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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낭에서 마주한 아이러니

2025 베트남 여행 #1

by 북믈리에 릴리

다낭을 선택한 건 한국사람들이 다 가는 그곳이 '얼마나 좋길래?'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한국사람이 많은 걸 피하고 싶어 선택한 무이네 여행이 습하고 더운 날씨에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았다.

이번 다낭은 날씨도 서늘하고 모든 것이 편리했다.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여행지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래서 한국사람들이 찾아오는구나, 한번 아니고 두 번 세 번 다시 오는구나 싶었다.


17년 전 베트남 종주여행을 할 때 바닷가 휴양지로 유명한 곳은 냐짱(나트랑)이었다.

나에게 냐짱은 한국의 속초 같은 느낌에 오징어랑 새우를 실컷 먹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다낭을 개발하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금호에서 비행기 직항이 생길 거라 했었다.

다낭은 냐짱을 가는 길에 지나가던 이름만 알던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냐짱(나트랑)을 모를 것이다.



다낭공항에 새벽에 도착해 숙소로 갔다.

주로 새벽 비행기로 도착해서 잠깐 쉬기 위해 0.5박 숙소를 구한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래서 우리도 저렴한 0.5박 숙소를 구했다.


숙소 앞에서 짐을 내리는 데 가방 하나가 부족했다.

아뿔싸! 둘째가 여권검사하면서 옆에 세워둔 배낭식 캐리어를 그냥 두고 온 것이다.


우선 아빠랑 둘째, 막내는 체크인을 하고 큰애랑 나는 다시 차를 타고 다낭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우리 비행기가 마지막이라 공항이 문을 닫았단다. 공항도 문을 닫던가?

어찌어찌 물어 공항 뒤편으로 가서 찾아달라 했으나 (내가 느끼기에) 엄청 화를 내며 여행사에 연락해 보라, 내일 다시오라 라는 말만 들었다. '잠깐 찾아봐 주면 좋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다시 얘기를 해봐도 냉정한 표정만 돌아왔다.


결국 다음 날 아침 이번 사건의 주범(?)이자 책임자인 둘째와 다시 공항에 갔다.

인포메이션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뭔가 말이 잘 안 통했다.

가방 사진을 보여주고, 어제 여권 검사에서 놓고 왔다고 얘기했다.

결국 옆에 있던 직원에게 물어보고 어딘가로 연락하더니 가방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찌어찌해서 여기로 가보라고 했던 그곳 역시 헤매다가 어떤 작은 사무실을 가게 됐는데 분실물센터인지 서류에 사인을 하고서 가방을 찾았다. 나는 이틀 동안 다낭공항에서 내가 그동안 공부한 베트남어를 다 써먹은 것 같다.



그렇게 시작부터 진땀 나는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0.5박 숙소는 저렴했지만 딱 가격만큼 이었다.

복도 등이 켜지지 않아 무서웠다.

안 그래도 밤중에 도착하고 가방까지 잃어버려 정신없는데 숙소마저 캄캄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가성비 좋은 숙소로 갔는데 역시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바다가 보이는 수영장까지 있었지만 바람 불고 쌀쌀한 날씨에 수영은 잠깐 즐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숙소는 여행 경비의 가장 많은 금액을 쏟는 최상급 리조트였다.

웰컴 마카롱을 주는 것에 아이들은 감탄했고 우리 집보다 넓다는 말에 나는 괜히 마음이 아팠다.


다낭 날씨가 변덕이 심하다 해서 바다에서 못 놀 것을 대비해 선택한 숙소였다.

실내 워터파크도 즐기며 '아, 정말 돈이 좋구나.' 싶었다.

아이들도 3개의 숙소를 거치며 돈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꼈을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숙소, 식당, 시장 어디에서도 한국인과의 만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번 여행을 오며 우리 집 남자 4명의 가장 큰 목표와 소원은 랍스터 먹기였다.

역시나 입소문 자자한 해산물 식당이 있었다.

한국인 없는 곳에 가서 외국느낌을 느끼고 싶지만 먹는 것이 여행의 성공여부를 좌지우지하기에

모험을 할 수 없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역시나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가족 단위의 손님뿐만 아니라 단체 회식까지 하고 있고 주문도 한국어로 가능했다.

외국에 와서 색다른 분위기와 문화를 느끼고 싶었는데, 이미 검증된 곳을 굳이 피할 수도 없었다.

이 마음의 아이러니를 어찌해야 할지.


결국 우리는 다낭을 떠나기 전 그 식당을 한번 더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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