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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y 19. 2024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뉴올리언스의 해 뜨는 집


"There is a house in New Orleance, They call the rising sun~"

앞을 알 수가 없고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방황했던 시절, 어린 학생이 청승맞게 따라 부르던 애니멀스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이 노래가 미국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다 보니 작곡자를 알 수 없고 가사 또한 여러 버전이 있단다.

'해 뜨는 집'이 사창가를 돌려 표현했다는 말이 있고, 뉴올리언스에서 술 먹고 엄마를 상습 폭행하는 노름꾼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간 여죄수가 불렀던 노래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그 노래 멜로디는 늘 내 가슴에 살아있다.

그런데 이게 꿈인가 생시냐, 노래를 들으며 상상만 했던 뉴올리언스에 진짜로 왔다.

이 또한 배를 타니 얻을 수 있는 선물이리니...

그런데 뉴올리언스가 아니더라도 해가 떠오르는 집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건데, 노래 하나 잘 만들어서 세계인의 가슴을 적셨다.


맥주를 몇 잔 마시고 배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일어섰다.

이제 출항하면 어디로 가지?

아~ 이번 항차 마지막 항구인 카리브해의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야지.

어두컴컴한 길에서 조명이 환하게 비치는 수버니어 샵이 보이는 길로 나왔다.

아까 리 장군 닮은 그 영감이 반색하며 '하이, 노 행님! 너 나 웃겨쓰.'라고 말한다.

무슨 말이 나오나 웃으며 쳐다보니 우리 배 선원이 왔다가 행님 뜻을 알려줬단다.

누가 그러더냐고 물으니 '칩 오피서 오브 유어 쉽 새드 행님 민스 올더 브라더. 히즈 네임 이즈 아부지. 하하하'라고 남부 사투리로 말한다.

일항사는 한술 더 떴네, 자기가 아버지라고...

"오케이, 제너럴 리. 아임 고너 도미니칸 리퍼블릭. 나이스 투 해브 메츄. 굿 럭 투 유!"

"미스터 노 행님, 본 보이지."

잠시 동생이었던 영감님과 항구의 이별을 나누고 뚜벅뚜벅 배로 돌아간다.

헤어짐은 또 새로운 만남이 있기에 마도로스는 섭섭 시원하게 출항 모드로 간다.

그렇게 희미한 밤의 어둠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미국의 마거릿 미첼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한 편만 쓴 작가는 세계 문학사에 한 획을 긋고 이름을 널리 남겼다.

미첼은 결혼 후 사고로 부상에서 회복하는 중에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가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아일랜드계 할머니의 남북전쟁과 재건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아일랜드는 800여 년간 영국 본토의 지배를 받으며, 한일합방 때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36년간 받았던 핍박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고난의 역사였다.

지적이고 강인한 그녀의 어머니는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싸우던 운동가였다.

소설은 몇 년 동안 썼으나 매기는 출판할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출판사의 편집자가 신인 작가를 찾던 중 전직 여기자가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

편집자는 방대한 원고를 재미있어서 하루 만에 읽고,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감하고 바로 출판 계약을 했단다.

그녀는 출판에 동의한 후 역사를 참고, 확인하며 6개월 동안이나 첫 부분을 고쳐 썼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을 먼저 교정하고 소설을 전개했다고 알려졌다.

작가는 책의 제목을 가칭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이라는 마지막 대사로 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조언 중 어네스트 다우슨의 시 한 대목인 'GONE WITH THE WINDS'로 바꿨다고 한다.

그녀가 소설을 쓰고 10년 만에 책이 나오게 됐다.

책 한 권 만드는데도 작가의 인고와 여러 전문가의 조력으로 대작이 나오는가 보다.


소설은 뉴올리언스에서 북동쪽으로 500여 km 떨어진 애틀란타를 배경으로 남북전쟁 전후에 여주인공 스칼렛의 성장 소설이다.

부유한 농장주의 버릇없던 딸이었던 그녀는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남부에서 사랑과 먹고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했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다.

특유의 매력과 예쁜 얼굴로 남자들의 관심과 인기를 끌던 그녀가 사랑한 애슐리는 자기 사촌 멜라니와 약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스칼렛은 뒤늦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했다.

스칼렛은 애슐리와 멜라니에 대한 질투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멜라니의 오빠인 찰스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던 중 남북전쟁이 터져 애슐리와 찰스는 입대하고, 찰스는 홍역 합병증인 폐렴으로 죽어 스칼렛은 졸지에 애 딸린 미망인이 된다.

남부는 갈수록 피폐해지고 밀어닥친 북군이 애틀랜타를 불바다로 만들어버린다.

스칼렛은 레트 버틀러의 도움으로 갓 출산한 딸을 데리고 고향인 타라 농장으로 피신한다.

농장에 돌아왔으나 집만 불타지 않았지, 입에 풀칠할 게 없었다.

조금 남은 재산마저 북군에게 약탈당하는 등 장녀인 스칼렛은 남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온갖 고생을 한다.

결국 전쟁은 남부의 패배로 끝나고 전쟁터에 나갔던 이들도 돌아온다.

스칼렛은 전쟁이 끝났으니, 모든 고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북군에 의한 군정이 시작되었다.

노예제가 폐지되고 남부의 농장주들은 과거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잃는다.

가난한 스칼렛은 살기 위해 레트 버틀러의 청혼을 받아들여 재혼한다.

기가 센 스칼렛의 결혼 생활은 점차 금이 가다가 그들의 첫딸이 낙마해 죽으며 파국에 이른다.  

스칼렛에게 정이 떨어진 레트 버틀러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스칼렛은 절망에 빠지지만,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라는 유명한 대사로 막이 내린다.

북부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바람과 함께 사라진 남부의 전근대적 귀족주의와 북부의 근대적 합리주의와 평등주의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출판한 해에만 100만 부 이상이 팔렸고, 지금까지 전설적인 판매 부수를 올리고 있단다.

그리고 퓰리쳐 상을 받았다.

지금도 미국인이 성경 다음으로 사랑하는 책으로 꼽힌다.

원작자 미첼은 이 소설 이후로 쓴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워낙 긴 소설을 쓰고 번아웃으로 절필했나 보다.

소설이 대박 터트린 데는 영화도 큰 몫을 했다.

영화까지 성공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리게 된 그녀는 인세 수입만 관리했단다.

책 출간 후 13년 만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그 많은 돈 다 써보지도 못 하고 애석하게 돌아가시게 된다.

애고, 아까워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존이다.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격변과 재앙에서 살아남는 사람과 사라지는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작가는 살아남은 자에게는 'GUMPTION, 적극성'이 강했다고 다.

그래서 그녀는 적극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글을 썼다고 말했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중 최고의 하나로 꼽히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

주인공 레트 버틀러 역의 클라크 게이블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수억 명의 여성 관객 가슴에 남았다.

스칼렛 오하라를 연기한 비비언 리 또한 10억 명 이상의 관객 머릿속에 영원한 스칼렛으로 남아있다.

이기적인 아름다움과 연기로도 인정받는 실력파 배우이시다.

내 청춘을 지배해 온 책받침 연인 중 한 분이시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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