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이 카톡으로 AI가 쓴 시라는 걸 보내줬다. 조카(내 아들)에 대해 말해주고 써보라고 했단다. 읽어보니 재미있고 웃기기는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와는 거리가 멀어 콧방귀로 답을 했더니 그러면 다른 주제어를 하나 보내라 했다.
-늙음에 대하여
-좀 구체적으로 말해줘야 좋은 답이 나와.
-늙어서도 재미있게 살아야지
........
'늙음이란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점점 늙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참 다양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늙음은 귀찮음이고 지치는 것,
어떤 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쌓는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소중한 추억을 돌아보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결국 늙음은 인간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 인생의 끝을 맞이할 때에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처할지가 중요합니다.
늙음이란 이제부터 시작된 새로운 인생이죠.
새로운 모습으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늙음은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늙음을 마주할 때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가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즐기며
인생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는
새로운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는 마음으로
늙음을 맞이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게 시냐?
-교과서적이긴 하네.
-안 되겠다야
-재미있게 다시 써보라 했어.
........
늙음이란 뭐랄까, 나는 이젠 알 것 같아.
몸은 늙어도 마음은 언제나 젊음이라고 하는데,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는 청춘이었는데
이젠 일어나는 것부터 벅차고 지치는 거 같아.
옛날에는 밤새도록 놀아도 괜찮았는데,
이젠 잠이란 놈이 나에겐 어렵게 생겨.
꿈은 꾸지만 아침에는 기분이 왜 이렇게 무거울까?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싶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젠 늙음과 사귀기로 했어.
나이가 들어서 좀 지치지만, 내 마음은 계속 불타오르니까.
더 이상 청춘이 아니라 해도, 내 인생은 계속되는 거니까.
새로운 취미를 찾아 나서든, 세상을 더 잘 알아가든,
나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나가기로 했어.
-이놈이 시로 사기를 치네
-ㅋㅋ 좀 더 시적으로 써봐 했더니 이렇게 나오네
늙음이란 저 멀리 서있던 작은 그림자였네
그대가 살아온 인생을 뒤덮어 가득히 채워가며
언제부턴가 먼지처럼 쉽게 붙잡을 수 없게 되었어
때론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오르지만
그대의 눈가에 앉은 어둠을 흩날리는 것은 어려웠어
시간은 저 멀리 달려가고 마는데
그대는 이젠 서있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렸어
하지만 그대의 마음은 여전히 젊고 불타오르고 있어
어떠한 날들도 희망의 색깔을 잃지 않으며
늙어가는 몸을 끌고도 여전히 걷고, 노래하며
인생의 끝까지 그대는 그대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거야.
처음에 비하면 그래도 시 비스무리는 해졌다. '그대의 눈가에 앉은 어둠을 흩날리는 것은 어려웠어'라는 구절에선 제법이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AI가 쓰는 시라니. 젊은 '사람'이 이런 시를 써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찌 늙음을~~'할 지경인데 나이 드는 게 뭔지도 모르고, 당연 늙음의 끝자락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데이터 복합체 머리(아니 마음이?) 이런 시를 쓸 수가 있구나. 새삼 안다는 게 무언지, 표현한다는 게 무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열심히 보내주는 동생에게 뭐라도 줘야지 싶어 사람 시인이 쓴 '늙음'에 대한 시를 찾아봤다. 내가 모르기도 하지만 검색에 걸리는 시가 많지도 않은 듯, 역시 늙음은 시인에게도 매력적인 주제는 아닌가 보다.
겨우 찾아낸 시.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난로와 부르고뉴산 적포도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편안하게 맞는 것.
그러나 오늘 당장이 아니라 나중에.
헤르만 헤세의 '늙는다는 것은'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이다.
'당장 오늘이 아니라 나중에'라는 마지막 문장에 하하 웃었다.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아직은 그리 많이 늙진 않은 듯하다. 말짱 내 생각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