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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12. 2024

진수성찬과 못 말리는 김치찌개


나는 윙 브리지에 서 있는 캡틴에게 고개를 꾸벅하고 넥타이를 휘날리며 0.5초 만에 갱웨이를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고 있는 남희를 얼싸안았다. 이렇게 만나기 위해 몇 년이 걸렸던가? 항상 아스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아지랑이 같았그대이렇게 안으니까 그저 품 안에서 새처럼 가냘프게 떨고 있는데....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남희가 나를 약간 밀치며 말했다.

“아, 숨 막혀.... 너, 여자 처음 안아보니?”

“응, 옷 입고 있는 여자 안아보는 건 처음이야.”

“그런데 선원들이 다 쳐다본다.”

“사랑이라면 대낮에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며?”

“그래, 키일 운하는 아니지만 약속대로 뽀~.”

순간 남희의 말을 내 입으로 막아버렸다. 한쪽에서 흥미롭게 지켜보던 네덜란드 경찰들이 한쪽 눈을 찡긋하고 어깨를 움찔하며 경찰차에 탔다. 남희는 한 손으로 나를 약간 밀어내고 경찰에게 다른 손을 흔들며 말했다.

“Thank you so much, police, good luck!”


어느새 색 바랜 작업복을 하얀 사관 정복으로 바꿔 입은 젊은 신사들이 갱웨이 앞에 이 열로 섰다. 군기반장 격인 일등 항해사가 남희에게 거수경례하면서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대단하신 남희 씨. 본 ‘HAPPY NINA’ 호의 전 승조원은 남희 씨가 저희 배에 방문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나머지 다른 사관들도 남희에게 거수경례했다. 한 손으로 긴 머리를 걷어 올리고 고개를 숙이며 눈웃음으로 답하는 남희. 웃는 모습이 참 싱그럽다. 갑판 위에 있는 선원들도 휘파람을 불고 환성을 지르며 남희를 환영했다. 윙 브리지에서 안 선장님이 파이프를 손에 들고 미소 지으며 내려다보고 한마디 했다.

“국장! 나미 씨 배 좀 구경시켜 드리고 식사하라고 하소. 나머지 선원들은 얼른 선창 열고 하역 준비들 해요.”


이어 일항사가 말했다.

“국장님, 나미 씨와 먼저 올라가소. 난 확인할 게 있어서리.”

“네?”

나와 남희는 눈을 마주치고 동시에 웃었다.

“푸하하~”

고개를 약간 기울이고 양 손바닥을 편 채 싱긋이 웃는 일항사, 그리고 폭소를 터뜨리는 젊은 사관들.


“와우, 생각보다 배가 엄청나게 크다.”

남희의 탄성에 일항사가 대답했다.

“이 배를 움직이려면 말 이만 마리 이상이 끄는 동력이 필요하죠.”

“어머머!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분이 저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으신 분이세요? 어쩌나, 급히 나오느라 보여드릴 게 없는데.”

남희의 허를 찌르는 역습에 일항사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며 대답할 말을 못 찾고 쩔쩔맸다. 삼항사는 너무 웃다가 맺힌 눈물과 얼떨결에 튀어나온 콧물을 닦으려고 손수건을 꺼냈다.


브리지에 올라온 남희는 로테르담 항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와우, 디게 멋지다.”

윙 브리지에 서 있던 캡틴이 미소와 함께 양팔을 벌려 남희를 반기며 가볍게 안아주었다.

나미 씨, 듣던 대로 정말 대단해. 독일에서나 볼 줄 알았더니 용감하게 여기까지 경찰차를 타고 나타나고. 조 국장이 반할만하네.”

반갑게 인사하는 캡틴의 말에 남희가 호들갑을 떨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안 선장님, 정말 멋있어요. 마도로스는 다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저희를 위해 ‘환희의 송가’를 다 틀어주시고요. 안 선장님 덕분에 정말 기뻐요.”


싸롱이 식사가 준비되었으니, 식당으로 내려오라고 전했다.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귀한 손님이 왔다고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다. 불고기, LA갈비, 잡채, 탕수육, 빠에야, 마구로 회 그리고 반찬과 과일.... 또 몇 번째인지 모를 남희의 탄성! 눈물을 글썽거리며 모두 들으라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와우, 넘 넘 행복해요. 고마워요, 모두....”

그리고 이어지는 말.

“훌쩍~ 근데 김치찌개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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