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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믈리에 릴리 Apr 28. 2024

나와 집

벌써 3바퀴째다.


나는 계속 하릴없이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다.

문득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생각해 보니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머리를 한 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결혼 3년 차에 자신 있게 시댁과 합가를 했다. 

주변의 걱정과 달리 제법 괜찮게 잘 지내고 있었다. 


둘째 출산 후 산후우울증과 함께 집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인들이 일을 시작해 보라고 권했고, 다행히 재취업을 하며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셋째가 생기며 다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아이 셋을 키우기에 집은 너무나 좁았다. 

아니 셋째가 생긴 순간부터 그럭저럭 지내던 공간이 갑자기 개미굴 마냥 작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분가를 꿈꾸며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분가를 하며 집의 기준은 아이들을 고려해 안전하고 편리한 아파트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학교가 가까운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렸다.


서울살이 하면서 좋은 위치와 적당한 가격과 집 평수를 모두 만족하며 살 수는 없었다. 

외곽으로 나가지 않는 대신 집 평수를 타협해 살고 있다.


그래서 요즘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요구는 각자의 공간이다.

함께 방을 쓰는 두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투닥거린다. 

내 방을 갖고 싶다는 원망은 못 들은척할 수밖에 없다.


남편과 나도 각자의 공간을 원한다.

조용히 집중하고 싶은데 다른 가족들이 돌아다니는 거실은 마음이 영 불편하다.

남편 역시 퇴근 후에 오롯이 쉬고 싶지만 쉽지 않다.

집의 기준이 우리의 삶의 방식과 소망보다는 조건에 맞추어야 한다.


서울을 벗어나지 않는 초등학교가 가까운 아파트에서  5년을 살고

작년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이사를 하며 욕심을 냈다. 

내 침대와 내 책상을 갖게 되었다. 결혼 13년 만이었다. 


아이둘과 바닥에서 낑겨 자던 내가 안방으로 복귀했다.

다른 건 몰라도 1년 365일 선풍기를 틀고 자는 남편과 

4월까지도 솜이불을 덮는 내가 한 침대를 쓴다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나의 싱글 침대 하나가 생겼다. 


미라클모닝(파코기)을 시작할 때 아이들 방에 뽀로로 책상 펴놓고 시작했다. 

막내가 자꾸 깨서 좌식 탁자를 사서 거실로 나가게 되었다. 


이사를 준비 하며 가구점에 갔다. 

가구점 가운데 있던 가장 큰 책상은 나를 위한 것만 같았다.


물론 거실이라 열린 공간이라는 불편함이 있다.

그래도 뒹굴뒹굴 시간을 버리다가 6인용 책상에 앉으면 뭐라도 하게 된다.

그곳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꿈을 키워간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청소 늘 뒷전인지라 집안은 늘 엉망이다. 

언제든 손님이 문 열고 들어와도 민망하지 않은 집, 거실이 정돈되어있는 집이 나의 소망이다. 

하지만, 아마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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