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운엽 Mar 19. 2024

갈라파고스 신드롬과 뻬루 티코 택시


 

우리의 위풍당당하지만 아담한 'HAPPY LATIN' 호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여 에콰도르의 공해를 지나고 있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라는 뜻이라고 한다.
적도 부근은 열대 저기압인 태풍이나 허리케인, 인도양의 사이클론이 발생하는 근원지이나 태풍 중심이 무풍지대이듯이 바다 자체는 늘 거울같이 잔잔하다.

멀리 산 로렌조 등대가 아스라이 보인다.
늘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등대.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항상 그렇듯 곧 멀어진다.
에콰도르는 잉카제국의 일부였으나 스페인의 식민지였기에 스페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촌으로 갈수록 인디언 풍속이 많이 남아있다.
경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농업국이면서 석유를 수출하는 OPEC 회원국이다.
캄보디아처럼 자국 화폐와 달러를 같이 쓰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다.
본토에서 약 천여 km 떨어진 곳에 갈라파고스제도가 있다.
갈라파고스는 공룡은 없지만 다른 대륙에서 볼 수 없는 희한한 동식물들이 많이 살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잔잔한 바다라 순풍에 돛 단 듯이 싸롱사관들이 캡틴 집무실 소파에 편한 자세로 둘러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가 가까이 있는데 저기는 대륙과 고립된 채 동식물이 독자적으로 진화해서 별난 것들이 많다며?"
캡틴의 말에 항사가 대꾸한다.
"그러게요. 사 분의 일 톤이나 하는 거북이며, 1.5m나 되는 바다 이구아나, 발이 하늘색인 갈매기, 빨간 발인데 부리가 하늘색인 새도 있고 지금까지 보도 듣지도 못한 별별 것들이 많이 산다고 들었습니다."
"다윈이 여길 와서 보고 진화론의 영감을 받은 모양이야. 그래서 말이지 성능 좋은 일제 전자제품이나 휴대폰이 지금 세계 시장에서 보기가 힘들잖아. 내수에만 신경 쓰고 국제 표준화하는 데는 등한시해서 그런 모양이야. 그래서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란 말이 생겼지. 요즘 젊은 일본 애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사는 게 너무 편해 외국 근무는커녕 다른 나라에 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모양이야. 아름다운 갈라파고스는 낭만인데 그 낭만이 고립되면 시대착오가 된다고 봐야 할까?"
안 선장님의 짧은 말 한마디에 긴 여운이 남았다.

모두 웃으면서 맥주 캔을 들어 '살루드' 하며 부딪히고 한 모금씩 하자 캡틴이 말을 이었다.
"남미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의 영향으로 적도 부근의 따뜻한 바닷물이 옮겨가고 그 자리에 플랑크톤이 풍부한 바닷물이 올라오면서 여기 뻬루 해안이 한때 정어리와 멸치 황금 어장이었지. 근데 요즘 지구 온난화와 이상기후가 심각한 모양이야. 그게 다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지. 엘니뇨는 루와 칠레 연안에서 바닷물이 따뜻해지는 현상인데 세계적인 황금어장에서 정어리가 잘 잡히지 않는 게 12월 말경에 발생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와 연관 지어 아기 예수의 뜻을 가진 엘니뇨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네. 라니냐는 다 알다시피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이고 엘니뇨와 반대로 바닷물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대기 순환에 영향을 주어 이상 기후가 나타나요. 엘니뇨나 라니냐 현상이 일어나면 지구 곳곳에 홍수나 가뭄이 자주 생기잖아. 그래서 루 등 남아메리카는 서늘해지고 북아메리카나 유럽에는 강추위가 오기도 한답디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각각 다른 현상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연속적으로 일어나요. 이러한 이상 기후로 농수산물 가격이 폭등하고, 모든 산업과 경제 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거지."

"그런데 나비효과도 비슷한가요? 잘 이해가 되지 않던데요."
내가 묻자 캡틴이 맥주 한 모금하면서 잠시 생각하다가 말씀하신다.
"나비 효과는 요 옆의 아마존강에서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그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예에 빗댄 표현인데 지구 한쪽의 자연 현상이 언뜻 보면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먼 곳의 자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좀 앞서간 이론이지."

새 맥주 캔을 따면서 캡틴이 묻는다.
"항사 큰딸이 KOICA 단원으로 꾸스꼬에서 도자기 만드는 것을 가르친다는데, 국장도 우리 지금 가는 삐우라에 아는 이 있다며?"
"아, 네. 누나가 여기 이민 와서 아들, 딸 둘 놓고 잘 산대요."
내 대답에 안 선장님이 반색하고 또 묻는다.
"오~ 그래요.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면 무척 반갑겠네."
나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누나는 가족, 친지 중에 강력한 우호 세력 중 한 분이죠. 누나 생각만 하면 늘  니다요."
캡틴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조 국장, 가족 고 남과 옷깃 스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생각해 봐요. 남자끼리는 쉽게 안 되거든."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그런데 뻬루에 티코 택시가 참 많대요.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남의 나라에 이민 와서 금방 잘살게 되는 경우는 참으로 드물다.
말도 안 통하고  설은 남의 나라에서 대부분 아픔을 겪으면서 수업료를 내고 현재에 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빈 누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한국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서 매형과 같이 잘 나가다가 뻬루에 인연이 다 이민 바람이 불어 삐우라에 정착할 때 엄청 고생했단다.
정비공장하다 야금야금 말아먹고 가진 돈 떨어지니 땟거리를 걱정하면서 삼 년 동안 남에게 말 못 할 고생을 하고 피눈물을 삼키며 살았다고 한다.
그때 먹을 게 없어서, 매형에게 선물로 받은 애지중지하던 빨간 시트로엥을 에콰도르에 팔러 간 한국인 직원이 중간에 사라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직원 출퇴근용 차 티코를 팔려고 내놓았는데 딱지만 하다고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았다고 한다.
단돈 십 불이 아쉬운 마당에 마침 리마에 아는 한국인 가족이 살고 있어 티코로 돈을 마련해 보려고 직접 차를 끌고 리마로 향했다.
그런데 삐우라에서 리마 거리가 850km이다.
태평양 해변 따라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빤 아메리까 도로가 말만 고속도로지 편도 일 차선에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리마까지 가는 데 열두어 시간은 족히 걸린다.
암튼 빨리 돈을 만들어 와야 사랑하는 식구들 먹을 쌀과 김치 거리라도 사지...


리마 가는 길 중간쯤에 뜨루히요라는 작은 항구도시에서 차 엔진도 식힐 겸 시원한 모떼 한잔  먹는데 요타 택시 기사가 티코를 보고 신기한 듯 다가왔단다.

요모조모 살펴보다가 어느 나라에서 만든 차냐고 물어보더니 가더란다.

잠시 후 뜨루히요 택시회사 사장이 와서 이 차를 팔 수 있냐고 묻더란다.

차를 처분하는데 진심이었던 유빈 누나는 예쁘고 상냥스러운 목소리로 '시~ 끌라로, 끌라로!'라며 차를 보여줬다.

앞뒤 좌석을 눕히면 웬만한 가정용 냉장고도 실을 수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단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타고 온 티코를 현찰 받고 팔고 열 대를 더 주문받았다.
요타 택시 한 대 값이면 티코 여러 대를 사는데 안 할 이유가 있겠는가?
손님수 똑같이 타고 택시 요금은 같고...

그래서 당시 뻬루에 굴러다니던 티코의 반 가까이 매형과 유빈 누나가 수입해서 판 거라 했다.
많이 팔 때는 하루에 수십 대도 팔았다나...
한 대 100불만 남아도 얼마야?
그리고 티코가 엄청 팔리면서 요타가 안 팔리고 매물만 나와서 뻬루 개국 이래 처음으로 자동차를 이웃 나라에 역수출했다는 전설이...

이후로 티코 마님은 인생이 잘 풀려 정원 있는 큰 집을 몇 년에 걸쳐 손수 짓고 아이들과 말  타고 산책 다닌다고 뽐냈다.

작가의 이전글 파나마 운하와 고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