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운엽 Jun 19. 2024

기적 같은 고래 가족 구하기

소련 해체와 냉전 종식


곡물 부두에서 하역을 마친 파나마 적의 벌크 캐리어 한 척이 출항하고 'HAPPY LATIN' 호가 그 자리에 접안했다.

접안하니 대리점 직원과 서베이어, 인부들이 몰려왔다.

우리는 한 달 가까이 땅을 밟아보지 못해 상륙을 신청했다.

안기부에 써낼 감상문이야 손으로 눈 가리고 하늘과 땅만 쳐다보고 아웅 했다고 쓰면 될 것을...


대리점이 부른 시멘스 클럽 미니버스가 배 옆에 도착했다.

상륙 나갈 선원들이 모처럼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풍 가는 아이처럼 표정 관리를 못 하고 방긋방긋 웃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역시 어쩌다 맡는 육상 공기는 짠 바다 내음과는 달리 여인의 품 같이 포근하고 향기롭다.

사람은 땅을 밟고 흙과 풀냄새를 맡으며 살아야 하거늘...


시멘스 클럽은 곡물 부두에서 멀지 않은 광석 전용 부두 부근에 있다.

보통 국제전화로 가족에 전화하고 우표를 사서 편지를 보낸다. 

한쪽에서는 포켓볼을 치며 간단한 술, 음료와 음식을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USS로 약칭되는 United Seamen's Service는 미합중국 연방의 비영리 기관으로 바다에서 고생하는 선원과 해군 그리고 관련 종사자들의 복지를 위해 운영한다.

부산 감만동 8부두에도 있는데 미국 본토 맛의 텐더로인 스테이크, T-bone 스테이크 등과 샐러드를 25불 정도에 먹을 수 있다.

또 감천항에는 개인 기업이 운영하는 시멘스 센터가 있어 휴게실과 샤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외국 선원에게 차나 음료, 다과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외국인이 출입하는 선원 클럽 주변에는 당연히 수상한 부나비도 날아다닌다.

그러나 공산국가에서 상륙 나가는 것도 눈치 보는 대한 마도로스 형편에 소련 미녀들과 눈 맞추는 것은 새가슴에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냉전의 피해자는 인민뿐만 아니라 우리 선원도 포함된다고 봐야 하나.

그런 와중에 용감한 젊은이는 과감히 대시하기도 다.

지나고 나니 그들이 대책 없이 무모했던 건 사실이나, 국위 선양하며 잘 살았다고 칭찬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국가 부도 사태에 교사든 간호사든 투잡 뛰며 묵고살려는데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질 것이며 젊은 그녀들이 하루 공치면 배고픈 식구들은 누가 먹여 살리냐 말이지.

그렇다고 공산당 당국에서 젊고 이쁘다고 고기나 감자를 더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1989년 아빠 부시와 고르바초프의 미소 정상 회담 후 '냉전이 끝났다.'라고 선언하였다.

미국은 소련에 대한 봉쇄를 멈추겠다고 했고 소련은 핵무기 감축에 동의하였다.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개혁과 개방을 계속하며 동유럽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밝혔고, 소련 내에서도 공산당 이외의 정당을 허용하고 민주 선거를 약속하였다.

이어 헝가리를 시작으로 동유럽 모든 국가에서 민중들이 들고일어났다.

공산당 정권은 힘을 잃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독이 서독에 흡수 통일되었다.

1991년에는 소련이 러시아를 비롯한 14개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을 결성하고 고르비 서기장은 계급장을 떼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에게 핵무기 키를 넘겨주었다.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 공산당이 70여 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정권의 약화 내지는 해체는 북한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걸고 빗장을 더 단단히 잠갔지만, 경제가 더 악화하여 굶어 죽는 동무들이 너무 많이 생겨 탈북 러시가 일어났다.

죄 없는 백성들이 먹을 게 없어 속절없이 굶어 죽고 탈출하는 그게 무슨 국가란 말이냐?

세계 최빈국 중 한 나라인 캄보디아에도 먹고살기 힘들어 탈출하는 국민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욕심쟁이 혹부리 영감처럼 혼자 잘 쳐드셔 보물이 담긴 혹을 달고 다녔던 김일성과 대비되게 고르바초프는 이마에 만주와 한반도 지도 같은 반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가까이 다가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한 소련 지도자가 되었다.

한국 외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피자헛 광고에도 출연해서 살림에 보태 썼다.

서방 세계에선 냉전 종결자, 평화의 사도 등 대단히 좋게 평가하여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는 수많은 사람에게 공포를 주던 냉전을 종식하고, 동유럽 인민들에게 자유를 주었으며, 체르노빌 사고 때 철의 장막을 걷고 세계 만천하에 공개하여 인류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대다수 구소련 인민은 그를 막강 소련을 붕괴시킨 매국노라 하여 사람 취급을 안 했다고 한다.

한참 똘마니였던 옐친에 푸대접받는 것은 물론, KGB 출신 애송이 푸틴에게까지 홀대를 받아 연금으로 먹고사는 것도 버거울 정도였다고 한다.




1988년 냉전이 한창이던 때 알래스카의 한 작은 마을에 고래 가족이 얼음에 갇히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이것을 본 한 기자가 고래 가족의 상황을 알렸다.

방송을 본 많은 사람이 구조를 위해 움직였다.

영화 'Big Miracle'은 두꺼운 빙벽에 갇혀 작은 구멍으로 숨만 쉬던 고래 가족을 구출하는 실화를 담았다.

당시 미국 연방 정부는 적극적으로 구조를 지원했고 지역 주민과 주 방위군, 석유 회사와 그린피스, 에스키모인들이 힘을 모았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북극보다 차가웠던 냉전 시대에 소련이 쇄빙선을 몰고 와 거대한 빙하를 부수고 고래 가족을 구출하는 일에 힘을 보탰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소련의 연합 구출 작전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고 스무 개가 넘는 나라에 생중계되었다고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대립하던 미국과 소련, 동물 보호와 개발 문제로 싸우던 석유 회사와 그린피스, 그리고 고래를 잡아 생존하는 에스키모인들이 서로 협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빅 미라클'은 관객들에게 휴머니즘과 큰 감동을 주었다.


그때 넌 안 돕고 뭐 하고 있었니?

아~ 국제 마도로스로 배 타고 태평양과 대서양 온천지를 갈고 다니며 항구의 배고픈 여인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빴지.

작가의 이전글 그림의 떡 러시아 여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