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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11. 2024

남미에서 바람같이 사라진 사나이


K 형의 첫인상은 무척 차가웠다.

항상 말없이 뭔가를 생각하는 듯 우수에 차 있었고 웃는 낯을 보기가 힘들었다.

얼굴은 어렸을 때 수두를 앓아서 얽었고, 젊었을 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한쪽 다리마저 절었다.

그나마 키까지 난쟁이 똥자루만큼이나 작았다.

내가 그 배에 올라갔을 때 그는 일 년 넘게 타고 있었다.

그 당시 외항선의 승선계약은 일 년인데 연장한 것이다.

보통 배를 일 년 정도 타면 지겹기도 하고 고국이 그리워 귀국하고 싶어 안달하는데 말이다.


일단 업무 파악을 하고 나서 좀 한가해졌을 때 그 선원과 술 한잔하자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서 직책이 낮은 선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술 한잔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니 자기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고향이 부산 기장하고도 그 위의 월래인데 그런 몸으로 사람 구실도 못 하고 장가도 못 갈 거 같아 고민이 많았단다.

어렵게 배를 타고 괜찮은 나라가 있으면 그곳에 내려서 빠삐용 같이 살고 싶다나.

당시 남미는 선원들에게 파라다이스로 생각되는 곳이었다.

멋진 자연환경, 싼 물가에 널려있는 아름다운 세뇨리따들.

뭐 다 좋은데 나하고 타고 있을 때는 무단 하선하지 말라고 했다.

선원이 바다나 항구에서 행방불명되면 사무장을 겸하는 나와 선장이 뒤처리해야 한다.

특히 귀국하면 외사과에서 선내 가혹행위는 없었나 집중 조사한다.

어떤 캡틴은 조사받다가 얻어맞기도 한단다.


배 속력만큼이나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 그 이야기는 까맣게 잊고 이 항구 저 항구 화물 따라 움직이다가 남미의 어느 항구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도 찍고, 바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들과 맥주도 마시는 등 마도로스의 낭만을 만끽하고, 하역이 끝나 출항을 하려는데 아뿔싸 그 K 형이 귀선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무단 하선한 거로 생각했다.

에이전트 차를 타고 한국 선원들이 잘 가던 술집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데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얼른 선주에게 보고하고 대리점과 협의하여 선주 개런티로 일단 배는 출항하게 되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돌아오면 다음 항구로 보내 달라고 하고.

그렇게 K 형은 사라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멀어졌다.

어디가 됐든 행복하게 살기를 빌면서…


몇 년 후 다른 배를 타고 K 형이 무단 하선한 그 항구에 들어갔을 때 그를 수소문해 봤다.

그랬더니 인근 어촌 근처에서 작달막한 동양인을 보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아~ 죽지는 않고 살아 있나 보다’라는 짐작만 하고 그 나라를 떠났다.

인근이라는 곳이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

또 몇 년이 흘러 이번에는 다른 회사 유조선을 타고 K 형이 살고 있다는 근처의 항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만날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입항해서 알아봤다.

그랬더니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해산물 양식을 하다가 은퇴하고 근처 바닷가 한적한 곳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리점 직원에게 위스키를 한 병 주고 그 동양인에게 연락할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대리점 직원이 방긋 웃으며 그 사람 전화번호를 알아 왔다.

고맙다고 담배 한 보루 더 주고 한가할 때 그 번호로 전화를 해보았다.

전화를 받는 세뇨라가 우물쭈물하는 게 느껴졌다.

짧은 스페인어로 K 형과 몇 년 전에 같이 배를 타던 아미고라 하면서 통화할 수 없냐고 물었으나 말도 잘 안 통하고 바꾸어주질 않았다.


그날 밤, 머플러를 하고 선글라스를 쓴 멋진 여인이 귀여운 소녀 손을 잡고 나를 찾아왔다고 해서 현문으로 나가봤다.

‘세뇰 조’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하니 자기와 같이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내 성을 아는 걸 보고 그 K 형이 보낸 사람으로 알아차리고 입은 차림에 잠바 하나 걸치고 따라 나갔다.

두 모녀가 차에 탈 때까지 주위를 경계하는 것 같았다.

차 타고 삼사십 분 갔더니 바닷가 숲이 울창한 곳에 외딴집의 불빛이 보였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 속에 정원이 넓고 풀장까지 있는 그 집 안으로 들어가니 현관 앞에 아주 작은 몸집인 초로의 사내가 휠체어에 앉아 파이프를 문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누구였겠는가?

다 살아있으니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는 거지.

반가운 포옹을 한 후에 그 K 형과 밤새 비노를 마시며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그 항구에서 내리기로 하고 한 레스토랑의 주인 여자와 의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했다나.

출항하는 날 새벽에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과 옷가지 몇 개만 챙겨서 그 레스토랑에 찾아가 자기를 도와달라고 했단다.

비상금만 조금 챙겨놓고 나머지 돈을 다 주면서 일단 자기를 숨겨주고 이 나라에서 살 수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세뇨라는 K 형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떡이고, 바로 차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생을 하는 딸에게 그 돈을 주면서 도와주라고 말하고 갔다.


짬 나는 대로 그 세뇨리따에게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바닷가에 나가 낚시하고 물질하면서 고기와 어패류를 잡아 시장에 팔아서 입에 풀칠하고 허름한 집에서 혼자 살았다.

몇 년 숨어 살 듯이 하면서 스페인어로 어지간한 의사 표현을 할 정도가 되자 그 여선생에게 부탁했단다.

그 항구에 한국 사람이 탄 배가 들어오면 한글로 쓴 ‘이곳에 오시면 회와 전복, 소라 등 싱싱한 해산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전직 마도로스가’라고 쓴 종이를 보여주라고 했다.

그렇게 찾아오는 한국 선원들에게 해산물과 술을 팔았단다.

지금도 현지인들은 전복, 멍게, 해삼 같은 것을 잘 먹을 줄 모른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바닷가에 나가면 전복이나 홍합, 조개 등이 갯가에 널려 있었다고 한다.

어쩌다 오는 한국 선원들이 해산물을 맛있게 먹고, 주고 간 돈을 모아 굴 양식을 했는데 별 재미를 못 보고, 다시 성게 양식을 했단다.

그곳 바닷가는 별로 오염되지 않아 성게가 주먹만큼 크게 잘 자라서 일본에 수출하게 되었다.

바닷가에 지천으로 있는 전복도 잡아 같이 수출해서 엄청나게 재미를 보았다고 했다.


바닷가에서 일만 하고 혼자 지내는 이 때가 묻지 않은 영혼의 소유자와 그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쳐주던 아리따운 여선생은 몇 년을 같이 지내다 보니 정이 들어 자연스럽게 살을 섞게 되었단다.

부인 닮은 예쁜 자식도 생기게 되어 그동안 참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그렇게 꿈같이 살던 어느 날, 바닷가에서 일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쓰러지게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자기 신세에 자포자기하다시피 하여 술만 먹고 교통사고 후유증이 늙어서 다시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하고 어느 정도 나아지자, 모든 걸 정리하고 새 집을 지어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단다.


부인의 사랑도 지극하여 늙고 병든 K 형을 버리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는데 자기는 너무너무 행복해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귀여운 딸이 ‘빠빠, 빠빠!’ 하면서 눈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것을 보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나.

정말 남미 아이들 어렸을 때는 너무 예쁘더라.

자기가 한국에 살았다면 이런 행복을 꿈이나 꾸어봤겠냐고 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예전에 남미의 한 아름다운 항구에서 사라져 잊혔던 그 곰보 형이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니 내 마음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이참에 나도 다 내려놓고 따라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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