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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11. 2024

네덜란드 경찰 패트롤카를 타고 온 남희


“야, 짜샤! 아무래도 이 말이 빠지니까 말이 잘 안된다. 그치?”

“응.”

내가 전화하는 게 신기하지 않니? 나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응, 엄청나게 놀랐다. 정말 어디야?”

“들어봐라. 어린 왕자가 독일에 오신다는데 내 성질에 좀이 쑤셔서 기다릴 수 있어야지. 그래서 로테르담 포트 컨트롤에 전화해서 ‘HAPPY NINA’ 호 ETA를 물어봤다는 거 아니니. 학교 다닐 때 통신 영어와 세계 교통 지리 뻘로 배운 거 아니잖아. 그래서 네가 도착한다는 날 맞춰 무조건 연차를 냈지. 지사장님이 내 눈을 쳐다보시더니 아무 말씀 안 하시고 고개를 끄덕이시더라. 그리고 마르크도 좀 주시고. 그래서 로테르담 공항에 내렸는데 뭔 택시 기다리는 사람이 그리 많니. 경찰차가 보이길래 얼른 기자증 들이밀고 ‘어전트, 어전트!’ 했더니 얘들이 더 바쁜 거 있지. 사이렌 울리고 난리가 아니다. 지금 패트롤카에서 무전 치는 거야. 사이렌 소리 들리지? 어머, 근데 급하게 나오느라 치마 속에 아무것도 안 입었네.”

“응, 나도 잘 안 입어. 빨래 하나라도 줄이려고.”

“푸하하~, 하는 꼬락서니 하곤. 너 그때 도봉산에 갔을 때 내 엉덩이만 쳐다보고 올라온 거 다 알아. 그게 괘씸해서 널 식사 당번시킨 거고. 생긴 거하곤 달리 은근 엉큼해서....”

“응, 라인이 안 보여서. 아, 근데 나미야! 배 전화는 다 들어.”

“뭐라고, 다 듣는다고? 어머머~ 아이고, 배야!”


‘HAPPY NINA’ 호가 로테르담 부두에 진입하자 선내 방송으로 캡틴이 말했다.

“국장! 배 접안하네.”

이어 배를 부두에 붙이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의 모습이 통신실 볼트 문 밖으로 보였다.

“폭슬, 풉. 스타보드 사이드 얼롱사이드!”

옛 써~, 우현 접안!”

캡틴이 외치자, 선수와 선미에서 일, 이항사가 동시에 복창한다.

“나미야, 지금 배 부두에 붙이려고 올 스탠바이라 정신없거든.”

“알았어! 이따 보자. 나도 시내 통과했다. 어, 저기 크레인 같은 거 보인다. 기다려, 와우~!”

휴, 정신이 하나도 없네. 올 스탠바이 하는데 어찌나 따발총같이 쏘아대는지. 아, 그런데 맞긴 맞는 거야? 나는 볼을 한 번 꼬집어봤다.


이윽고 배를 부두에 접안시키자, 대리점 직원과 수속관이 올라왔다. 특히 아프리카에 기항한 선박들은 밀항자 검색을 철저히 한다. 본선은 Voyage Memo(입출항 기록)에 최근 아프리카에 기항한 사실이 없어 대충 넘어갔다. 수속이 끝나가는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캡틴의 무뚝뚝한 음성이 선내 마이크로 흘러나왔다.

“국장, 수속 다 마쳤으면 밖에 나가보소. 경찰차가 자네 잡으러 오는 거 같은데.”

긴 한숨을 내쉬고 넥타이를 다시 고쳐 맸다. 형언할 수 없는 가슴 깊은 곳에서의 울렁거림. 너 떨고 있니?


허겁지겁 현문을 나서자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끼익 소리를 내며 육중한 ‘HAPPY NINA’ 호 앞에 서는 네덜란드 경찰차. 긴 머리를 휘날리며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낀 채 패트롤카에서 내리는 남희. 갑자기 ‘HAPPY NINA’ 호의 스피커에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토벤의 'Ode to joy'인가? 윙 브리지를 쳐다보니 금장을 두른 흰 모자를 비스듬히 걸치고 선글라스를 쓴 안 선장님이 담배 연기를 흩날리며 파이프 든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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