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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12. 2024

포르투갈 오 뽀르또 항의 검은 진주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보름 정도의 항해 끝에 'HAPPY LATIN' 호는 포르투갈의 오 뽀르또 외항에 도착했다.

그동안 파도가 세게 치지 않거나 비가 오지 않으면 불이 난 3번 홀드를 열어 환풍기로 선창에 바람을 불어넣어 젖은 숯을 말렸다.  

무사히 수속과 화물 서베이어를 마치고 하역에 들어간다.


지금도 인구 겨우 천만 명인 이 작은 나라에서 무슨 힘으로 저 덩치 큰 브라질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통치하였을까?

신항로 개척 시대에는 인구 몇백만 명에 군인으로 싸울 젊은이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포르투갈과 스페인향신료를 구하러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의 신항로 개척 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곳곳에 식민지를 만들어 제국주의의 서막을 열었다.

반면에 고대부터 동서 간의 무역로였던 중동과 실크로드의 입지는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교황의 중재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전 세계를 양분할 정도의 해양 강대국이 되었다.  

신무기로 무장해 무력으로 지구를 경영했던 두 나라.

다 물 때를 잘 만나야겠지만, 민족성 자체가 우리와 많이 다른 것 같다.


브라질, 아프리카의 앙골라, 모잠비크, 인도의 고아와 동티모르 등이 차례로 독립하고 1999년 마지막으로 남은 식민지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하면서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 시대가 끝났다.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할 때 주민들에게 영국 국적을 주지 않은 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당시 마카오의 합법적인 시민 모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주었다고 한다.

식민지들이 독립하면서 공돈이 줄어 점차 국력이 쇠퇴해 갔다.


대항해시대부터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 혼기가 차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여인들이 흑인 노예와 썸 타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밖으로 나간 남자들 또한 식민지의 여인과 그냥 눌러앉아 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러다 보니까 포르투갈에는 혼혈만 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순혈주의가 강한 유럽 내에서 유색 인종이나 혼혈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나라 중 하나다.


부두에 배 붙이고 하역 시작했으니 얼른 상륙 나가야지,  꾸물거려.

게다가 숯가루에 온 배가 난장판이다.

활기차고 오래된 도시 오 뽀르또 시내를 걷는다.  

'오 뽀르또에서 일하고, 코임브라에서는 공부하고, 리스본에서 즐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도시마다 각각의 색이 분명하다고 한다.

사람들이 대체로 여느 유럽과 다르게 흑발에 아담한 이들이 많이 보인다.  

거리의 보도블록과 골목길은 이웃 스페인이나 다른 유럽처럼 수백 년 된 돌이 박혀 있다.

집과 건물들도 웅장하기보다는 아담하게 느껴지고 황톳빛 기와지붕이 많이 보인다.

군주나 귀족 등 지배층은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그들의 성과 집을 예쁘고 튼튼하게 지었지만, 가난한 백성은 산이나 들에 널려있는 황토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한참 걷다가 히베리아 광장 옆에 꽃이 많이 핀 노천카페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쉬었다.  

남희에게 전화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 거 같아 이국의 매혹적인 풍경과 스쳐 가는 이들을 쳐다보며 와인을 한 잔 시킨다.

정신없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남희와 자주 만나지도 못하면서 한결같은 애틋함을 유지할 수 있는 원인은 무얼까?  

아직 나의 세계 항해를 마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고, 남희 또한 그녀로서 삶이 끝날 수도 있기에 자신만의 삶을 즐기고 있다.

그런 것이 오히려 목마른 갈증을 참게하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게 된 것일까?  

그래서 자주 못 보는 아쉬움보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배려하는 쪽으로 변하게 된 것인가.

그래, 우리가 살면서 무모한 열정은 무의미하고 재앙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나의 항해와 사랑, 그녀의 특파원 일과 사랑,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천천히 즐기면서 오늘 하루에 충실해지려는 모습.

그러다 보니 편하다 못해 또 하나의 고향 같은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이미 두 사람은 'The only, the best'로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데.


차도에서 낯익은 사람 둘이 지나가는 여인들을 흘낏흘낏 보면서 히베리아 광장으로 들어선다.

바람 같은 사나이들.

항사와 기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집 나간 며느리라도 만난 듯이 반가워서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고개를 끄덕여 옆자리를 가리키자 와서 앉는다.  

지나가던 흑진주들이 우리 일행을 보고 미소를 짓는다.

마치 알프스의 양치기 소년이 흠모한 스테파네트가 바라보던 희망의 별 보듯이 말이다.  

기사 또한 방긋 웃고 항사가 양손을 흔들자, 그니들이 가까이 온다.

그래, 여기는 아프리카에 식민지가 많았던 나라지.  

모델 같은 몸짓에 할리 베리처럼 잘생긴 그녀들.

젊으니 아름답다.

항사의 유창한 영어 유머가 날아다니자, 그녀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카페 한쪽에 있는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작은 매대에 진열해 놓은 큰 게가 보인다.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같이 하늘하늘 걸어 다니는 흑발의 서빙에 킹크랩을 시킨다.  

우리는 마시던 와인을 계속 먹고 그녀들은 포르투갈 전통주인 체리를 섞은 진저 칵테일을 주문했다.

흑진주들이 마시는 체리 진저붉은빛이 마치 식민시대 그네들의 조상이 흘렸던 피같이 여겨져 무지막지했던 흑역사를 잠시나마 돌이켜 보게 되고, 동병상련이 스쳐간다.

가끔 듣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어두운 숙명'이 흘러나온다.

연인을 떠나보내는 한 여인의 슬픈 한이 서린 노래가 아말리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애절한 목소리로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부부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았다.

어느 날 고기잡이 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서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눈에 수평선 너머로 무엇인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남편의 배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친 아내의 눈에 반가운 눈물이 맺혔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남편의 배...

그러나 그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그 검은 돛이란 바로 남편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러나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문화권에서는 검은 배를 ‘Barco negro’라 한다.

처음부터 들리는 애잔한 기타 반주는 포르투갈 기타로 2겹 6조 12줄로 일반 기타와 조금 다르다.


리스본 빈민가의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난 아말리아 드리게스는 십 대 시절 항구에서 낮에는 오렌지 행상을 했고 밤에는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그녀는 방년 19살 때 맨발에 검은 망토와 숄을 두르고 신들린 듯 ‘바르꼬 네그로’를 열창하며 파두의 전설이 시작됐다.


'파두'는 어원이 라틴어의 'fatum(숙명)'이라고 한다.

어원대로 주로 숙명, 고난, 절망, 죽음 등을 주제로, 대부분 바다로 나간 남편이나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노래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36년간 통치를 받았지만, 포르투갈은 스페인에 두 배 가까운 60여 년간 지배를 받은 암울했던 역사를 반영하듯, 파두에는 향수와 슬픔, 외로움 등 민족 특유의 한이 담겨 있다.

서민 생활의 애환이 묻어 있는 파두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널리 알린 대표적인 가수가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이다.

그러나 포르투갈 사람들은 이 파두를 들으면서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고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할까.


그녀가 짧지 않은 생을 마쳤을 때 포르투갈 정부는 하루도 아닌 사흘 동안 애도의 날로 정해 전 국민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한 국민 가수였다.

그만큼 그녀가 포르투갈 문화와 대중에 끼친 영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녀의 딸 Dulce Pontes도 유명한 파두 가수인데 그녀가 부른 Cancao do mar(바다의 노래)가 헤라 화장품 CF 음악으로 나와 우리나라에도 좀 알려졌다.

베빈다 노래 또한 광고와 드라마 등에 나오고 양희은 씨 노래를 번안해서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해(Ja esta)'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졌다.


주문한 킹크랩이 큰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나와, 딸려 나온 도마 위에 올려 나무망치로 두드려서 하얀 속살을 파먹는다.

남희가 넉넉히 전화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양해를 구하고 인터내셔널 콜 박스로 간다.

모두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하기에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대답한다.


“자기! 어디야?”

남희의 밝은 목소리가 모처럼 공중전화기로 들린다.

“응, 포르투갈에 도착했어, 잘 있지?”

“응, 독일에는 언제 온대?”

“아직 몰라. 다음 항구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미다스의 손이 말을 이어간다.

“그래, 근데 자기야. 나, 블랙 페퍼 크랩 같은 게 자꾸 먹고 싶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응, 우리도 지금 먹고 있는데, 다음에 보면 같이 먹자. 그런데 애 섰냐?”

이어 고막이 터질듯한 고함!  

“야, 짜샤, 너 주거쓰! 만날 생각하는 것이 영감같이.”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 나이 사십이면 징그러운 애 아범이고, 육십 넘으면 죽을 날이 가까워진 영감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나이가 된 사람들이 젊은 우리를 볼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 철부지에 애 늙은이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 그래도 싱그러운 젊음이 좋다.  

늘 푸른 바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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