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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Feb 25. 2024

고래 잡으러 나폴리로



“야, 과대 어디 있냐?”

쉬는 시간에 강단에 올라온 남희가 동기들을 쳐다보며 묻는다.

“몰라. 아까 식품영양학과 과대 누나 왔다 간 거 같은데.”

“아니, 과대 얘는 누가 애늙은이 아니랄까 봐 만날 복학생 언니들하고만 논대?”

투덜거리며 계속 말한다.

“얘들아. 우리 이번 방학에 설악산으로 해서 동해 가는 게 어떻겠니?”

제각각 딴짓하던 동기들이 조용해지며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남희를 쳐다본다.

“뭐, 먹을 거 다 싸 들고, 텐트 몇 개 메고, 기차 타고 동해로 가자. 설악산과 경포대, 좋지?”

동기들이 함성을 지르며 웅성댄다.

“그럼, 갈 사람?”

“저요~, 저요~!”

모두 손을 든다, 나만 빼고. 남희가 고함을 빽 지른다.

“야!~ 짜샤! 넌 왜 손 안 드는데?”

찔끔하며 먼 산을 쳐다보고 딴청 하는 나.

“저것이 또 염장 지르네. 백 년 묵은 구렁이가 들어간 영감 모양. 야, 짜샤! 갈 거야, 안 갈 거야?”

“응, 갈 거야. 식품영양학과 애들하고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동해 가기로 약속했어.”

“뭐라고라? 저것이 맛이 갔네. 너 무슨 관데?”

방학 때 놀러 가는 데 뭔 과를 따지고 난리치실까? 남이사....”


잠자코 있던 복학생 형님이 검은 안경을 잡수고 천천히 일어서며 말한다. 보디 가드 격인 다른 복학생 행님도 같이 일어서서 문신한 팔로 팔짱을 낀 채 주위를 훑어본다. 마치 혁명 당시 종규 형이나 지하철 형같이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아그들아, 그럼 식영과랑 걍 같이 뭉치자. 그럼, 남녀 쪽수도 비슷하고 더 재미있겠다. 그리고 나미와 안경쟁이 꼬맹아.  느그들은 이 좋은 세상에 뻑하면 싸우냐, 전생에 뭔 웬수라도 졌냐?”

약간 공포 분위기에 졸아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는 남희와 나. 수업 종이 울리자, 배 탈 사람은 배워야 할 ‘세계 교통 지리’ 교수님이 조명을 받으며 무대 아니 강단에 올라오신다. 애고, 결국 그렇게 같이 갈 건데 그땐 왜 그렇게 평행선을 달렸는지.




아침 7시에 알렉산드리아 Pilot이 ‘HAPPY LATIN’ 호에 오른다. 닻을 올리고 아름다운 알렉산드리아 항을 뒤로한 채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며 출항한다. 떠나는 배는 항구에 늘 마도로스의 사랑과 추억을 남기고 사라진다. 선주로부터 이탈리아 나폴리와 사보나 항으로 향하라는 지시를 받고 선수를 300도로 바꾼다. 한창 화물 수배가 되는 모양이지.


모두 어지러운 선 내외를 정리하다가 식사 시간이 되어 하나둘씩 식당으로 모인다. 나도 출항 전보를 본사에 날리고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 메뉴는 소고기뭇국에 오징어 회무침이다. 안 선장님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일기사! Cinnamon과 Sweet basil 들어간 따뜻한 레드와인 한잔할런가?”

“끓여 먹는 비노도 있어요? 전 그렇게 살균한 포도주는 안 마셔봤는데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는 일기사를 보고 일항사와 나는 웃음을 터뜨린다. 캡틴이 말을 이어간다.

“어이, 이탈리아에서 남미로 가는 수출 화물이 많지 않단 말이야. 우리 배가 벌크에 자동차 겸용선이니 차와 중장비 싣고 뻬루 가는 거 아닐까? 지금 뻬루는 후지모리가 들어서고 전국이 공사판이라던데. 아이스크림 파는 차도 람보르기니라니까.”

오징어를 씹던 일항사가 사레가 들렸는지 갑자기 캑캑거린다.

“네? 선장님, 뻬루라고라? 흐미야....”

갑자기 잉카 모드로 바뀌는 일항사.

“햐~ 뻬루 가면 노란 잉카 콜라는 원 없이 먹겠네.


캡틴이 혼자 중얼거리는 일항사를 힐끗 쳐다보고 웃으며 나에게 묻는다.

“쯧쯧~ 일항사도 이제 누굴 닮아가는구먼, 국장은 남미 어딜 가면 좋겠소?”

“독일이요!”

오징어 다리를 입에 넣으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허공을 쳐다보며 혼자 미소 짓고 야무지게 말하는 나. 돈키호테 형님은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이 들어 돌아가셨다는데....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히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송창식 선배는 아버님이 육이오 때 전사하시고, 행상으로 자식들 먹여 살리던 어머니마저 행방불명되어 고아 아닌 고아로 불우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서울예고 동창인 금난새 선생이 동기 송 씨를 기억하길 음악에 천재성을 가졌지만, 가난하여 물로 배를 채우며 학교에 다녔다고 회상했다. 생활고에 학교도 졸업 못 하고 누가 밥 사준다면 기타 치고 노래하며 노숙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기자 이상벽 씨가 쎄시봉에서 노래 부를 가수가 펑크나자 그를 대타로 세웠단다. 거기서 당대 최고 뮤지션인 윤형주, 김민기, 양희은 등을 만났고 윤형주와 트윈폴리오를 만들어 노래 부르며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노래 대부분이 자작곡이라는데 노래 작사는 작가 최인호 선생이 만들었다고 한다. 가사의 내용이 희망적이고 젊은이다운 패기를 노래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곡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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