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운엽 Jan 10. 2024

로테르담에 울려 퍼지는 남희 목소리

 

독일 본사에서 긴급 전문이 왔다.

"URGENT FXD/DPORT 1ST/RTDM 2ND/DELFZL 3RD/HMBG 4TH/KSANDN 5TH/THEIM PROCEED RTDM/FULL"


번역하면 이렇다.


긴급, 하역 항구 결정

1. 로테르담, 네덜란드

2. 델프질, 네덜란드

3. 함부르크, 독일

4. 크리스티안샌드 North, 노르웨이

5. 트론헤임, 노르웨이

로테르담으로 전속 항진하라.


당시엔 전신 요금이 만만치 않아서 한 단어에 열 개의 알파벳까지 한 글자 요금으로 계산했다. 그래서 상대방이 알아먹을 수 있게 줄이고 사선으로 붙여서 전문을 보냈다. 흔히 쓰는 ETA(Estimated Time of Arrival)나 ASAP(As soon as possible) 같은 게 기본적인 통신 약어이다. 본사에서 하역 항구가 정해졌으니, 로테르담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나라 다섯 항구 중 세 번째 독일의 함부르크! 긴장됐다. 한참 남았다고 생각할 땐 빨리 가고 싶더니 남희가 숨 쉬고 있는 독일 땅이 가까워질수록 왜 이렇게 초조해지는 거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익숙지 않은 이 울렁임.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것은 화물 수배가 이렇게 된다. 일단 광석은 런던, 곡물과 원유 등은 시카고 선물 시장에서 화물을 계약하고 그것을 살 바이어를 동시에 수배한다. 그리고 실어 나를 화물선을 수배하고. 이것이 다국적 회사가 될 수도 있고 한 명의 싱크탱크가 다 할 수도 있다. 내가 근무했던 대기업 계열의 선박회사에서는 일본 브로커를 통해 3%의 커미션을 주고 화물을 수배해서 이만 톤급 화물선 12척을 운행했다고 한다. 오로지 브로커를 통해서, 쉬우니까.


자, 한번 계산해 보자. 그냥 쉽게, 복잡한 거 좋아하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까. 곡물 운임 톤당 20불로 잡자. 이만 톤이면 40만 불. 운임 수입이 5억 원이다. 이 돈의 3%면 1,500만 원. 12척이면 1억 8천만 원을 한 항차 4~50일 만에 달랑 사무실 하나에 텔렉스, 팩스 몇 대 놓고 화물 수배해 주는 일본인 브로커에게 지불했다. 그 당시 SKY를 나온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대기업에서.


지금도 전 세계 무역 화물의 대부분이 비싼 항공기보다 해상 운송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젊은 그대들이 이런 일에 접근할 수 있고 배울 수만 있다면, 그 커미션을 혼자 다 가져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더 배우고 노하우가 생겨 화물선을 빌려서 그 운임까지 통째로 가져올 수 있다면? 클레임 서류 카피해서 본인에게 유리하게 작성하고 용선료와 보험료 등은 계약대로 떼어주고, 재미있을 거 같은데....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글을 읽으면서 너나 잘하지, 그런 말 할 사람은 없겠지.




멀리 안개 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외항이 보이기 시작했다. ‘HAPPY NINA’ 호는 서서히 해수면보다 낮은 아름다운 네덜란드의 영해에 들어갔다. 파일럿이 승선하고 라인강의 지류인 니우어 마스강을 따라 서너 시간은 더 올라가야 한다. 흔히 튤립과 풍차의 나라라는 네덜란드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의 조국이라 우리에게 친근한 편이다. 로테르담 항은 북유럽 무역 중심 허브 항구로 서유럽과 동유럽의 중간에 자리 잡아 물의 나라로 불릴 만큼 예전부터 발달한 내륙 운하로 유럽의 곳곳에 연결된다. 특히 로테르담 항구와 유럽 주요 도시로 통하는 철도, 송유관, 수로가 빠짐없이 연결되어 뛰어난 물류 인프라를 통해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대륙 전역에 배송이 하루 이틀 만에 가능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중계 가공무역이 발달했으며 부두에서 하역, 이동, 배송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다.


갑자기 선박 무선 전화 VHF 채널 16번에서 로테르담 무선국의 여성 교환원이 본선을 호출했다. 배에서 듣는 여성 무선 전화 목소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MOTOR VESSEL HAPPY NINA, HAPPY NINA! HERE IS ROTTERDAM RADIO! DO YOU READ ME, OVER?”

(해피 니나 호! 여기는 로테르담 무선국, 감도 있어요?)

“HERE IS MOTOR VESSEL HAPPY NINA! LOUD AND CLEAR, GO AHEAD. OVER!”

(여기 해피 니나 호, 감도 좋습니다, 말하세요.)

“HERE IS ROTTERDAM RADIO! ONE CALL FOR YOU. CHANGE CHANNEL 26, OVER!”     

(여기 로테르담 무선국, 전화 한 통 와 있습니다. 채널 26으로 나오세요.)

“ROGER! CHANGE CHANNEL 26, OVER.

(알았습니다. 채널 26.)


채널을 바꾸자 튀어나오는 귀에 익고 흥분된 한국인 아가씨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거기 해피 니나 호지요?

아니 이게 웬일이람? 독일에 있어야 할 남희가 웬 로테르담에....

작가의 이전글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에서 달리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