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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r 23. 2024

페루 리마의 관문 까야오 항


삐우라에서 차와 중장비를 하역하고 나니 밸러스트를 채워도 배가 가벼워져 해수면 위로 높이 떴다.

멀리 좌현 쪽으로 보이는 끝없는 뻬루의 사막지대.

간혹 안데스산맥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작은 강 주변에는 어김없이 푸른 숲과 함께 사람 사는 흔적이 보인다.


일항사 당직 시간인 오후 4시쯤 본사와 대리점 전보가 있나 트래픽 리스트를 확인하고 선교로 올라갔다.

일항사와 전방을 주시하던 캡틴이 빈손으로 올라온 나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아직 다음 화물이 안 정해진 모양이지. 칠레에서 원목, 비료와 광석 등을 많이 수출하니 곧 화물이 수배될 걸세. 참, 일항사 큰딸이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여기 나와 있다더니 연락됐소?"

일항사가 아쉬운 듯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전화 통화는 했는데 우리 배가 하루 만에 출항하는 데다 꾸스꼬에서 리마까지 버스로 스무 시간 넘게 걸려서 왔다 가기 힘들답니다."

"아쉽겠구먼. 우리나라 정부가 이제 살만하니 코이카 해외봉사단을 만들어 무상으로 이웃 나라를 도와주는 것은 아주 잘하는 거로 생각하네. 덕분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돈 주고 못 살 진 경험을 개도국에서 하고 말이오."


KOICA 자원봉사단원은 개도에 가서 기술과 의료,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자원봉사를 2년 동안 하게 된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 이후 겪었던 빈곤을 극복하는데 세계 여러 나라가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 주던 것과 비슷하다.

국제협력단이라는 국가기관이 나라의 명예를 걸고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을 파견하는 것이므로 NGO 해외 봉사와는 조금 다르다.

NGO 해외 봉사는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몇 주 기간이고 현지에서 단체로 활동하며 파견 전 교육과 파견 도중 지원이 허술한 편이다.

필리핀과 오세아니아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파견지에서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국가기관이 보내는 봉사단원이다 보니 신변 안전의 문제가 있기에 TV에서 보는 해외 봉사활동처럼 건물 보수나 만드는 등 노가다 일은 없다.

실제로 치위생사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이 한국 대사관 근처 병원에 배치되어 홍보가 되지 않아 정작 와야 할 가난한 현지인은 오지 않고 대사관과 KOTRA 직원들 스케일링만 하다가 회의를 느껴 중도 귀국한 사례가 있었단다.

파견국의 인프라가 너무 나빠 컴퓨터 분야로 파견을 나간 단원은 학교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컴퓨터를 앞에 놓고 자판 연습만 시키다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그 나라 사람들은 돈과 질병 문제 말고는 우리의 도움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랬듯이 가난한 나라에는 가난한 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오히려 국민소득은 적지만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도 다.

그렇지만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도움받은 만큼 이제는 우리가 갚아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리마는 에스빠냐의 삐사로가 16세기에 건설하여 뻬루의 수도가 된 계획도시이다.

시내 미라플로레스를 걸으면 작은 스페인에 온 것 같다.

그곳에 라르꼬마르 해변이 있다.

확 트인 태평양 바다가 보이고 멋진 해변의 절경에서 패러글라이딩하는 젊은이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변으로 내려가면 추우나 더우나 일 년 365일 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3년 연속 세계 여자 서프 보드 챔피언을 지냈던 소피아 물라노비치가 여기에서 어머니와 함께 피땀을 흘리며 훈련했고 결국 세계 챔피언의 꿈을 이루어냈다.

그래서 많은 꿈나무들이 제2의 소피아를 꿈꾸며 이 해변에서 몸을 풀고 바닷물에 뛰어 들어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그곳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초리요스에 아구아둘세라는 생선 시장이 있다.

금방 태평양 바다에서 잡아 온 펄떡펄떡 뛰는 생선을 싸게 살 수 있다.

주변에는 세비체를 파는 레스토랑이 곳곳에 있다.

그날 잡은 돔 같은 싱싱한 생선을 바로 잡아 리몬을 뿌려 막회처럼 먹는다.

오전에만 장사하고 오후에는 문 닫는다.


잉카의 고도는 대부분 높은 지역에 있어 오가기가 힘들다.

사막성 건조기후로 연중 비가 20mm 정도밖에 오지 않지만, 태평양에 인접해 있어 안개가 잦다.

적도 아래 남위 12도라 더울 거 같지만 생각보다 덥지 않다.

남극에서 올라오는 훔볼트 한류 덕이다.

60세 가까운 현지인 이야기가 자기 평생 큰 비를 본 적이 없단다.

그래서 만일 큰 비가 내리면 가옥이 침수되고 배수로라는 것이 잘 되어 있지 않아 큰 재앙이 올 거로 생각한다.

환태평양 지진대라 지진도 잦다.

중남미의 다른 대도시처럼 리마도 도시 내의 빈부격차가 크다.

고급 주택가와 빈민가 사이에 슬프게도 베를린 장벽처럼 오갈 수 없게 막아놓았다.

이 장벽은 고급 주택가에 불법 건축물이 들어서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졌는데 뻬루의 극심한 사회문제를 보여주며 빈민촌 주민들에게 좌절감을 준다 해서 수치의 장벽이라고 부른다.

헌법재판소에서 철거하라고 했는데 여전히 그 흔적은 남아있다고 한다.


어느덧 우리의 'HAPPY LATIN' 호는 리마 관문 까야오 항에 다다랐다.

항구를 바라보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왼쪽 부두에 탱커 터미널이 있고 더 안쪽에 해군 회색 군함과 군사시설이 보인다.

우리가 접안할 일반 화물 부두는 오른쪽이다.

민간용 기름 파이프가 군사 시설을 통과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것이라 자리 배치를 다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미시시피강 따라 올라가 뉴올리언스에 곡물을 실으러 간 적이 있다.

상륙할 때 양쪽 둑을 보고 '이거 큰 사고 날 수 있어 위험한데'라는 생각을 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후 강력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제방을 무너뜨리고 뉴올리언스 부근을 초토화해 지옥처럼 만든 적이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이 국민을 위한 재해방지가 이러할진대 나라 예산이 형편없이 적은 나라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이방인의 직관적인 눈이 매일 일상을 겪는 이보다 객관적이고 실제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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