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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04. 2024

자유스러운 영혼


‘HAPPY NINA’ 호는 아주 오래전부터 수많은 배의 주요 항로 중의 하나로서 도도히 그리고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 인도양 바다를 거침없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멀리 돌고래 떼들이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고 날치 떼가 수면 위를 날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날치는 포식자로부터 도망가기 쉽게 물 위를 활공하는데 수십m까지 나는 놈도 있다. 어쩌다 배 위에까지 날아 올라오면 보는 대로 다시 바다에 돌려보낸다. 날치는 맛이 좋다고 소문났다.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에서 산티아고 노인이 만새기를 잡아 배를 가르니 아직 소화되지 않은 날치가 있어 맛있게 먹은 걸로 묘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보다 날치알을 많이 먹는다.


선주로부터 경제속력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고 13노트로 유유히 항해하고 있었는데 하역 항구가 아직도 수배가 안 되었는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수에즈 운하와 아프리카 희망봉 방향의 갈림길인 스리랑카 남쪽 공해상에서 대기하라는 전문이 왔다. 엔진을 끄고 본사에 드리프팅하는 위치를 타전한 후에 낚시를 챙겨서 선미로 나갔다. 낚시를 던져 보니 물살이 세서 고기 잡을 엄두가 안 났다. 이를 본 갑판부원들이 물살이 세면 큰 고기가 있다고 낚싯줄이 아닌 로프를 이용해 즉석에서 낚시를 만들었다. 기관실에서 이럴 때 사용하려고 만들어 놓은 큰 낚싯바늘을 철사로 튼튼하게 묶고 고깃덩어리를 바늘 여러 개에 끼웠다. 그리고 나서 바다에 던져놓고 로프는 선미 난간에 단단히 묶은 후 더워서 다들 선실로 들어갔다.


후덥지근한 갑판에 홀로 남아 멀리 뿌옇게 보이는 스리랑카 쪽을 바라보면서 생의 한가운데의 니나를 생각했다. 루이제 린저가 전쟁의 혼돈 시대에 니나를 앞세워 쓴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허무주의가 대세였던 시절, 책이 많이 팔리며 유명세를 타다가 결국 그녀를 독일 대통령 후보까지 오르게 했다. 그걸 당시 한국의 천재로 여겨지던 전혜린이 번역하여 우리에게 알려졌다.


니나는 무슨 일이든 작은 거에 목숨 거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사랑하며, 아니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성이다. 생의 한가운데에 서서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얻는 것도 잃을 거도 없다고 그녀는 절규했다. 운명을 만드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 니나와 달리 우리 마도로스 인생은 어떤가. 이 항구 저 항구 떠돌면서 하역 마치면,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부나비 같은 삶이련가?


시간이 좀 지나자, 선원 몇 명이 심심한데 로프를 건져 보자고 왔다. 물살도 세고 큰 고기가 물었는지 두세 명이 도저히 끌어당길 수가 없었다. 부원 식당에서 비디오를 보며 카드나 화투를 치면서 놀고 있는 선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모두 선미로 나왔다. 예닐곱 명의 건장한 선원들이 힘을 합쳐 로프를 잡아당기자 서서히 움직이기는 하는데 거센 물살과 함께 쉽게 수면 위로 올라오질 않았다. 한참 로프를 당기다 보니 사람보다 더 큰 상어 한 마리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솥뚜껑만 한 돔이 올라오고 처음 보는 물고기가 낚시를 입에 문 채 퍼덕이며 올라왔다. 선원들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바다로 돌려보내고 엄청나게 큰 돔과 먹을만한 생선을 주방으로 들고 들어갔다.


브리지에서 이를 지켜보던 선장과 기관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후 마작 한 판 하자고 했다. 일항사와 함께 사관 휴게실에서 신나는 마작판이 벌어졌는데, 원양어선을 타다 온 갑판원 한 명이 금방 잡은 돔을 큰 접시에 산 채로 가져온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걸 어쩌라고 의아하게 쳐다보니까 그 선원이 빙그레 웃으며 껍질을 들어 보란다. 금방 잡은 고기가 눈을 끔뻑이고 있는데 껍질을 들어보니 그 밑에 하얀 속살이 가지런히 썰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우와!' 한꺼번에 터지는 함성과 함께 캡틴이 맥주 두어 박스를 선원들에게 내려보내라 했다. 다른 사관들도 품위 유지를 위해 선원들 마시라고 맥주를 한두 박스 내놓고. 이렇게 독일로 가야 할 ‘HAPPY NINA’ 호는 남희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서둘러 가지 않고 인도양 한 바다에서 놀 다.




남희가 어머님께 각인되었던 것이 언제였더라. 언젠가 친구들과 강의 끝나고 싸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다고 갑자기 가까운 우리 집에 가자고 쳐들어온 적이 있었지. 엉겁결에 친구들을 맞은 어머니는 거기 한 예쁜 여학생이 다소곳끼어 있으니까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살짝살짝 곁눈질하며 라면을 한 솥 끓여주셨다. 동기들이 다 들어가기에는 우리 집 방들이 좁아 마당에 둘러앉아 먹었다.


친구들은 양껏 먹은 것 같은데, 나는 약간 아쉬워서 입맛을 다시며 빈 솥을 쳐다보고 있으니까 남희가 자기 먹던 것을 인심 쓰듯이 덜어주었다. 아무 소리 안 하고 받아먹는 나를 보고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까지 집에서는 수저에 뭐 묻을까 봐 밥상에 안 닿게 걸쳐 놓고, 밥이 부족할 때 어머니가 드시던 밥을 덜어 준다 해도 됐다고 숟가락을 놓던 아들이었다.


그리고 남희가 팔을 걷어붙이더니 친구들 먹은 그릇을 챙겨서 설거지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내가 ‘어~ 그냥 놔두시지....’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괜찮아요, 나미도 이런 거 잘해요~.’라고 말했다. 이것 봐라, 언젠가 자기 것이 될 수도 있는 남자와 엄마 앞에서 미리 연막을 치는 여시 남희. '내가 밥할 군번이니?'라고 도발할 땐 언제고.... 한 여자의 내숭 앞에서 웅크리고 솔떼로의 마음이 눈 녹듯이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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