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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Jul 23. 2020

이상한 건망증

 우리 부부 둘 다 요즘 입맛이 없다. 코로나에, 시끄러운 뉴스에, 골치 아픈 일도 있어서. 집에 있는 게 답답해 점심 먹고 나면 5분여 거리에 있는 동네 카페에 간다. 아메리카노가 단돈 1,900원인데 샷을 하나 더 추가해주고 맛도 우리 취향에 딱이고 깔끔한 데다가 도장까지 찍어줘 아예 단골로 삼고 드나든다. 


 어제도 비 오는 길에 나가 그 카페에서 남편은 커피를 마시고 난 느닷없이 청포도 에이드를 먹었다. 난 단 음료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요즘 컨디션이 바닥이라 단 것만 들이마시고 있다. 두어 시간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근처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데 남편이 비도 오고 써늘하니까 어묵탕을 해 먹자고 했다. 으응? 나도 그 생각을 했는데. 마침 집에 재료가 다 있어 술만 골라 가자 하니 남편은 신이 나서 주류 코너로 달려간다. 마트에서 남편이 안 보이면 딱 두 군데를 찾아가면 된다. 술 파는 곳과 초콜릿 파는 곳. 


 한참만에 내가 있던 고기 파는 쪽으로 왔는데 장바구니 속에 청하 한 병과 초밥이 보였다. 민물장어초밥인데 괜찮아 보여 샀다는 말에 잘했네 했다. 사실 나는 마트에서 파는 완제품 먹을거리는 잘 안 산다. 이른바 가성비라는 것 때문에 가능하면 싼 재료로 맛있다는 평을 받게 만들 텐데 뭐 제대로 된 게 들어갔을까 싶어서. 그래도 입맛 없어하는 요즘 저런 것도 먹어 보면 좋겠지 싶어 군말 없이 계산하고 집으로 왔다.


 멸치 국물에 무도 푹 삶고 갖가지 어묵 넣고 부산 스타일로 가래떡도 넣고 뜨끈한 어묵탕을 끓여 서로 정종을 주고받으며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청하 한 병은 좀 아쉬워 소주에 얼음을 타 (남편은 이렇게 줄 땐 꼭 미주구리라 한다) 반 병쯤 더 마셨다. 국물이 아주 달아 라면 사리를 넣어 요기까지 하니 딱 안성맞춤이라 둘이 오랜만에 웃는 얼굴을 했다. 설거지하고 부엌 정리도 하고 마지막에 물 한 잔 마시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헐~~~ 말가니 자리 잡고 있는 장어초밥! ㅠ.ㅠ


 여보! 하고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에게 가서 내가 못살아~~ 했더니 왜 하고 놀랜다. 장어초밥! 하니까 하이구 하며 눈을 감았다. 우리 둘 다 그걸 새카맣게 잊고는 라면사리까지 삶아 먹었으니. 다행히 치매는 아니네, 초밥이 어디서 났는지는 기억하는 걸 보니. 


  그런데 이게 두 번째다. 두어 달 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늦게 저녁을 먹게 되어 장을 보러 갔는데 광어회를 싸게 팔길래 한 접시 샀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마트에서 횟거리를 산 게 처음이라 싱싱한지 걱정이 되었지만 이걸로 술 한 잔 하자 하고 사들고 들어와서는 뭔 정신이었는지 부랴부랴 부추전에 감자 갈아 부침개까지 부쳐 둘이 부어라 마셔라 하고는 자기 직전에야 냉장고 들어 있는 회접시를 발견했다. 이런 머저리 같은 짓을 하다니 우리가 진짜 늙었나 보다 하고 둘이 어처구니없어했는데 또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 한 사람이 바보짓을 하면 남은 하나가 제정신이어야 하는데 이건 둘 다 멍청이다. 


 뭐 달리 할 말도 없어 멀뚱멀뚱 있다가 두 시간쯤 지나 출출하지 않아? 하면서 초밥을 꺼내 나눠 먹었다. 늦게 뭘 먹는 일이 없었던 데다 마음도 편치 않으니 자기 전까지 속이 부대껴 소화제까지 한 알 먹었다. 이게 뭔 짓이람. 비관하려다 생각하니 그냥 건망증이라기보다는 안 하던 짓을 해서 익숙지 않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 손으로 만들어 먹다 안 그래도 되는 걸 사다 놓으니 잊었겠구나 하고. 뭐, 그럴 밖에. 그거 아니라도 나이 드니 바보가 되어가는구나를 실감하는 요즘인데 이런 핑계로 나를 좀 위로하는 게 뭐 대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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