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 대한 집착도 감정이다
이성(reason)은 감정이나 충동에 휘둘리지 않고, 논리와 근거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사고 능력이다. 우리는 이성을 보유함으로써 본능에 좌우되는 동물과 구별되고, 우리는 이성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열정을 통제하고 충동을 다스릴 수 있다. 이성은 그런 의미에서 '차갑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인 사람을 '덜 감정적인 사람'과 동일시하는 것도, 이성이 주는 차가움과 감성이 주는 따뜻함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제인 오스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이성과 감성(sense and sensibility)'은, 한쪽이 커지면 다른 한쪽이 작아지는, 그런 '온도의 반비례 관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분법이 그러하듯, 이성과 감성의 이분법도 지나치게 단순하다. A와 B,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A는 모든 것을 차가운 이성에 입각해 판단하려는 사람이다. A는 판단에서 감성의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며, 감성을 고려하는 판단 자체가 '판단 미스'라고 생각한다. 반면 B는 감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인정한다. 모든 사람에겐 감정의 영역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A와 B 중 누가 더 이성적인 사람인가?
난 B가 더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는 책에서 정말 합리적인 사람이란 사람의 비합리성을 이해하고 그것까지 계산에 넣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하이에크의 주장처럼, '정말 이성적인' 사람은 사람이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사람이다. '감성(sensibility),' '감정(emotion),' '감수성(sensitivity),' 정서(sentiment),' '감상(sentimenality),' '공감(empathy),' 혹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사람은 커다란 감정의 영역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감정은 인지, 판단, 동기 부여 등에 깊이 작용한다. 조너선 하이트가 실증했듯, 이성적인 사람이든 감정적인 사람이든, 감정이 이성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 데이비드 흄이 말했듯, 이성이 감정의 노예까진 아닐지라도, 칼자루는 확실히 감정이 쥐고 있다.
이성적 사고란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이성적인 사고라면, 감정적 개입의 필연성을 인정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수용하면서도, 그 영향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태도임이 분명하다. 많은 석학들이 증거하듯, 감정이 '피할 수 없는' 리스크라면, 그 리스크를 이해하고 판단에 넣고 계산하는 것이 더 이성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 반대로 현실을 외면한 채 이성에만 집착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사고이며, 오히려 감정적인 태도다. 이성에 대한 집착도 감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