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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un 16. 2024

한국전쟁 고아 아일라와 터키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 쿠르드족


'HAPPY LATIN' 호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에게해에서 흑해를 잇는 터키의 이스탄불 항에 닻을 내렸다.

파일럿이 승선하는 동안 잠시 대기 중에 대리점이 가지고 온 본사 서류와 선원들 편지를 받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한다.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다리 역을 하는 나라로 신앙의 자유가 있지만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다.

대한민국을 외국에서 'KOREA, CORE'라 부르듯 터키는 '튀르크'가 본 이름이다.

여러 나라에서 터키라고 부르는데 터키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터키인들도 영어로 Turkey가 칠면조이고 겁쟁이라는 뜻이 있기에 용맹스러운 터키 용사의 유래가 된 튀르크의 '용감하다'라는 뜻과 상반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에 대한 맹세'와 미국의 '충성 맹세'처럼 터키에도 비슷한 게 있다고 한다.

학생들 조회 시간에 '조국과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내가 튀르크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라고 합창하며 자긍심을 키웠다고 한다.

유럽, 중동에서 상당한 인구 대국으로 땅도 넓어 8천만 국민의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러시아의 우랄산맥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나누는 지리적인 경계선이다.

해협이라지만 폭이 좁아 강처럼 보인다.

이스탄불은 동서양의 바닷길과 육로가 맞물리는 요충지였기에 고대부터 중요한 도시였다.

우리가 잘 모르는데 서기 330년부터 로마 제국의 수도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 즉 이스탄불로 옮겼고, 지배하는 나라가 바뀌어도 지금까지 수도로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흑해 안 주변국은 이 해협을 통해야만 지중해로 나갈 수 있기에 오랫동안 터키와 티격태격했다.

터키로서는 국운을 걸고 반드시 지켜야 할 해협이었고, 2차 대전 내내 중립국이었던 터키가 미국 편에 선 이유도 소련의 협박에 굴복할 수 없어서였다.

지금 터키는 민간 선박의 통행은 자유롭게 허용하고, 대신 군함은 국적 불문하고 순양함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해협을 잇는 다리는 보스포루스 제1대교와 두 번째 다리가 시내에 있으며 해협 북쪽에는 현대건설이 만든 제3대교가 있다.

남쪽엔 SK건설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해저터널을 만들었다.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연합군이 한 나라를 도운 6.25 전쟁 참전국이며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터키.

한국전쟁에서 터키의 용맹함과 활약은 대단했다고 한다.

전쟁 당시 터키여단을 지휘했던 야즈즈 육군 준장이 한국전쟁 영웅으로 뽑히기도 했다.

야즈즈 준장은 터키 육사를 나와 제1차 세계대전, 터키 독립전쟁에서 활약하고 6·25 전쟁에 참전하였다.

터키여단은 한반도 도처에서 전투하며 격전을 치렀다.

그리고 수리산 고지 전투에서도 큰 역할을 하여 유엔군의 한강 진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었다.

6.25 전쟁에 파병한 16개국 중의 3번째로 많은 만 오천여 명의 전투병을 파병, 구백여 명이 전사, 실종됐고 이천여 명이 부상했다.

그중 462명이 부산 유엔 기념 공원에 묻혀 있다.

터키 여단은 전쟁이 끝나고 1960년까지 한국에 주둔해 전쟁 복구를 도왔다.

자유를 위해 우리나라를 지켜준 이들의 목숨 건 희생에 고저 목이 메고 엎드려 감사드린다.


터키에서 만든 한국전쟁 영화 '아일라'가 있다.

터키 군인이 전쟁고아인 얼굴이 달처럼 동그란 아일라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하며 감동을 주는 실화이다.

터키어로 아일라는 달이란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가 있지? 나라면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터키에서 5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아 형제의 나라 한국과 함께 화제가 됐다.


밀레니엄 시대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터키탕이라면 음란 퇴폐업소 중 하나였다.

이 명칭은 일본에서 도루꼬탕이라고 하여 전혀 엉뚱한 이름인데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그렇게 바뀌었다.

당시 터키 대사관에서 우리나라 외교부에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터키에서 음란 퇴폐업소를 코리아 하우스라고 부르면 기분 좋으시겠소?"

그래서 터키탕이 증기탕, 스포츠 마사지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당시 국내 언론에서도 6.25 때 참전하여 목숨 걸고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를 모욕하는 명칭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 쿠르드족은 기원전부터 이 지역의 산악 지대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

현재 인구는 삼천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 중 약 천오백만 명이 터키에 거주하고 있다.

수천만 명의 단일민족이 고유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데도 나라 없이 중동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어 '세계 최대의 유랑 민족'이라고 불린다.

국가가 없는 거대 민족이라 쿠르드족은 여러 번 미국과 영국 등 강대국에 이용당한 후 버려지거나 배신당했다.

쿠르드족 대다수는 해당 정부의 차별 정책과 탄압에 맞서 민병대를 조직하여 독립하기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

쿠르드계는 다른 중동과 달리 남녀가 평등하거나 여성의 지위가 높은 편이며 이들의 사회 참여도 활발하여 많은 여성이 참전해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저승사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단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중에 여자에게 총 맞아 죽으면 재수 옴 붙어 지옥으로 직행한다고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쿠르드 여군이 저격수로 활약하면서 IS의 전의를 꺾는 데 큰 몫을 했다고 한다.


이스탄불 출항 전문을 본사와 러시아 대리점에 보내니 노보로시스크 대리점에서 회신이 왔다.

외항 도착 후 지정된 이스턴 앵커리지에 닻을 내리고 기다리라는 내용이다.

에게해 바닷물이 흑해로 들어가 되돌아 나오는 데 수천 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은 이런 자연의 순환에 비하면 조족지혈로 얼마나 가소로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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