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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un 23. 2024

사막의 라이언

선박 만재흘수선


검푸른 흑해를 되돌아 나오는 'HAPPY LATIN' 호는 짐을 다 풀어 수면 위로 높이 떠서 슬프게도 속치마까지 다 보인다.

화물을 가득 실었을 때 물속에 가라앉는 만재흘수선 아래는 보통 빨간색으로 칠한다.

그러니까 해피 라틴 호에 짐이 가득 실리면 빨간 빤쓰가 보이지 않는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어디가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무중항해에 서로 충돌을 예방하기 위해 사방에서 뱃고동이 울린다.

배 떠난 노보로시스크 항에서 라리사라는 소비에트 아가씨가 실제 있었던 건지 지금 꿈속에서 헤매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배를 오래 타다 보면 가끔 현실과 상상이 뒤죽박죽되어 어제가 오늘인지 저녁이 새벽인지 헷갈린다.


예전에 큰 저울이 없던 때 코끼리의 무게를 재려면 코끼리를 빈 배에 실어 배가 가라앉은 깊이만큼 돌을 실어 돌 무게를 재 코끼리의 무게를 확인했다고 한다.

배에 실은 화물은 배가 물속에 잠긴 깊이를 재 무게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배의 선수와 선미, 그리고 중앙에 배의 가라앉는 깊이를 알 수 있게 숫자를 표시한 것이 흘수(draft)이다.

이 숫자를 보고 화물의 무게를 계산할 수 있다.


배에 짐을 최대로 실은 상태에서 물에 잠기는 깊이를 '만재흘수'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선 중 하나인 현대상선의 'HMM 알헤시라스'호는 컨테이너 이만 사천여 개를 한꺼번에 싣고 운반할 수 있으며 400m 길이에 축구장 4배 크기로 선박 길이가 아파트 133층 높이에 해당한다.

이 배의 만재흘수는 약 17m로, 20ft짜리 컨테이너 이만 사천 개를 실었을 때, 물속 17m까지 잠긴다는 뜻이다.

현재 부산 신항의 항로 수심은 16m밖에 안 돼 컨테이너 일부를 내려 입출항하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서 준설이 시급하다고 한다.


짐 실으러 온 리비아의 브레가 항구는 사막에 덩그러니 원유 저장 탱크와 가스 타는 불기둥 그리고 화학비료 공장만 보이고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젠장, 나가봐야 온천지에 사막밖에 없겠네.

사막의 어원은 라틴어로 '버려진 땅'을 뜻한다.

평균 기온이 섭씨 영상 10도 이상이고, 의외로 비는 꾸준하게 오지만 1년 강수량은 아주 적다.

내륙 사막은 밤에 영하로 떨어지는 곳이 많다.

그래서 에스키모인에게 냉장고를 팔듯이 중동 사람에게 난로를 파는 영업력이 영업사원 기본교육 중 하나라고 한다.


사막은 사람이 살기엔 굉장히 열악한 환경이고 지구 땅의 1/10 이상을 차지하며 점점 커지고 있다.

이를 사막화 현상이라고 한다.

강수량을 기준으로 하면 남극과 북극도 사막이다.

남극에는 200만 년 동안 단 한 번도 비나 눈이 오지 않은 지역인 드라이밸리라는 곳이 있다.

눈이 많이 쌓여있어 강설량이 많을 것으로 착각하는데, 그건 수백만 년간 눈과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은 남극, 북극이고 그다음이 사하라 사막이다.


사막은 워낙 건조하고 일교차가 커 동물이나 식물이 살기 험하지만,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

사막 동물 중 대표적인 게 낙타이고 라이언, 여우, 늑대, 코뿔소, 코끼리, 기린, 원숭이, 타조, 쥐, 뱀 등 이루 다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산다.

곤충으로는 딱정벌레나 풍뎅이 등이 있으며 독이 있는 전갈은 널려있다.

사막 식물로는 선인장부터, 땅속 깊은 곳의 물을 찾아 줄기의 수십 배 이상의 뿌리를 뻗는 나무나 비가 내렸을 때 매우 빠르게 피고 지는 특이한 식물도 있다.

이외에도 인간에게 유용한 대추야자나 관목류, 허브 등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막에서 의외로 식물이 잘 자란다.

병충해가 없고, 사막에는 식물에 필요한 무기물이 많아 비옥한 땅인데 물만 있으면 잘 큰다.

그 때문에 사막 농사는 관개시설이 아주 중요하다.


원래 바다였던 곳이나 소금 호수였던 곳에서 사막이 형성되면 소금 사막이 된다.

엄청난 소금 농도 때문에 일부 미생물 말고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 대표적이다.

사막에 있는 물웅덩이를 오아시스라 한다.

사막 기후에서는 빗물이 고여 웅덩이가 될 수 없기에, 대부분의 오아시스는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가 지층과 만나는 곳에 형성된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이 주는 청량감과는 달리, 실제 사막의 오아시스에는 여러 미생물과 기생충이 있어 마시려면 정수하거나 끓여 먹어야 한다.

오아시스 근처에는 대추야자가 있으니, 물이 부족하면 차라리 이걸 따먹는 게 낫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유목민인데 살아남기 위해 전투 성향이 강하고 상인 기질도 많았다.

실크로드를 비롯해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일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도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 '사막의 라이언'은 20세기 초에 일어났던 이탈리아와 리비아의 20년 전쟁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등장인물도 실명 그대로 나온다.
'사막의 라이언'을 연출한 무스타파는 시리아 출신의 미국인 감독으로 이슬람권에 대한 서구의 오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예언자 마호메트'에서 앤서니 퀸과 인연을 맺고, 두 번째 작품이 '사막의 라이언'이었다.
두 영화 모두 할리우드에서 제작하였는데 주변에서 많은 방해를 받아 그는 더 영화 연출을 하지 않고 제작만 하다가 요르단 암만에서 이슬람 폭탄 테러에 딸과 함께 사망했다.

당시 끊임없이 일어났던 강대국의 제국주의 전쟁은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은 이집트를, 스페인은 모로코를, 프랑스는 튀니지를 점령했다.
당시 리비아는 오스만제국의 식민지였다.
이탈리아는 터키의 발칸 전쟁 개입을 계기로 오스만제국에 선전포고한 뒤 함대를 리비아의 해안 도시 트리폴리에 보냈다.
당시 이탈리아 함대 사령관은 리비아에 주둔하고 있는 오스만 제국 군대의 항복을 요구했다.
터키군은 트리폴리에서 퇴각했지만 항복하지 않아 이탈리아 함대는 사흘간 함포사격을 해 트리폴리를 초토화했다.
리비아가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십여 년 동안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이탈리아는 리비아를 과거 로마의 영광을 재현할 성지로 생각했고 새로운 지휘관으로 에티오피아 전선에서 명성을 쌓은 장군을 보낸다.


베드윈족의 지도자 무크타르는 전직 코란 교사로 적을 물리치는 것만이 평화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코란의 가르침대로 지휘한 탁월한 전술가이다.
이탈리아군에 의한 무자비한 양민 학살이 계속되지만, 무크타르는 사막전에서 뛰어난 게릴라 전술로 현대 무기로 무장한 이탈리아군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탈리아군은 리비아 사막에 강제수용소를 만들어 베드윈족 12만 명을 수용하고 사막을 무단 통행하는 아랍인들을 죽였다.
결국 '리비아의 태양'이라 불렸던 무크타르는 이탈리아군에게 다친 채 생포되었는데, 70세를 넘긴 무크타르에 족쇄를 채워 수용소 앞에 전시했다.
그들은 늙은 아랍 지도자를 재판했지만, 도리어 '누가 누구를 재판하는 거냐?'라고 반문했다.
20여 년을 끌어오던 전쟁은 그의 교수형과 함께 사실상 끝났다.
리비아의 10디나르 화폐에 그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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