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 산책을 나갔다. 머~~얼~~리 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모른 체하는 남편이 얄밉기도 했지만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끌고 가는 것도 싫어 그냥 동네 한 바퀴를 같이 걷는데 마을 도서관에 불이 켜져 있는 게 보였다. 어? 도서관 다시 문 열었나 보다 하며 들어가 볼라우? 했더니 그러잖다.
입구에서 QR코드 등록하고 열 체크하고 3층으로 올라갔더니 사람도 거의 없어 편하게 책을 몇 권 골랐다. 코로나 시절이 되기 전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들락거렸고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심해지기 시작했을 땐 온라인으로 고른 책을 택배로 받아보는 호사까지 누렸는데 정부 방침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개관을 했다 닫았다 하니 마음이 시들해져 한참 외면했더랬다.
고른 책과 도서관 카드를 무인대출기에 올려놓았는데 화면이 변하질 않는다. 카드를 도로 집었다가 다시 올려놔도 그대로, 카드 올려놓으라는 내용만 계속 떠 있다. 왜 이러지? 그 전엔 잘 됐는데 싶어 어쩌나 하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왔다.
이건 이렇게 하시고 저건 저렇게 하시고 하면서 다시 해봤는데도 마찬가지. 이래도 안 되면 요렇게 해보세요 하고 다른 기계에 카드를 대니 비로소 인식을 해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비밀 번호를 넣으라고 해서 꼭꼭 눌렀는데 안 된단다. 곁에 있던 직원이 얼른 '잊어버리신 모양인데 저쪽 창구에 가서 다시~~'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다시 눌렀더니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렇게 차례를 밟고 있는데 직원이 여간 친절한 게 아니다. 책은 이렇게 올려놓으시고 이 버튼을 누르시면~~~ 하면서 하나하나 대신해준다. 어쨌든 다 끝내고 고맙다 말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뒤에서도 안녕히 가시라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둘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아무 말없이 걸어 근처 작은 공원에 와서야 비로소 "내가 너무 늙어 보인 거지?" 하고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친절하니 좀 그러네. 내가 저 기계를 쓴 게 개관하고부터 내낸대. 못 하게 보였나 봐." 하는 내 말에 좀 그랬지? 하고 남편이 웃었다. "내 머리가 하얘서 더 그랬나?" 좀 그렇긴 하지, 거의 반백이니 하고 맞장구를 친다.
난 일찍 흰머리가 났다. 친정 부모님 모두 환갑이 훨씬 넘어서야 흰머리가 생기셨는데 난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부터 머리가 희끗해져 염색 좀 하지 소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이 흰머리가 주로 정수리와 뒤통수에만 많아 내 눈엔 잘 안 보였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난 몰라하고 그냥 다녔는데 이젠 얼추 나이에 맞을뿐더러 전체적으로 회색 톤이 되어 '보기 좋다', '잘 참고 염색 안 했네' 소릴 더 많이 들어 다행이다 싶다. 그럼에도 염색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나이에 비해 대접을 받게 되나 보다. 그런데 그렇게 받는 친절은 좀 불편하다. 친절하긴 한데 초등학생에게 하듯 또박또박 일러주거나 일일이 대신해주려는 사람 앞에 서면 내가 무능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웃기는 말이지만 '신용카드 저한테 주지 마시고 그 기계에 직접 꽂으세요' 하고 드라이하게 말했던 카페 직원이 차라리 편하다. 괜히 뚱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긴 기계 앞에서 헤매는 사람이 한 둘이겠어? 그 직원들도 그런 나이 든 사람들을 많이 대하다 보니 생긴 태도겠지. 다 알지만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이것도 늙었다는 증거겠지? 남의 친절을 온전히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에잉~~~
덧붙여 (3월 6일)
오늘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왔다. 물론 무인기게로 별 탈없이 잘 빌렸다.
빌려 온 책 도널드 홀의 <죽는 것보다 늙는 게 걱정인>을 읽다가 발견한 구절
만약 노인을 향한 친절한 행동이 자기보다 모자란 사람을 대하는 듯하다면 그 당사자는 자신이 은혜를 베푼다고 생각하며 권력을 행사하는것이다. p.19~20
늙은이 대접을 받아 본 사람이면 대부분 그렇게 되듯 시니컬한 반응의 글이라 내 경우와 바로 비교해 보긴 좀 무리가 있지만 당황스러웠던 내 마음의 근원을 들여다 보면 저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래 제목은 Essays after eighty 인데 원제가 더 나은 듯. 좀 시시하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