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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13. 2024

도배되고 베개 밑에서 나온 편지



“자, 오늘 모처럼 독일에서 귀한 손님이 와서 주자가 특별히 음식을 장만했으니 모두 맛있게 들어요. 자, 나미 씨도 어서 들어요.”

캡틴의 말에 모두 남희를 쳐다보며 손뼉을 쳤다. 조리장도 주방 쪽 문에서 지켜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남희는 고개를 한 번 숙이고 생글생글 웃으며 예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무엇부터 먹을까 입맛을 다셨다. 나는 옆에서 대기 중인 싸롱에게 포크와 락교를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엑스 자 젓가락질하다가 다른 사관 정복에 튀면 누가 빨아주냐 말이지.

“어머, 고마워요. 김치찌개 대신 제가 좋아하는 락교라도 먹으란 말이죠? 어쩜.”

남희의 애교 섞인 말에 일항사가 중얼거렸다.

“난 노란 잉카 콜라 먹고 싶은데....”


안 선장님이 한마디 다.

“어이, 쵸사. 자넨 언제부터 그렇게 눈을 깔고 다녔어? 이야기하면서 눈동자 마주치기가 힘드네. 자네가 그러니까 다른 총각 사관들도 도대체 눈들을 어디에다 두고 있는지, 원.”

남희가 얼른 다리를 오므리며 미니스커트 위에 왼손을 올려놓고 다른 손으로 긴 머리카락을 머리 뒤로 돌리면서 한 마디 종알댔다.

“괜찮아요. 저도 다 아는데, 뭐. 여기 속옷 입으신 분 손 한 번 들어보세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빙긋이 웃기만 할 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거 봐요. 다 똑같은데....”

갑자기 삼기사 입에 물고 있던 닭 다리가 살아서 1m는 날아갔다.

“푸하하하~.”


“어, 그리고 국장. 나미 씨를 독일 지나서 노르웨이 출항할 때까지 같이 승선시키면 어떨까? 선상 생활을 다큐멘터리식으로 취재하라고, 괜찮겠소. 특파원 아가씨?”

캡틴의 말에 남희가 손뼉을 치며 어린애같이 좋아했다.

“정말이요?”

이럴 때 일항사가 빠지면 안 되지.

“제 옆 방 비어 있는데....”

기관장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한마디 했다.

“어이, 쵸사! 그래서 어쩌자고?”


“그러면 국장은 일단 본사에 보낼 Token Pay 서류와 대리점, 이미그레이션에 제출할 나미 씨가 탄 새 승선 명부를 준비해요.”

“네, 알겠습니다. 선장님.”

남희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캡틴에게 대답하고 남희에게 귀엣말로 설명했다.

“나미야, 그건 선원 가족이나 관계자가 배에 타서 무급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으면 만일의 사고와 보험 처리 등을 하기 위해 명목상 급료를 주는 거야.”

“응, 동전 한 개 준다는 거야?”

“아니, 그것보단 많아.”

“와우, 정말?”

“응, 하루 일 불.”


“그리고 나미 씨. 이건 내가 특별히 아껴 마시는 건데 아가씨를 위해서 데워 왔소. 스위트 바질은 떨어지고 없고 시나몬과 레몬, 설탕을 넣고 끓인 거니까 마실 만할 거요. 자! 한 잔 받아요.”

캡틴이 말을 덧붙였다.

“추운 지방에 사는 서양 친구들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커피에 위스키를 타서 마시면서 몸을 녹이지 않소. 추운 겨울에 독일 사람은 맥주에 설탕을 넣고 데워 먹기도 해요. 그리고 레드 와인에 이렇게 계피와 레몬, 설탕을 넣고 끓인 글뤼바인을 마시며 추운 겨울밤을 견딘다고 하네.”

남희에게 혜린이 누나가 뮌헨 슈바빙 거리에서 마셨다던 그 와인을 권했다. 활짝 웃으며 또 행복해하는 남희. 

“그리고 일과 끝나면 국장은 아가씨 데리고 시내 나갔다 오지? 거 뭐 옷 사준다며 청바지 같은 것도 하나 사주시오. 젊은 사관들 시선이 다 어디에 가 있는지 정신이 사납소. 도대체 똑바로 걷는 놈들이 없어.”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는데 남희가 물었다.

"배에 다른 여자들도 올라와?"

", 그런데 오늘은 나미가 처음이야."

방에 뒤따라 들어오던 남희의 탄성.

“와우, 디게 넓다. 축구해도 되겠네.”

그리고 연이은 환호!

“야! 내 사진하고 편지를 벽에다 다 붙여 놓은 거야? 검사할 거라니까 아예 도배했네, 도배를. 호호호~.”

좋아서 내 목을 안고 같이 침대에 쓰러졌다가 베개 밑에 삐죽 나온 다른 편지가 보였다. 갑자기 도끼눈이 되어 벌떡 일어난 남희가 소리를 질렀다.

“짜샤! 시집갔다는 계집애 편지는 왜 베개 밑에 놔둔 건데?”

“응, 나미 온다고 모아놓았던 편지 벽에 붙이고 남은 거 놓아둔 거야. 봐, 어머니 편지도 있잖아.”

“뭐라고?”

선미 씨 편지를 찢으려는 남희에게 민망한 듯 한마디 했다.

“나미야, 잘 봐! 선미 씨 편지, 바랜 게 물고기 배에 들어갔다 나온 거 같지 않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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