 이후, 빅토리아 여왕은 인도의 토착 관습을 존중하지 않은 것에 사과하며, 앞으로 인도의 문화와 관습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참고로, 영국식 교육을 받은 인도인들은 오히려 이에 반발했다.) 인도 펀자브 주에서 벌어졌던 암리차르 학살의 주범은 영국 언론과 정치인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고 파면당했다. 이를 타국과 비교해 보자. 영국만큼 반성해온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정도를 제외하면 어디에도 없다. 소련이 유대인 박해, 우크라이나 대기근, 부다페스트 점령에 대해 반성하던가?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자행한 튀르키예가 반성하던가? 이란이 반성하던가? 중국이 반성하던가? 오히려 피해자인 척하면서 영국(아편전쟁)과 일본(중일전쟁)을 비난하지 않던가?
1830년대에 인도 교육의 영국화를 선도한 T. B. 매콜리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가 다스리는 수많은 인도인들과 우리 사이를 이어줄 하나의 계층을 양성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지만, 취향과 사상, 도덕, 지성에 있어서는 영국인인 사람들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인도에게 자유를 선사한 계층은 매콜리의 (그리고 후대의) 영국식 교육정책이 키워낸, '교육받은 중간계급'이었다. 그들은 혈통과 피부색은 인도인이었지만, 가치관에선 상당 부분 영국인이었다. (간디는 다소 복합적이긴 하지만.)
매콜리의 발언이 19-20세기 인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함께 자문해 보자.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과 밀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중 어떤 것에 더 친숙한가? 또는 어떤 것을 더 선호하는가? 우리는 세습 군주와 선출된 내각 중 누가 우리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믿는가? 무역의 차단(조선은 수입보다 수출에 더 큰 관세를 부과했다)과 무역의 자유화 중 어떤 것이 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신분에 따라 법 적용을 달리 받아야 한다고 믿는가, 아니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믿는가? 가치관을 국가가 강요해야 한다고 믿는가, 아니면 가치관은 개인의 신념이라고 믿는가? 만약 이 모든 질문에 후자를 선택한다면, 매콜리는 우리더러 피부색은 한국인이지만 취향과 사상과 도덕과 지성에 있어선 영국인이라고 흡족해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영국의 직접 지배를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한국인들 중 대다수가 19세기 조선의 가치관보다 19세기 영국의 가치관을 더 편하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편함'의 중심에는 영국의 최대 수출품인 '자유'가 있다. 나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에드워드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나는 밝은 마음으로, 그리고 취향과 사상, 도덕, 지성에 있어선 영국인으로서, 저 가사를 모두 인정하고 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 경외심과 함께 감사함을 느낀다.
"자유인들의 어머니이신 희망과 영광의 땅,
당신에게서 태어난 우리,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찬양하리오?
더욱 넓고 더욱 드넓게 당신의 영역 세워지니,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당신을 장대하게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다 더 장대하게 하시네!"
- 에드워드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https://youtu.be/V6c0zwVv9Tg?si=7iCNrskKJDJyFk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