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를 하고 나선 남쪽 땅 산책길은 서울보다 훨씬 따뜻하고 화사했다. 막 봄에 들어서 나무에 연두 새순이 올라오고 드문드문 이른 꽃도 피어 참 좋았다. 그 길에 늠름하게 서 있는 김대건신부님 동상을 지나면서 덜렁 내가 내놓은 말에 수녀님이 예상외 답을 했다.
-그냥 마음을 바꾸시지. 왜 끝까지 하느님을 믿는다셔서는.
- ..... 그러게.
-어? 수녀님은 그런 말하면 안 되잖아요?
-너무 아깝잖아요.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전혀 웃을 일이 아닌데 서로 비슷한 마음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나 보다.
웃다가 찔려서 '엥!!! 우리 수사님들한테 걸리면 혼나겠다' 했더니 수녀님이 '인간적으로 너무 안타깝잖아, 스물 여섯 그 젊은 나이에 사제되느라 그리 고생하고 힘들게 돌아오셔서는 제대로 사제 생활도 못하고 순교하셨으니' 하셨다. 같이 웃기는 했지만 속으로 그랬다. 막상 닥치면 똑같이 하실 거면서 ㅎㅎㅎ
딱 작년 이맘때 난 닷새동안 남쪽에 있는 수도원에 있었다. 그 수도원은 무려 50년 전, 내가 중학생일 때 성당에서 단체로 피정을 갔던 곳이다. 피정은 천주교 신자가 잠시 일상에서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도 하는 시간을 갖는 걸 말한다. 그렇지만 중학생이 무슨 피정을 했겠나. 그저 나들이 간 것이 좋았겠지. 다른 건 별로 기억이 안 나지만 독방에서 지냈던 것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집에서도 나만의 방이라는 게 없었던 시절이라 단체로 잘 줄 알았는데 혼자 쓰는 방이라 해서 설마 했었다. 내게 배정된 방에 들어섰을 때 그 공간의 침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방엔 작은 책상과 침대가 있었고 창 너머 나지막한 언덕에는 사슴이 놀고 있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이틀 가졌던 첫 나만의 방의 강렬한 기억과 조용하면서도 묵직했던 수도원 느낌이 오래 남아 그 뒤로 언젠간, 언젠간 가봐야지 하고 벼르기만 했는데 수녀님 친구가 자유피정을 같이 가겠냐고 물어 망설이지 않고 짐을 쌌다.
우린 28년 전쯤 본당 수녀와 복사 엄마로 만났다. 그때 난 아들 덕에 내 인생에서 보기 드문 신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들이 복사(천주교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실 때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를 하는 바람에 주일 미사는 물론 새벽미사도 나가고 토요일 회합에도 나가느라 일주일에 삼일 이상을 성당에 나가는 기적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 전엔 집에서 떠나와 혼자서 미사만 다녔고, 결혼 후엔 그나마도 아예 안 나갔으니 아들 녀석 핑계로 다시 시작한 신자 노릇에 물정 모르긴 비신자나 다를 게 없었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건 힘들고 남들 봉사에 얹혀 먹긴 싫어, 신부님이 미사 준비할 때 쓰시는 제의방 청소를 맡았다. 수녀님은 그때 복사 지도와 제의방 관리를 하고 계셔서 당연히 우리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은 둘이 박자가 잘 맞았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다.
'하여튼 이상한' 신자였던 나는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수녀님께 물었고 수녀님은 '하여튼 이상한 신자야' 하면서도 거리낌 없이 받아 주었다.
-닌 토마스 성인이 좋더라고요. 계속 궁금해하고 의심하잖아.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보지 않고도 믿으면 행복하다고.
-예수님 옆구리에 손가락 넣어 본 사람 있음 나와보라 그래요.
-하여튼 이상한 신자야.
-지난 주일이 평신도 날이었잖아요. 나 2차 헌금 안 냈어요. (특별한 이슈가 있는 날엔 헌금을 두 번 낸다)
-왜요?
-내가 평신도인데 왜 평신도 날에 평신도에게 헌금을 내라는 건지 몰라서. 군인주일이나 자선 주일 이런 날엔 잘 내요.
-하여튼 이상한 신자야.
이런 식이였다. 한 번도 무조건 믿으라거나 그런 불경스러운 생각 좀 하지 마라 하신 적이 없었다. '그리 생각할 수도 있지'하다가 영 멀리 나갔다 싶으면 '하여튼 이상한 신자야' 하고 웃는 게 다였다. 이런 얘길 수녀님한테 했다고 엄마에게 말하면 넌 어떻게 수녀님한테 그딴 소릴 하냐고 야단을 하셨다.
그렇게 지내다 2년 임기가 다 채워져 수녀님은 다른 곳으로 떠나셨고, 그럼에도 우리는 명동에서 성경 공부도 같이 하며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내가 힘든 일을 겪게 되고 그 일로 고민이 깊어지면서 이제 (그나마 겨우 가던)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때 내 사정을 좀 알고 있던 수녀님은 '그러셔' 하고 아주 쿨하게 받아 주셨다. 그리고 우린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는데 아마 신앙을 포기하겠다는 내가 부담스러울까 봐 그러셨을 걸로 짐작했다.
지지난 해 여름, 집 전화가 울려 남편이 받았는데 눈이 둥그레져서 '수녀님이시라는데?' 라며 바꿔줬다. 나의 수녀님 친구였다.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자마자 '성당에 나가냐'고 물으셨다. 하하하 그리 답하고 찔리셨구나 싶어 10년 전쯤부터 다시 나가고 있다 했더니 그동안 내내 날 위해 기도했다고, 특히 피정이나 침묵기도 중엔 항상 기도했다셨다. 15년 동안 날 잊지 않고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끊임없이 기도하셨다니. '그러셔' 하고 내 입장을 생각해서 말해준 너그러움에 대한 댓가를 얼마나 오래 치르셨을까. '내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청했는지 알아요?' 하고 한 번도 하지 않던 생색을 내는 수녀님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수녀님들은 하던 일을 마치고 다른 임지로 가게 되면 작은 가방 두 개에 들어갈 만큼의 짐만 꾸리신다. 그래서 우리 본당에서 떠날 때도 내게 여러 가지 선물을 주셨는데 계속 그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연락처도 자꾸 정리를 하게 되었다고. 이번에도 짐 정리를 하다 내내 가지고 있었던 우리 집 전화번호(그땐 휴대폰이 없었다)를 보고 고민하셨단다. 그냥 걸어보고 전화가 안 되면 이젠 버려야겠다 하고 며칠을 망설이다 전화를 하셨다고. 혹시나 여전히 성당에 안 나가고 있으면 자신의 전화가 부담이 될 텐데 연락을 하는 게 옳을까 하고 다른 수녀님께 의논까지 하셨다니 그 작은 일에 얼마나 마음을 쓰셨는지. 그런데 이렇게 반갑게 통화할 수 있어 정말 좋다며 예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셔서 어째 내가 다시 성당엘 가게 됐나 신기하다 했더니 수녀님 덕분이었네 하니 맞다신다.
50년 만에 다시 찾은 그 수도원은 많이 변했고 예전의 기억을 되새길 흔적도 찾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참 좋았다. 하루 네번의 기도는 비로소 날 가만 앉혀 놓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녀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소식을 못 전한 사이 우린 비슷한 아픔을 겪었더라. 그래서 서로의 고통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위로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한 수도원 식당에서 식사 담당 수사님이랑 셋이 밥을 먹고 나오면서 '수사님이 너무 외로워 보여' 하시길래 '아이구, 사돈 남 말하시네요. 수녀님도 똑같은 처지잖아' 하니 '에이, 여자들은 모여 살면 재미있어요. 남자들은 그렇게 잘 안 되잖아'해서 날 웃기기도 했고, 오랫동안 고해성사를 못 봤다는 말엔 단체로 온 신자들한테 양해를 구해 끼어서 성사를 받게 해주기도 하셨다. 힘들었던 일에 내가 '어떻게 하느님이 그러실 수가 있어요?' 하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나중에 만나면 좀 따져 보려고. 왜 그러셨어요? 하고'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답하는 바람에 할 말이 없어 '하여튼 이상한 수녀님이야' 하고 서로 웃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내 친구가 되어준 수녀님이 외국으로 선교를 가신다. 그동안 하던 일을 끝내고 다른 소임을 맡게 될 거라며 선교를 가게 해 달라고 기도 중이라 해서 그 나이에 누가 선교를 가냐고 힘든 곳에 가서 어쩌시려냐고 말렸는데 예수님은 이런 기도는 정말 잘 들어주신다. 현지 사정이 힘들어 갑자기 떠나게 됐다는 소식에 잠깐 만나 필요할 것 같은 몇 가지를 챙겨 드리면서 마구 야단을 했다. '말도 안 통하고 날씨는 여기랑 비교도 안 되게 덥고 풍토병도 있다는데 어쩌실 거냐고 좀 편한 데로 보내 달라시지 그런델 가면 어쩌냐' 하니까 '그러게 좀 더 구체적으로 기도할 걸, 그냥 보내달라 했더니 힘든 곳엘 가라시네' 하며 싱글싱글 웃으신다.
-나도 살짝 무섭기도 해요. 그렇지만 기대가 더 많이 돼요. 말 안 통하는 거야 차츰 배우고 바디 랭귀지로 버텨야지, 내가 청한 건데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어요?
맑은 얼굴로 뭘 걱정하냐는 수녀님을 마주 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걱정 안 하겠다고, 당연히 잘 해내시지 수녀님이 그 정도 못하겠냐고, 그렇지만 딱 한 가지, 아프면 얼른 손 들고 돌아오시라고, 끙끙 거리며 버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겠다시며 내 손을 꽉 잡아 주고 씩씩하게 돌아서 가셨다. '우리 기도 중에 만납시다' 하는 말에 지난봄 수도원 성전에서 봤던 수녀님 뒷모습이 생각났다. 미사 전에 기도 하러 먼저 성전에 가 있을 테니 좀 쉬다 오라며 '오늘은 성전에 수녀들이 많아 날 찾기 힘들 거야, 앞쪽에 앉을 거니까 그리로 와요'했지만 난 금방 수녀님을 찾았다. 성당 의자에 딱 붙은 거 마냥 굳고 심지 있어 보이는 수녀님 뒤태를 어찌 못 알아보겠는가. 그 굳건한 모습으로 잘 해내실 거라 믿는다.
부디 건강히 잘 다녀오시길!
덧, 수녀님 뒷모습이 꼭 대웅전 부처님 같았다고 솔직히 말했으면 또 한마디 하셨을 거다. '하여튼 이상한 신자야!'