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노인인데
보름쯤 전 주방 정리를 하다 어제 엄마가 컴퓨터가 잘 안 돌아간다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막내 동생이 엄마네 식탁 위에 안 쓰는 컴퓨터를 놔드렸고 남편이 엄마 좋아하는 유튜브 영상을 바탕화면에 바로가기로 일일이 저장해 드려 그걸 보는 낙으로 사신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건너간다고 전화하라며 옷을 갈아입었다. 한결같은 사위다. 얼른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반가워하기는커녕 '어어어~~ 나중에 와'하면서 당황을 하셨다. 휙! 머릿속으로 번개가 지나갔다. 지금 요양사가 와 있으니 오후에 오라는 말에 머리를 굴려 사위가 벌써 뛰어 나갔노라 거짓말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더러 '얼른 뛰어가봐, 뭔가 이상한데'하고 (사실은 엄마 뭔 사고 치고 있는 거 같애 라고 말했다) 재촉을 했다. 남편이 '에휴 우리 장모님이 오늘은 뭔 일을 또 하셨을까' 하면서 나갔다. 20분쯤 있다가 남편이 돌아왔다. 얼굴을 구긴 채로. 컴퓨터는 인터넷이 끊어진 거라 금세 고쳤단다. 그런데? 하는 내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요양사님이 베란다 물청소를 하고 있더라고.
뭐시라? 이 영하의 날씨에 무슨 물청소래? 앞 베란다? 거긴 더운물도 안 나오는데? 내가 내지르는 소리에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했다. 집에 들어섰더니 앞베란다 큰 창문은 활짝 열려 있고 요양사는 바지를 걷어 올린 채로 베란다 물청소를 하고 있더라고. 호랑이 같은 눈으로 감시하듯 문 앞에 서 있으니 요양사님이 춥다고 문 닫고 들어가시라 하더란다. 당연히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계시더라고. 아~~ 정말 뒷목이 땡겼다.
첫 요양사님은 7개월 동안 엄마를 돌봐 드렸다. 엽렵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분이셨는데 엄마의 말동무는 물론 얼굴이 창백하다고 매일 비트를 쪄서 먹게 해 드리고, 집에만 있으니 지겨우시겠다며 자신의 차로 큰 마트로 구경도 가고 머리 커트는 물론 파마까지 집에서 해 드렸다. 역시 난 인복이 많다고, 로또 제대로 맞았다고 좋아했는데 노인놀이 치료사로 취직이 되었다고 그만 떠나가셨다. 내 한숨과 걱정과는 다르게 그 뒤에 오신 요양사님도 참 좋으셨다. 물론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갖기 힘든 엄마는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좀 나아졌다. 그런데 그런데~~ 2달쯤 지나니 그만두시겠다는 연락이 왔다. 어? 이게 뭔 일이람, 이게 흔한 일인가?
이 사태가 세 번 되풀이되고 지금 요양사님 온 지 2달이 넘었다. 그동안 의심을 안 한건 아니다. '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시어머니가 골절이 되어 입원을 했다' '남편 몰래 일을 했는데 들켜서 아주 곤란해졌다' 이렇게 그만둔 사유가 너무 무거워 아니겠지 하고 의심을 접어 두고 애써 외면한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요양사 일 끝나는 시간을 꾸욱꾸욱 마음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는 화를 안 내고 차분히 얘기해야지 하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봤자 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엄마 점심 드셨수?로 시작해 웃으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따뜻한 분위기는 이만 하면 됐다 싶었을 때 이 추위에 베란다 청소시키셨냐 하고 물었다. 마음을 다스린 시간도 보람 없이 저절로 목소리가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이 추운 날 그런 일을 시키시면 어쩌냐, 그리고 요양사님께는 그런 일 부탁하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느냐 했다. 엄만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할 건 해야지 왜 안 되냐,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안된다 하면 요양사는 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 하신다. 그동안 했던 대로 리스트를 줄줄 읊었다. 매일 아침 엄마 안부 확인하고, 변함없이 생활 잘하시냐도 확인하고, 말동무도 하고, (내가 하루만 전화를 안 해도 말할 사람이 없어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한숨) 산책도 하고, 시장도 보고, 집 청소랑 반찬 만드는 거랑 목욕하는 거 부탁하면 된다지 않았나? 할 게 이리 많은데 정작 엄만 목욕도 혼자 하고 시장도 혼자 가잖아, 그런 걸 같이 하자 해야지 했더니 싫다, 내 몸을 왜 남한테 보이냐고 시장도 나 가고 싶을 때 나 편하게 다닐 거라고 매번 하던 소릴 되풀이하셨다.
결국 난 화를 내고 말았고 엄마는 '네가 나 돌보느라 피곤해져 화를 내는 모양인데 나한테 신경 쓸 필요 없다' 하는 일갈로 전화를 끊었다. 이런 젠장 젠장 젠장!!!
어지럽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조금만 움직여도 나 손 좀 잡아달라며 도움을 청하면서 왜 이리 위험한 일을 우기며 계속 하시는지 알 수가 없다. 딸이 목욕하는 거 도와드리는 것도 싫다면서 혼자 하겠다니 이건 무슨 독립운동을 하시려는 건지. 요양사를 도우미 아주머니랑 구별 못하고 아무 일이나 시키려 해, 몇 번을 설명하고 이건 된다 안 된다 구분해 드렸지만 말짱 도루묵이다. 친해질 만하면 그 큰 통유리창 닦는 일도 시키고, 집 전체 청소도 한꺼번에 해달라시고, 밀대 걸레도 극세사 대신 면 수건을 쓰라 해서 날 쩔쩔매게 한다.
밤이 늦도록 속을 끓였다. 왜 이리 날 힘들게 하시는 걸까? 이거 싫다 저건 안 된다 하면서 할 일도 없는데 와서 나랑 수다만 떨다 간다고 요양사 흉을 보는 걸까? 위험하다 하는 일을 다 하고는 그 얘긴 왜 나 들으라는 듯 다 내게 하는 걸까? 그냥 가만 계시면 나도 모를 테고 화 낼 일도 없을 텐데. 원망과 속상함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뭔가 꺼림칙한 것도 자꾸 떠올랐다. 당연히 백번 엄마기 질 못한 건데 이상하게 머리 한편이 꾸물꾸물했다. 뭘까? 뭘 놓친 걸까?
아무리 늙어도, 아무리 힘이 없어도, 아무리 어지러워도 내가 싫은데 억지로 남 손을 빌리라는 게 옳은 일일까? 힘들어도 천천히 느린 속도로 해도 내 힘으로 내 몸을 씻고 시장을 보겠다고 하는 게 잘못된 일일까? 아닌 것 같다. 내가 무력해서가 아니고 무력하기 때문에 더 억울하고 슬픈 일일 것 같다. 나중에 내 아들이 내게 나 싫은 걸 하라고 성화를 부리면 다리몽둥이를 확! 에휴.
난 뭘 걱정하고 있는 걸까? 엄마가 다칠까 봐 무섭고, 그런 일이 일어나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빠질까 봐 걱정이고, 행여 그렇게 돼서 후회하는 일이 생길까 봐 두렵다. 내가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하면서 후회를 할 것이 제일 큰 걱정이다. 그 후회를 하기 싫어 그토록 싫다는 엄마에게 화를 내고 있다.
다음 날 남편이랑 아침을 먹으면서 말했다. 그냥 엄마 하고 싶은 대로 하시게 두겠다고. 내가 해드릴 수 있고 엄마가 그래 달라하는 건 얼마든지 하겠지만 엄마가 절대로 싫다 하시는 건 그냥 엄마 판단에 맡기는 게 옳은 것 같다고. 그래야 내가 엄마에게 화가 덜 날 테고 엄마도 날 보는 게 편할 것 같다 했다.
- 잘못된 걸 바로 잡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거 같애.
- 너 그거 심해. 진짜 심해.
밥 먹던 숟가락을 멈추고 째려봤다. 어이그, 박자 못 맞추고 삑싸리 내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 심각하게 자아반성 하고 있는데 매질을 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제발 이번 요양사님은 오래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엄마가 별일 없이 잘 지내줬으면 좋겠다.
사진. 엄마랑 마주 앉아 있다가 사진 찍어줄게 하니 늙은 얼굴 싫다고 가렸다. 미모에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