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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10. 2024

거북이에게 구조된 선원

거북이 스프 전설



사람 사는 곳에는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배 안에서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살며 사랑하고, 웃으며 친하게 지내다 사소한 일로 싸우고...
모르는 사람이 생각할 때는 넓은 바다와 같이 마음도 유유자적할 거 같지만, 실제로 아무리 큰 배라 해도 일엽편주 좁은 곳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을 계속하면 그렇지도 않다.  
인내의 연속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부산에서 LA까지 미주 항로는 10,000km가 조금 안 된다.

 비행기가 시속 900km로 날아가면 11시간 걸리고, 일반 화물선이 평균 15노트로 항해하면 보름 걸린다.
그동안 보이는 거라곤 망망대해의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밖에 없다.  
사랑하는 가족이 보고 싶어도 갈 수가 없고 배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도 한 걸음을 나갈 수 있나?
항해하면서 배 밑의 바닷물을 오래 쳐다보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간혹 그렇게 뛰어내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선원도 있지만...
적도 대서양을 지나가는데 큰 거북이가 헤엄쳐 가는 게 보인다.
대양 항해 중에 간혹 이렇게 큰 거북이나 고래, 돌고래를 만나면 반갑다.

오래전에 한 선원이 항해 중에 바다에 떨어진 적이 있다.
동남아 원목을 한국에 싣고 오는 국적선을 타고 남지나 해를 항해할 때였다.  
동남아시아 바다는 고국이 가까이 있어서 그런지 언제 항해해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대만을 지나 바시 채널을 통과하여 필리핀 해를 지나는 석양 무렵이었다.

멀리 필리핀이 아스라이 보인다.  
마른번개가 치고 정글 곳곳에 연기나는 것이 보였다.
아, 저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고 쳐다보다가 갑자기 통신실에서 국제 조난 신호 주파수인 500kHz로 긴급 신호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시에 무선 전화 VHF 채널 16번에서도 국제 음성 긴급 신호인 'PANPAN PANPAN PANPAN'이 울려 퍼진다.
'이크, 사고구나' 하고 통신기 앞에 앉아서 모스 부호를 받아 적으니 한국 에서 조난 사고가 났다.  
VHF에서 들리는 떨리는 영어 목소리도 한국 사람이다.
국적선사 통폐합 때 없어진 진흥해운 소속의 원목선에서 선원 한 명이 바다에 떨어져 행방불명되어 부근을 지나는 선박은 구조에 협조해 달라는 전문이다.

조난 전보타이핑해서 브리지에 올라가니 벌써 VHF로 위치를 파악하고 해도를 보고 있다.  
본선에서 좀 떨어진 위치였다.
VHF에서는 조난선과 인근을 지나는 선박들이 긴박하게 교신 중이었다.  
본선 선장도 그쪽으로 가서 조난자를 수색하는데 협조하겠다고 VHF 무선전화를 한다.
본사에도 인명 구조를 위해 항로를 변경한다고 긴급 타전했다.

그런데 어두워진 이 넓은 한바다에서 조난 선원을 어떻게 찾는담.
항해 중에 배에서 바다로 선원이 떨어지면 스크루의 거대한 물거품에 휩쓸려 들어가 순간적으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배의 진로를 돌려서 조난 위치로 가려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큰 배일수록 회전반경이 더 커진다.  
선원이 바다에 떨어졌다는 해역 근방에 다가가자 크고 작은 배 예닐곱 척이 캄캄한 바다에서 불을 환하게 켜고 수색 작업을 하는데 장관이다.
조난자 생각에 가슴이 꽉 멘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꼭 구조되어야 할 텐데..."
나중에 합류한 배들과 함께 십여 척의 선박들이 밤을 새워 수색했으나 성과 없이 진흥해운 배만 남아서 더 수색하기로 하고 다른 배들은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짧은 항해 중에 'Voice of America'의 한국어 방송에 기쁜 소식이 나온다.
남지나 해역에서 조난된 한국 선원이 거북이 등에 업힌 채로 기적적으로 사흘 만에 구조되었단다.  
급히 선장에게 보고하고 선내 방송으로 이 사실을 알리자 여기저기서 '우와!' 하는 함성과 함께 손뼉 치는 소리가 들린다.
선원들에게 바다에서 조난은 남의 일이 아니지...
물 위에 떠 있던 거북이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려면 머리부터 처박아야 하는데 조난한 선원이 거북이 목을 꽉 잡고 며칠을 버티다 구조된 모양이다.
나중에 해기지에 나온 그 선원의 해맑은 모습과 인터뷰 기사를 보니 '노출된 피부에만 화상을 입고 별 탈 없이 구조되어 정말 모든 것에 감사드리며, 화상만 치료하면 다시 넓은 바다로 나가고 싶다'는 거였다.




거북이 수프에 대한 슬픈 바다 괴담이 있다.
어느 부부가 작은 를 타다가 한바다에서 난파되어 무인도에 표류하게 되었다.
부상과 배고픔에 생사의 고비를 오락가락하던 중 부인은 눈까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부인이 기력을 잃어가자, 남편이 거북이 수프라며 떠먹여 주었단다.
아내는 남편이 주는 거북이 수프를 먹고 점차 나아지면서 구조선에 구조되었으나 남편은 얼마 못 가서 숨졌다.

훗날 시력도 되찾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 아내는 사랑했던 남편을 생각하며 그가 해주었던 거북이 수프가 생각나 바닷가 언덕에 잘한다는 음식점에 찾아갔다.
그녀는 거북이 수프를 몇 입 먹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갑자기 통곡하면서 절벽 아래 바다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덩치가 큰 거북은 예나 지금이나 좋은 먹거리이고 박제해서 제법 비싸게 팔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자라 요리는 종종 먹는다.
접하기 쉽지 않은 바다거북 요리를 정글의 법칙에서 병만족이 먹어보고는 닭고기 비슷한 맛이 나고 일단 맛있다고 했다.
대항해시대에서도 바다에서 잡은 거북은 선원들에게 훌륭한 양식이 되었다.
쿠바 대통령 까스뜨로가 바다거북 수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송아지 머리 고기로 바다거북 수프 비슷하게 만든 'Mock turtle soup'라는 요리도 있다.
일부 육지 거북은 너무 잡아먹어서 멸종 위기라고 한다.

조난되어 무인도에서 끓여 먹은 거북이 수프와 식당에서 먹는 맛은 분명 다를 수 있다.  
여기서 거북이 수프를 먹다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울부짖으며 바다에 뛰어든 아내 이야기를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두 고인께 삼가 명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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