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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Feb 26. 2024

아르키메데스의 시칠리아를 지나며

유레카



“어이, 쵸사! 나폴리 도착하기 전에 선창 카  다 내려서 조립하고 라이싱 와이어와 조임 볼트, 너트 부족한 거 파악해요. 이번 화물은 중장비와 차량 사천여 대 홀드에 싣고, 홀드에 안 들어가는 컨테이너와 중장비는 갑판 위에 싣고 라이싱할 거니까.”

선교에 있는 캡틴이 갑판에서 작업하고 있는 일항사에게 마이크로 지시한다.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동그랗게 만들며 알았다는 시늉을 하는 일항사. Car & Bulk Carrier는 일반 화물을 실을 때는 선창 뚜껑 아래에 카 덱을 접어놓고, 차를 실을 때는 내려서 8층으로 조립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을 신성시해 온 나라다. 그래서 산신령과 곰이 나오고 산에 맥이 있어 동네나 사람의 운명까지 바꾼다고 생각했다. 풍수지리설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들을 믿었다. 여기 이탈리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이 많은 반도의 나라이다. 산 정상에는 성이나 성당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등 유독 로마에 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은 것은 그만큼 로마제국의 국력이 강했고 역사가 깊다는 것을 말한다.


‘HAPPY LATIN’ 호는 아름다운 시칠리아섬을 지나간다. 넋을 잃고 쳐다보니 배가 가는 것이 아니라 코발트블루 빛 바다와 아름다운 시칠리아가 지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다. 시칠리아의 왕은 자기 왕관이 순금으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 알고 싶어 당대의 석학인 아르키메데스에게 이것을 의뢰했다. 그렇지만 왕관을 녹이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알아낼 수 있을까? 목욕하던 중 아르키메데스는 탕에 들어가자,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순금과 왕관을 별도로 물속에 넣어 넘치는 물의 양을 비교해 보면 순금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발견에 흥분한 나머지 그는 ‘유레카(알았다)!’라고 외치며 알몸인 채 쌍방울 흔들며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한다. 부력이라 하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가 이렇게 남들도 다 는 일상생활에서 집중하다 보니 이천 년 넘게 교과서에 나오는 위대한 발견이 되었다. 난 뭘 해서 죽기 전에 역사에 남는  하나 할까나.


아르키메데스는 기원전에 그리스의 도시 국가였던 시칠리아에서 태어났다. 지레를 발명하고, 살고 있는 성이 포위되었을 때는 거울에 태양 빛을 반사해 로마 함선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나중에 도시가 함락되었을 때, 아르키메데스는 수학 문제 푸는 데 정신이 팔려 피하지 못하고 로마 군인에게 찔려 죽었다고 전해진다. 로마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 긴박한 상황에서 나중에 하면 될 것을 왜 피하지 않고 수학 문제만 풀고 있었는지, 승자들이 쓰는 역사에서 왜 안타깝게 개죽음당했느냐고,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게 되면 위대한 알키 할배에게 맛이 간 내가 감히 묻고 싶다. 어느 게 바쁘고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말 장화같이 생긴 이탈리아반도 왼쪽 끝에 자리한 지중해에서 제일 큰 섬 시칠리아는 예로부터 그리스, 아랍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래서 나라나 법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경단인 노사 코스트라(마피아)가 생겼다. 토착 무력 집단인 이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 집단으로 변질되었다. 20세기 전후로 시칠리아에서 가난과 굶주림으로 미국 이민 붐이 일어났다. 이때 마피아도 무지막지한 무솔리니 파시즘의 탄압을 피해 같이 진출하게 됐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이탈리아 이민자를 얼마나 차별했는지 자신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나중에는 조직 폭력배로 그 사회를 착취하면서 반대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였다. 그리고 마약, 도박, 매춘, 밀수와 고리대금업 등 온갖 사회악을 도맡아 했다. 지금도 미국과 시칠리아의 범죄 조직 수뇌부는 강력한 유대를 갖고 불법 사업을 계속하며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마피아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단다. 




때가 되면 또 밥 묵어야지. 어둑어둑 해가 지려 할 때 일과를 마친 사관들이 당직자 빼고 식당으로 모인다. 당직자는 한 30분 먼저 밥 먹고 교대하러 간다. 우리가 탄 배가 로마 신화의 나라 이탈리아로 가니 처음 가는 선원들은 기대가 컸다. 시칠리아와 나폴리의 가난한 이민자들이 뉴욕에서 먹던 피자와 스파게티가 미국과 전 세계에 퍼졌. 그런 원조 피자도 맛보고 사진에서나 봤던 아름다운 경치를 실제 볼 생각에 모두 기분이 들떴다.


캡틴이 식사 중에 한마디 꺼낸다.

“이탈리아에 가니까 단테의 신곡이 생각나는데 읽어들 봤는지 모르겠네. 그의 작품이 베아트리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네.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우연한 만남으로 맺어졌을 뿐인데 중세의 궁정식 연애에 맞아떨어졌대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찬양과 존경을 바치는 것이라지. 베아트리체가 먼저 죽자 상심한 단테는 글 쓰는 거로 위안을 찾았고, 그의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인 저승세계 여행을 다룬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를 ‘내 마음의 영광스러운 여주인’이라 묘사했어요. 어째 국장은 특파원 아가씨를 우찌 생각하노?”


~ 씨, 남희 이야기를 하니 반갑긴 한데, 어려운 이야기를 듣느라 안 되는 머리로 정리가 안 되는 판에 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한다니. 전생에 무슨 인연인지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 잡으러 동해에 갈 때만 해도 천생 수였는데, 이제 내 안의 여주인으로 모셔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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