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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07. 2024

대서양에서 만난 대한의 딸


작열하는 태양 아래 코발트 빛 물살을 가르는 ‘HAPPY NINA’ 호는 서아프리카의 볼록 나온 아이보리코스트 앞 공해상에 쿤타킨테의 후예를 내려주었다. 먼 옛날 아프리카 흑인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실어 나르던 노예해안 위쪽에 코끼리 이빨을 실어 나르던 상아해안 그 바다에서 뗏목은 튼튼하게 수리하고 선원들이 모아준 약간의 돈과 함께 먹을 것과 식수를 넉넉히 실어주었다. 그동안 정들었다고 양손을 흔들며 닭똥 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순박하게 생긴 그를 뒤로한 채 갈 길을 재촉하는 ‘HAPPY NINA’ 호. 멀리 작은 어선 한 척이 뗏목으로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 영역을 벗어난 쿤타킨테. Good luck! 그를 내려주고 한바다로 나가니 작은 걱정 하나는 덜었다. 아름다운 대서양 위에 스크루 뒤로 긴 물 거품를 남기며 유럽을 향해 달려가는 화물선. 간간이 배 주위 상공을 선회하는 하얀 갈매기와 높이 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스의 후예들. 그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기라도 하듯 검은 돌고래 떼가 수면 위로 솟구친다.  




육지 방향을 쳐다보며 통신실 옆 덱에 서 있는 내 어깨를 누가 툭 친다. 돌아보니 일항사다.

“어이, 국장님. 만 날 여기서 뭐 해요? 통신실에도 없고 방에도 없어서 한참 찾아다녔구먼.”

“아, 쵸사님.”  

잔잔한 대서양의 상큼한 바다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저 앞에 하얀 점 같은 것이 햇볕에 반사되어 점점 가까워진다.

“국장님. 저거 요트 아니오? 한 바다까지 나온 모양인데.”

“어어~, 정말 손을 흔드는 거 같네요. 브리지 한번 올라가 봅시다.”

둘이 같이 선교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요트를 본다. 당직 이등 항해사도 눈여겨보더니 ‘여자도 있는데요. 동양 사람 같아요.’라고 말한다. 이항사가 선박 무선전화 공용 주파수인 채널 16번으로 호출한다.

“YACHT EURAS, EURAS! THIS IS MOTOR VESSEL HAPPY NINA, HAPPY NINA! DO YOU READ ME, OVER?”

잠시 후 VHF에서 어눌한 여자 음성이 들려온다.

“여기 '오이라스' 호. 혹시 한국 사람 아니세요?”

“네, 아니 웬 한국 여자분이 이 한바다까지 요트로 나왔대요?”  

“어머머, 반가워라. 저희는 독일에서 세계 일주하려고 요트 타고 파나마로 가고 있어요. 태평양 건너 부산 거쳐서 인도양으로 갈 거예요. 한국 선원들 만나긴 처음이에요.”

울먹이며 띄엄띄엄 말하는 한국의 딸!

“와우! 세계 일주라고라? 반갑습니다. 저희 배 쪽으로 좀 가까이 오시죠.”


잠시 후 ‘HAPPY NINA’ 호와 조우한 아담하고 예쁜 요트 ‘EURAS’ 호. 덥수룩한 수염에 건장한 서양 사람이 손을 흔들며 키를 잡고 있고, 우리 대한의 딸은 너무 반가워서 눈물, 콧물 닦을 겨를도 없이 펄쩍펄쩍 뛰면서 양손을 흔들어댄다. 어느새 브리지로 올라온 캡틴이 윙 브리지에서 마이크로 묻는다.

“반갑습니다, 뭐 도와드릴 게 있나요?”

아니라고 손을 흔들며 웃는지 우는지 말도 못 하고 좋아하는 그녀그리고 눈 부신 태양 빛 아래 번쩍이는 안 선장님의 금빛 견장. 나는 다른 선원들 사이를 뚫고 요트에 가까이 가서 말을 걸었다.

“정말, 대단하세요. 두 분만 타고 계세요?”

“네, 훌쩍. 한국말을 몇 년 만에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 독일 남편이에요.”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독일인.

“뭐, 필요하신 것은 없어요?”

내가 묻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한국의 딸.

“그럼, 라면하고 김치, 된장, 고추장 좀 내려드릴게요.”

괜찮다고 손을 흔들다가 조리장이 가져온 한국 부식에 감격해 펑펑 우는 그녀.

“저희는 오래 지체할 수 없거든요. 무사히 세계 일주하시고 독일 특파원으로 나와 있는 서나미라는 아가씨가 있어요. 나중에 연락되면 인터뷰 한 번 하세요.”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HAPPY NINA’ 호는 아쉬운 작별을 하고 ‘EURAS’ 호를 뒤로 한 채 제 코스로 선수를 돌린다. 요트와 점점 멀어져 가고 계속 미친 듯이 손을 흔드는 김영희 씨!


그녀는 간호사로 독일에 취업해 독일인 의사와 결혼해 함께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다가 대서양에서 우리를 만난 것이다. 작은 요트의 돛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들의 도전정신은 여느 탐험가 못지않다.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금방이라도 요트를 집어삼킬 듯한 파도, 상어 떼의 위협, 무풍지대에 갇혀 몇 날 며칠을 오도 가도 못하기도 하는, 목숨 내놓고 요트로 세계 일주하는 그들의 도전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요트 항해 중간 기착지 중 하나를 한국으로 정한 것은 엄마에게 이렇게 잘살고 있는 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항해 중의 모든 고생은 엄마를 만난다는 희망 하나로 을 수 있었어요. 엄마는 우리의 항해에 끊임없는 등댓불이었지요.”

나중에 그녀의 인터뷰 대목 중 하나다.

"아, 오마니!" 

그리고 망망대해에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남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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