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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18. 2024

카리브 해의 샥스핀 전설

상어 이야기


함부르크의 파일럿 스테이션으로 전속 항진하는 'HAPPY LATIN' 호 옆으로 돌고래 수십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빠른 속력으로 헤엄치고 있다.

돌고래는 15노트로 항해하는 일반 화물선보다 훨씬 빠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돌고래의 빠른 헤엄의 비결을 연구하고 있다.

돌고래의 피부에는 물이 묻지 않아 마찰 저항이 적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인간이 만든 잠수함이나 배가 돌고래보다 빠르지 않다.


그 뒤에 또 빠르게 유영하는 상어 지느러미가 보인다.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상어는 주로 따뜻한 바다에 많이 사는데 추운 바다나 강물에서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상어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나 일부 종이 사람을 먹이로 착각하고 덤빈다.

상어의 공격으로 사람이 죽는 경우는 일 년에 십여 명 정도라는데 인간이 샥스핀, 이빨 채취나 그물, 낚시에 걸려 죽는 상어는 매년 일억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부레가 없어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는단다.

상어가 공격할 때 눈을 찌르면 도망간다고 한다.

심해 상어의 간에 있는 스쿠알렌은 화장품이나 약품 원료로 비싸게 팔린다.

종종 범고래가 백상아리를 뒤집어 기절시키고 맛있는 간을 빼먹는 게 목격된다.

상어는 암에 걸리지 않아 의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단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잡은 큰 물고기의 정체 Giant Marlin이라는 청새치이다.

이를 뜯어먹은 건 물론 리비안 샤크이다.

이 상어를 잡아 전설이 된 한국인이 있다.


C형은 해양계 학교나 해군 출신이 아니면서 지방 법대를 나온 후에 당시 한국에서 먹고살기가 힘들어, 배를 타면 잘 먹고 돈도 많이 번다하여 선박 통신사 양성 기관을 거쳐 해외개발공사의 상선을 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당시에는 배를 일 년 타면, 한 달간 유급 휴가를 받았다.

일 년 만에 만난 가족은 신혼이요, 화목한 가정이었다.

그렇게 파도와 고독과 싸워가며 긴 세월을 뒤로하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였다.

집에 틀어박혀 있으니 차츰 가족들의 눈치가 느껴졌다고 했다.

부인은 자녀들이 커서 학비며 생활비가 많이 들어가는데 C형이 벌어오지는 않고 쓰기만 한다고 타박을 주었다.

다 큰 자녀들도 아빠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말하면 잘 듣지도 않고 무시하기를 밥 먹듯이 하였다.

그래서 육상에서 뭔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평생을 바다에서 산 사람이 젊고 똑똑한 젊은이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어 말았다,

하는 일 없이 전철 타거나 파고다 공원에서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과 시간 보내다가 그것도 할 짓이 아니라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였다고 한다.


은퇴하여 귀국한 자기 집은 돈 버는 기계 역할이 끝나니 안식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다 놓아두고 홀연히 가방 하나 메고 배 탈 때 아는 외국인 친구들이 있는 여러 나라 중에 남미를 향해 떠났다.

아르헨티나에 가서 알던 선박 대리점이나 선식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고 정보도 들으며 칠레, 브라질 등 여러 나라를 거쳐 카리브 해의 작은 도착했단다.

오다가다 가지고 있던 돈도 떨어져 가고 해서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다가 가본들 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어디 한적한 어촌에 가서 좋아하는 생선이나 잡아먹고 살 생각을 했다.

그래서 찾아 들어간 곳에 혼자 살면서 고기나 어패류를 아먹고 쌀과 채소로 바꿔 먹기도 했다.

사실 남미 시골에서 허름한 방 하나 얻어 하루 두세 끼 때우는 거야 몇 푼 들어가나.


그렇게 신간 편하게 지내다가 그곳 어민들이 상어를 잡아 이빨만 잘라내고 몸통을 버리는 것을 보았다.

홍콩에 사는 친구에게 상어 지느러미를 보내면 돈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다들 알다시피 예전에는 중국 요리에서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 샥스핀을 고급 요리로 알아주지 않았는가.

좋은 가격에 얼마든지 팔 수 있으니 말려서 많이만 보내라는 답을 들었다.

C 선배는 상어를 을 고리와 체인 그리고 튼튼한 밧줄을 사서 상어 낚시를 만들었다.

동네 사람에 수고비 주고 상어를 잡아 그들이 잘라 박제해서 기념품으로 팔 이빨은 기분 좋게 다 주고, 지느러미만 잘라 말려서 홍콩에 수출하여 몇 년 동안  먹고 잘살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카리브 해에 상어가 얼마나 많은가.


그때 수출하면서 알게 된 통관사 여직원과 마음이 맞아 같이 살게 됐단다.

C형은 그 직원과 상어 지느러미를 자르고 말리고 고약한 냄새 나는 작업을 같이 하면서도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았다고 했다.

삶의 미를 포기하다시피 고국을 떠났던 그에게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 됐지 그까짓 돈이 무슨 큰 의미가 있었을까?

돈이 남아돌자 어렵게 사는 이웃집 꼬마를 한 명씩 데려다 먹이고 학비도 보태주면서 여러 명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상어 지느러미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동네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하게 되어 손을 떼었단다.

그때 도와준 아이가 공부를 잘해 미국 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학생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직접 담가 먹던 김치 맛을 안 아이들이 서도 C형의 김치 맛을 보기 위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부인도 가난한 자기 나라 아이들을 돕는 고마운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없이 살림을 꾸려나갔단다.

그런데 나이 고하간에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니, 평상시에는 ‘뚜(너)’로 친근하게 말하다가도, 어쩌다가 화가 나면 ‘우스뎃(당신)’이라고 정색하고 말할 땐 되게 귀엽다나.


배를 탈 땐 돈을 많이 벌었어도 자기 자식들 등록금 한 번 직접 줘 본 적이 없었는데, 남의 나라에 살면서 동네 애들 생활비며 학비를 챙겨주는 자기 팔자도 ‘웃기는 짬뽕’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선배는 어찌 됐든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는 걸 보니 보람도 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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