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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y 20. 2024

적극적인 도미니칸 미녀

중미의 정신 나간 전쟁



카리브해의 쿠바 동쪽에 있는 섬의 왼쪽은 아이티, 오른쪽은 도미니카 공화국이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그 섬에 살던 원주민 오십여만 명은 스페인의 학살과 그들이 옮긴 전염병으로 다 죽었다.

도미니카와 아이티희한하게 같은 섬인데도 언어, 종교, 문화 심지어 인종도 전부 다 다르다.

카리브해 남동쪽에 있는 도미니카 연방과는 별개의 나라이다.

남한의 반 정도 크기의 나라로 카리브해의 명성에 걸맞게 아름답고 약간 더운 섬나라이다.

수도인 산토도밍고에는 오른쪽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산후안과 함께 카리브해 지역에서 두 나라만 지하철이 다닌다.

홈런 타자로 유명했던 새미 소사의 모국이기도 하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가난한 아이들은 인생 역전을 위해 야구에 죽고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하고 미국 프로 야구 메이저리그에 현역으로 뛰는 선수들이 백 명이 넘는단다.


카리브제도를 서인도제도라고 부르는데 아메리카에 살던 이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던 대항해시대 콜럼버스의 영향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인도는 동인도라고 했다.

그곳이 해적으로 유명했던 이유는 지리적으로 작은 섬들이 무척 많고, 기후가 좋아서 섬에 숨어 지내며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은 아메리카 대서양 연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항로의 주요 거점이라 선박 통행량이 많다.

설탕과 커피 등의 주요 생산지여서 돈이 돌아 해적질하기 좋은 곳이었다.

북미 및 유럽 지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휴양 관광지가 많고 기후도 온화해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


어느 한 여름 낮, 'HAPPY LATIN' 호는 자동차와 중장비를 싣고 도미니카 공화국 북쪽그림 같은 뿌에르또 쁠라따 항에 입항하였다.

아무 데나 사진 찍으면 다 달력이 되는 멋진 해변이다.

입항 수속을 마치고 자동차 몇백 대 푸는 거야 몇 시간이면 족하니 당직이 아닌 선원들은 짬을 내어 시내 관광을 나갔다.

멋진 이국의 경치에 넋을 잃고 또 아름다운 현지 아가씨들의 늘씬한 자태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미인 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한 아름다운 현지 아가씨 서너 명이 지나가다가 동양인이 신기한 듯 쳐다보면서 우리 일행에게 말을 건다.

"하뽄? 치나?"

얘들은 가방끈이 짧아 아시아가 일본과 중국밖에 없는 줄 아는 모양이지.

‘Oh, No! You know Korea?’라고 물어보니 고개를 갸웃하고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까르르댄다.

젠장, 이 아가씨들은 영어를 못 하지 우리 일행 중에 스페인어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난감하다.

어떻게 해 보긴 해야겠고, 궁 즉 통이라 했거늘 앞에 서점 비슷한 가게가 보인다.

‘Wait a moment!’하고는 부리나케 서점으로 뛰어가서 작은 영서 사전을 한 권 사 왔다.

사전에서 ‘코리아’를 찾으니 서반아어로 ‘Corea’라고 나와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보여주었다.

그때서야 ‘오, 꼬레아!’라고 호들갑을 떨며 고개를 끄떡인다.

라틴계는 제스처도 크고 몸놀림도 화려하네.

지나가는 현지인들도 예쁜 아가씨들과 손짓발짓하며 대화하는 동양인들이 재미있는지 엄지 척하고 웃으며 지나간다.

이십 대의 아가씨들은 교사, 간호사라는데 휴일이라 쇼핑 겸 놀러 나왔다 한다.

그럼, 뭐 같이 놀면 되지.

그래서 이국의 멋진 아가씨들과 우리 일행이 어울려 노천카페에서 맥주도 마시고, 클럽에서 못 추는 춤까지 추며 잠시나마 신나게 놀았다.

그렇게 우리 선원들과 아가씨들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역할 차를 다 풀어준 후 나머지는 남쪽의 산토도밍고에서 하역하기 위해 출항해야만 했다.

뱃고동 길게 울리며 뿌에르또 쁠라따 항을 서서히 벗어나는데 출항 수속 나온 대리점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그냥 손만 흔들고 있고, 이 예쁜 갈색 아가씨들은 부모라도 돌아가신 것 같이 울고불고 난리다.


15시간의 짧은 항해 후 이윽고 배는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아쉽게 별했던 그 아가씨들이 출근도 하지 않고 멋진 대한의 마도로스들을 한 번 더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과연 중남미 사람이 정열적이라고 소문날 만하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쓴 작가의 말로 난세에 살아남는 적극적인 유형이라는 말이지.

부두에서 손을 흔들며 애타게 부르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선원들은 배 붙이고, 얼마 남지 않은 자동차를 풀어주기에 모두 바쁘다.

할 수 없이 나 혼자 나가서 아가씨들을 접대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그렇게 영원히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름다운 카리브해를 뒤로 한 채 육중한 화물선은 빈 배로, 러시아로 갈 곡물을 실으러 미국 배턴루지 항을 향해 기적을 울리며 떠났다.


도미니카 공화국은 아이티에 20여 년간 지배를 받아서 국민감정이 별로 좋지 않다.

어디나 이웃 나라끼리 사이좋은 경우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빈부격차와 치안 문제로 엉망이지만, 생지옥에 가까운 아이티와 비교하면 도미니카가 훨씬 낫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아이티의 국경선을 침범한 지도 우표가 발행됐다.

아이티에서는 우표를 당장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무시하여 결국 아이티에서 선전 포고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우표를 없애거나 새로 만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을 마냥 전쟁했다.

중남미의 형님인 미국이 '애들도 아니고 왜 사소한 일로 싸우냐?'며 말려 30여 년간의 무익한 전쟁이 끝났다.

그냥 우표 핑계 대고 사이 나쁜 이웃끼리 자존심 싸움한 셈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이웃사촌이라고, 2010년 아이티 지진 때는 인도적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 도움을 많이 주었다고 한다.


라틴에서 축구는 최고의 즐기는 꺼리라 경기하다가 열받아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낸 정신 나간 전쟁도 벌어졌다.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전쟁한 적이 있다.

땅이 좁은 엘살바도르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땅이 널널한 온두라스로 넘어가 무단 경작을 하면서 충돌이 잦았다.

온두라스는 토지개혁법을 만들어 무단 월경한 엘살바도르인들을 추방하였다.

이렇게 가뜩이나 감정이 안 좋았는데 두 나라 간의 월드컵 예선전이 벌어지자, 관중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급기야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에 쳐들어 가면서 전쟁이 다.

경제, 국경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곪아왔던 두 나라 간의 적개심이 축구를 계기로 폭발한 셈이다.

이 꼴을 보다 못한 미국이 또 개입하여 백여 시간 만에 이 한심한 전쟁은 일단 막을 내렸으나 최종 평화협정까지는 십 년이 더 걸렸다고 한다.

나흘간의 전쟁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였고 국경지대에 정착하였던 엘살바도르 농민 수십만 명은 쫓겨나 도시 빈민이 되어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전쟁 후 두 나라의 경제와 정치 상황은 개판이 되어 백성들은 오랫동안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먹고사는 것이 고단한 일이 되었다.

그래도 라틴계답게 배가 고파천성이 착한지 길 가는 이방인과 눈이 마주치면 늘 미소로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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